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아침 깨우는 ‘홍가 합창단’, 혁명의 추억에 깃든 고령화·빈곤

베이징의 아침 공원에는 특유의 활기가 있다. 산책하는 시민들과 태극권을 수련하는 무리 사이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지난달 25일 아침 베이징 디탄공원 입구에는 수십명이 모였다. “공산당 없이는 새로운 중국도 없다”라는 구절이 힘차게 울려 퍼지자,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자연스레 목소리를 맞추기 시작한다. 중국 혁명 시기의 가곡, 이른바 ‘홍가’(紅歌)를 부르는 합창단이다.
이 합창단은 중국공산당이나 정부가 조직한 단체가 아니다. 대부분 공원 근처에 사는 은퇴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매일같이 노래를 부른다. 베이징 중심부의 징산공원, 디탄공원, 이화원 등 큼직한 공원마다 비슷한 무리가 있다. 디탄공원엔 평일에도 많게는 100명 가까이 모인다. 참가자들은 악보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 서서 손짓으로 박자를 맞추고, 몇몇은 빨간 스카프나 붉은 깃발을 들고 흥을 더한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6돌인 10월1일을 며칠 앞둔 이 날, 한 참가자는 ‘경축 국경일’이라는 손팻말을 들기도 했다. 디탄공원에 일주일에 3번 정도 홍가를 부르러 온다는 리는 “우리가 가장 깊이 기억하는 음악은 1950~60년대 청춘 시절의 노래다. 지금 다시 부르는 것은 과거와 청춘을 떠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자발적 공동체의 모습은 한편으로 중국 사회가 겪는 노인 돌봄의 공백을 드러내기도 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중국에서 주목받는 개념은 ‘고독실능 노인’(孤寡失能老年人)이다. 이는 배우자도 자녀도 없어 돌봐줄 사람이 없고, 60살 이상이며 노동 능력을 상실한 노인, 혹은 법적 가족이 있더라도 사실상 고립된 노인을 뜻한다. 가족 내부나 사회 외부의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당수의 고독실능 노인들은 “아무도 보살피지 않고, 의지할 곳이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 이 집단의 확대는 중국의 고령화 문제를 한층 더 심각하게 만든다.
고정된 연금 수입 등이 있는 경제력을 갖춘 노인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한 달에 수십만원이 드는 돈을 들여 취미 생활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경기침체를 돌파하기 위해 내수 진작에 사활을 건 중국 정부는 고령자들의 소비가 형성하는, 이른바 ‘은발경제’의 성장을 주시한다. 그러나 중국 노인들의 소비 여력은 크지 않은 거로 알려져 있다. 중국 민정부가 공동 진행한 2021년 전국 조사에서는 노인들의 연간 중위소득이 1만1400위안(약 228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 지역은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10명 중 1명 이상의 중국 노인은 빈곤 속에 살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돈 들일 일 없는 취미인 ‘홍가 합창단’과 같은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고령화가 불러올 문제는 노인의 생활과 복지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노동력 감소로 경제 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연금과 의료 재정 부담이 폭증하면서 국가 재정에도 압박이 가해진다. 젊은 세대는 부모와 조부모를 동시에 부양해야 하는 ‘4-2-1 구조’ 속에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지게 된다. ‘4-2-1 구조’란 1명의 자녀가 2명의 부모와 4명의 조부모를 함께 떠맡아야 하는 가족 형태를 뜻한다. 수십 년간 이어진 한 자녀 정책의 산물로, 한 명의 청년이 6명의 노인을 책임져야 하는 불균형이 고착된 것이다.
중국의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 중이다. 2023년 기준 60살 이상 인구는 약 2억9700만명으로 전체의 21.1%를 차지한다. 65살 이상 인구만 따져도 2억1676만명, 전체 인구 15.4%에 달한다. 중국은 곧 ‘고령사회’를 넘어 곧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국가통계국과 관련 연구기관들은 2035년 전후 65살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베이징/이정연 특파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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