기후 대응과 여성의 발언권 [윤지로의 인류세 관찰기]

한겨레 2025. 10. 1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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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불편한 이야기다.

주최 쪽은 그 두명으로 성비와 세대 균형을 한번에 해결하는 요량이었는지, 에너지, 산업, 산림 등 각 분야의 쟁쟁한 남성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성 토론자들에겐 공교롭게도 '미래 세대'로서의 역할을 맡겼다.

네가지 감축안 중 한쪽 성별에 유리한 선택지가 있다거나 개도국처럼 여성이 더 심한 기후 피해에 노출되는 상황이 아닌데 '굳이' 젠더 문제를 들먹일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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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립을 위한 전력부문 대국민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윤지로 | 클리프(Climate in Fact) 대표

이건 좀 불편한 이야기다. 아니, 불필요한 이야기이려나.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대국민 공개토론회 말이다. 정부는 다음달 유엔에 2035 엔디시를 제출하기 위해 지난달 19일부터 여섯차례에 걸쳐 공개 논의를 진행했다. 한두번 공청회로 대국민 소통을 ‘했다 치는’ 과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지만, 토론 패널 구성은 또 다른 한계를 드러냈다.

‘대국민 토론회’에서 말하는 대국민의 의미가 ‘국민과 함께’ 엔디시를 결정하겠다는 것인지 ‘국민께’ 쟁점을 설명하겠다는 것인지 즉, 국민이 주체인지 객체인지도 모호했지만, 뭐가 됐든 이해관계자끼리 모이는 자리가 아닌 ‘국민’의 이름을 걸고 마련한 자리에선 최소한 어느 정도 성비 균형을 맞췄어야 했다.

정부의 네가지 온실가스 감축안에 대해 소개하는 총괄토론은 첫 토론인 데다 개괄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인 만큼 가장 폭넓은 관심을 받았다. 많은 시선을 받으며 등장한 13명의 발제자와 토론자 중 여성은 단 2명. 주최 쪽은 그 두명으로 성비와 세대 균형을 한번에 해결하는 요량이었는지, 에너지, 산업, 산림 등 각 분야의 쟁쟁한 남성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성 토론자들에겐 공교롭게도 ‘미래 세대’로서의 역할을 맡겼다.

질의·응답 시간에 청중석에서 패널 구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2차(전력)와 3차(수송) 토론에선 고정 발제자인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을 뺀 전원이 남성이었다. 4차(산업) 토론만 여성 비율이 40%로 가까스로 균형을 맞췄을 뿐, 5차(건물)와 6차(농축수산·흡수원·순환경제) 토론에서도 여성은 여전히 소수였다. 결과적으로 발제·토론자 56명(중복은 1명으로 계산) 가운데 여성은 8명(14.3%), 토론자만 놓고 보면 여성에겐 9.5%의 자리만 할당됐다.

이 불편한 숫자를 불편하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데는 다소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미 누군가는 저 윗단 어디선가 ‘온실가스 토론에서 성비는 불필요한 논쟁거리 아닌가’라는 반론을 제기했을 터이다. 네가지 감축안 중 한쪽 성별에 유리한 선택지가 있다거나 개도국처럼 여성이 더 심한 기후 피해에 노출되는 상황이 아닌데 ‘굳이’ 젠더 문제를 들먹일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

그런데도 ‘굳이’ 성비 불균형을 지적하는 이유는 그런 불균형이 기후 대응에서 성별 격차를 벌리는 ‘원인’으로 작용해서가 아니다. 성 중립적인 논의의 장에서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불평등이 고스란히 노정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주최 쪽에 성차별 의도가 있어서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에게 14.3%의 자리만 내줬거나 절반의 패널 토론에서 전원 남성을 내세우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다 그런 결과가 나왔을 텐데, 바로 그 ‘어쩌다’를 사회심리학에선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이라 부른다. 자기 생각과 경험을 객관적이며 상식적이라고 믿는 걸 말하는데, 이 상황에 대입하면 ‘토론회에 유능한 전문가를 모시려 했는데 그들이 남성인 걸 어쩌란 말인가’로 요약할 수 있겠다. 공개 석상에선 대체로 남성이 많았으니 전문가의 기본값은 은연중에 남성이 됐고, 그게 되풀이되는 데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대국민이라는 이름을 달고, 특히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그렇게 강조하는 자리에선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럼 여성 비율은 몇퍼센트가 돼야 충분할까. 미국에서 두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도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는 이렇게 답했다. ‘9명 전원입니다’. 여성 토론자 비율이 10%인지, 50%인지, 90%인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질 때, 그게 비율을 넘어선 충분한 참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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