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속 작은 베트남’ 13년째 이주민 법회 여는 창원 금강정토사

최석환 기자 2025. 10. 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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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 고국’ 잇는 베트남 불자 안식처
베트남 출신 스님 주도로 주말 법회 계속
“한국서 힘든 동포들 치유받는 계기되길”
추석 전날인 지난 5일 오후 2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금강정토사에서 베트남 불자들을 대상으로 법회가 열렸다. 베트남 출신 불자들이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김구연 기자

합포중학교(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정문 맞은편 골목에 들어서면 낯익은 한국어보다 베트남어가 먼저 귀를 스친다. 명절이든 휴일이든 풍경은 비슷하다. 고향 음식을 나누는 이들, 법당 마당을 놀이터 삼은 아이들, 절복을 입고 합장하는 사람들. 작은 골목 안에는 어느새 경남 속 '작은 베트남'이 만들어진다.

그 중심에는 금강정토사가 있다. 1998년 마산 산호동에 창건된 이 절은 지금 베트남 불자들에게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로 불린다. 일요일마다 전국 각지에서 100여 명이 모이고, 명절에는 300명 가까운 발길이 이어진다. 이들을 이끄는 이는 베트남 출신 복행 스님이다.

◇타국 도량을 지키는 베트남 스님 = 복행 스님이 한국에 온 시점은 2017년 10월이다. 충북 충주지역 장왕사에 잠시 머물다가 창원 금강정토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로부터 8년째, 그는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베트남 불자들을 위한 법회를 열고 있다.

"한국에서 어렵게 사는 베트남 사람이 많습니다. 외롭고 말도 통하지 않아요. 언어도, 문화도 다르니까 모든 게 어렵기만 합니다. 그래서 법회를 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돕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의 법회는 단순한 예불이나 교리 해설이 아니다. 불자들이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길을 찾는 자리다.

"마음을 비우고, 불안을 다스리며, 분노를 내려놓는 법. 부처님 가르침은 결국 '삶을 버티는 힘'입니다. 법회는 그 힘을 함께 배우는 시간이에요."

그가 주도하는 법회는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금강정토사 큰법당에서 열린다. 불상 앞에는 한 줄에 12개씩, 다섯 줄로 방석이 놓인다. 이곳을 찾은 불자들은 두 손을 모은 채로 스님 설법을 기다린다. 법문이 시작되면 법당 안은 숨소리조차 잦아든다.
한 베트남 출신 불자가 추석 전날인 지난 5일 오후 2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금강정토사에서 열린 베트남 법회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김구연 기자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금강정토사 입구. /김구연 기자

◇법당이 건네주는 따뜻함 = 복행 스님은 법회를 열 때마다 부처 말씀을 일상 언어로 풀어낸다. 가족 갈등, 임금 체불, 불법 체류, 문화적 오해 등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한다. 이 자리에서는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고, 말을 부드럽게 하며, 세상을 바르게 봐야 한다"는 말도 강조한다.

설법이 끝난 뒤에는 상담 시간이 이어진다. 스님은 불자들의 손을 잡고 조용히 말을 건넨다. 법회 후 불자들과 일일이 대화를 나눈다. 스님은 불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울고, 때로는 침묵으로 위로한다.

"결혼이민자, 불법 체류 노동자, 유학생 등 저마다 사연이 다양해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커서 우울증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가 힘들고 괴롭게 한다는 이도 있습니다. 특히 한국 업주에게서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월급을 못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문화 차이로 다투거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가정도 그렇고, 임금체불로 생계를 이어가기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럴수록 더 자주 만나야 합니다."

추석 전날인 지난 5일 오후에도 금강정토사 법당은 베트남 불자들로 북적였다. 40여 명이 법회에 참석했다. 법회가 시작되자 베트남어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 울려 퍼졌다. 그날 법문 주제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행을 실천해야 하는가'였다.

법회는 단순 종교의식이 아닌 '마음 치유 공간'이 된다. 호비엔 황(32) 씨는 이렇게 말했다. "심적으로 힘들 때마다 이 절을 찾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요. 사람들도 따뜻하고요. 제게 이곳은 마음의 쉼터예요."

밤 안뚜안(23) 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베트남 스님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여기 오면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에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고향 음식도 먹을 수 있고요. 지금은 가족 같은 곳입니다."
추석 전날인 지난 5일 오후 2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금강정토사에서 베트남 불자들을 대상으로 법회가 열렸다. 베트남 출신 불자들이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김구연 기자

◇전국 첫 베트남 법회가 열린 절 = 금강정토사는 전국 사찰 가운데 가장 먼저 베트남 법회를 연 곳이다. 다문화가정이 날로 늘어가던 13년 전부터 베트남 이주민 대상 법회를 시작했다.

이 절은 언어와 문화의 벽으로 신행 활동이 어려운 이들을 도우려고 주차장 일부를 도량으로 꾸몄다. 숙식 가능한 공간도 만들어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있다.

초기 법회는 일시적으로 베트남 국적 스님을 초청해 진행하는 형태로 마련됐다. 지금은 복행 스님이 절에 상주하면서 주도하고 있다.

절이 추산하는 베트남 법회 방문객 수는 지난 13년간 총 1만여 명이다. 이 가운데 70~80% 이상이 경남에 사는 베트남인이다. 일부는 버스를 대절해 전국 각지에서 찾기도 한다.

자원 스님(금강정토사 주지)은 그때 결정을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타국에서 가족도 친구도 없는 사람들이 기댈 곳이 필요했습니다. 절 문을 열어준 뒤로 이곳은 자연스럽게 베트남 사람 쉼터가 됐습니다. 지금도 불자들이 도량에서 음식을 해 먹고, 명상하며 잠시 머물다 갑니다."

절 한편에는 숙식을 겸한 작은 도량이 있다. 머물며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도 있고, 잠시 놀러오는 사람도 있다. 명절이면 고향 음식을 함께 나누는 풍경도 펼쳐진다. 그렇게 금강정토사는 종교 공간을 넘어 이주민 공동체의 집이 됐다.
복행 스님이 추석 전날인 지난 5일 오후 2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금강정토사에서 열린 베트남 법회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김구연 기자

◇더 넓은 도량에서, 더 많은 이들과 함께 = 복행 스님은 법회를 계기로 같은 나라 사람들을 자주 만나면서 느낀 점이 많다고 했다. 그는 금강정토사를 '집'처럼, 자신을 '가족'처럼 여기는 불자들을 만날 때면 가장 기쁘다는 말도 강조한다.

"부모, 형제, 친구가 없는 사람도 여기서는 가족이 됩니다. 여기 오는 분들은 부모도, 친구도, 고향도 뒤로 하고 멀리 떠나 있는 분들입니다. 금강정토사에서 이뤄지는 법회를 불자들이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닌 '삶의 연결'로 여기기를 바랍니다."

절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새 고민도 생겼다. 사람이 늘어 민원이 있을까 걱정이다. "넓은 도량이 있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마음 편히 오게요."

복행 스님은 금강정토사를 넘어 '다문화 불교 수행의 장'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베트남 친구들이 한국 사회에서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면 좋겠어요. 그게 한국 사회에도 좋은 일입니다. 언젠가 베트남뿐 아니라 여러 나라 불자들이 함께 수행하는 국제 법회를 열고 싶어요. 어느 나라든 오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법회가 끝난 일요일 오후, 불자들이 하나둘 절 문을 나선다. 누군가는 친구와 함께 웃으며 돌아가고, 누군가는 조용히 합장한 채 뒷골목으로 사라진다. 문 앞에 선 복행 스님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마음이 편해야 세상도 평화롭습니다."

멀리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 그 한마디는 긴 위로로 남는다. 베트남 불자 거점으로 자리 잡은 금강정토사는 오늘도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최석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