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기록_'절제와 균열' 프리즈가 끝나고

하은정 기자 2025. 9. 21. 05:21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9월의 코엑스에선 네 번째를 맞은 프리즈 서울과 오래 뿌리 내린 키아프 서울이 나란히 열렸다. 국제와 지역, 시장과 담론이 교차하는 무대에서 두 박동이 겹치는 순간, 전시장은 묘한 진동으로 가득 찼다

절제와 균열 그리고 발견, 프리즈 서울 2025 

Mazzoleni Agostino Bonalumi Rosso, 1973 Shaped canvas and water-based enamel Courtesy of Mazzoleni London – Torino

[우먼센스]프리즈 서울(이하 '프리즈')의 첫해였던 2022년은 불꽃놀이처럼 화려했다. 런던, 뉴욕, LA에 이은 아시아 첫 진출이라는 상징성과 세계적 갤러리들의 대거 참여로 서울을 국제 미술 지도에 새기려는 열기가 가득했다. 거대한 불꽃이 한순간에 터져 나오는 듯한 광휘가 전시장을 압도했다.

올해 프리즈는 요란한 스펙터클 대신 절제된 풍경으로 기억된다. 블루칩 갤러리들이 여전히 전시장의 무게를 주도했지만, 그 사이로 드러난 균열과 발견이 더 오래 남았다.

Galerie Peter Kilchmann Andy Denzler Young Picasso with Baseball Cap, 2025 Oil on canva
Blindspot Gallery Sin Wai Kin Asleep, 2024 Film still, single-channel video on loop Edition of 5 + 2AP. Image courtesy of artist and Blindspot Gallery
STPI Shinro Ohtake Yellow Sight 5, 2015 Screenprint on paper, bound with linen in yellow frame © Shinro Ohtake.

하우저앤워스(Hauser & Wirth)는 역시 전시장의 초점을 차지했다. 전면을 가득 메운 마크 브래드포드의 신작 'Okay, then I apologize' (2025)는 강렬한 색채의 파편으로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개막 첫 날, 이 작품은 450만 달러에 거래되며 이번 페어의 가장 뜨거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국제 무대에서 메가 갤러리의 권력과 블루칩 작가의 위용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현재 브래드포드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선을 붙잡은 장면은 선화랑에서 만난 이정지(1941~2021)였다. 롤러와 나이프로 반복된 제스처는 화면을 긁고 덮으며, 마치 세월의 층위를 켜켜이 쌓아 올린 듯했다. 곳곳에 남겨진 서체적 흔적은 끝내 언어가 되지 못한 말의 파편처럼 진동했고, 그 울림이화면 전체에 묵직하게 번져나갔다. 블루칩이 던지는 즉각적 충격과 달리, 그의 회화는 낮고 단단한 저항으로 다가왔다. 국제적 조명 속에 다시 호출된 이정지의 작업은 한국 단색화의 한 축이 세계 미술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다시 쓰이는지를 보여주었다.

Hause&Wirth, Frieze Seoul 2025. Photo by WeCap Studio. Courtesy of Frieze.
아래)LG OLED, Frieze Seoul 2025. Photo by Wecap Studio. Courtesy of Frieze.

도쿄 갤러리 'CON_' 부스의 풍경도 이질적이었지만 충분히 발길을 붙잡았다. 요코테 타이키의 'Floating Rubble(when the cat's away, themice will play)'(2025)는 콘크리트 파편과 철근을 바닥에 흩뿌리고 쌓아 올려 폐허를 연상시키는 설치였다. 위태롭게 놓인 돌무더기와 삐죽이 솟은 철근은 도시의 내장을 드러내듯 거칠었고, 비닐봉지 안에서 꿈틀거리는 형태는 불안정성 자체가 작품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완결된조형미가 아닌 위태로움은 그 자체로 강렬한 매력으로 작동했다.

기술과 예술의 교차로 프리즈의 중심을 이룬 공간은 단연 LG OLED와박서보의 협업이었다. 한국 단색화 거장의 색채를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로 구현한 시도, 화면 위에서 울린 색의 떨림은 단순한 브랜드 후원을 넘어선 메시지를 남겼다. 화려한 스펙터클이 줄어든 자리에 한국적 색채와 기술이 결합한 이 프로젝트가 새로운 스펙터클을 제시했다.

서울의 로컬리티를 드러낸 '상히읗' 갤러리도 눈에 띄었다. 거대한 자본과 화려한 이름이 장악한 공간 속에서 정유진의 묵직한 설치는 오히려 거칠고 날 선 긴장을 드러냈다. 국제 플랫폼 안에서 로컬 갤러리가 내는 목소리가 어떤 울림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위)CON_, Frieze Seoul 2025. Photo by WeCap Studio. Courtesy of Frieze.
sultana Jaehoon lee Three in one, 2024-2025 Oil on canvas

코엑스를 넘어, 올해 처음 문을 연 프리즈 하우스 서울도 주목할 만하다. 김재석 큐레이터가 기획한 개막전 <UnHouse>는 10월 2일까지 이어지며, 프리즈가 더 이상 단발성 이벤트가 아님을 선언했다. 이제 프리즈는 서울에서 연중 내내 국제 미술이 교차하는 거점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글쓴이 이혜민(@comme_haemin) 18년간 미술관과 전시 현장을 두루 거쳐온 큐레이터. 한국일보 문화사업단, 일민미술관, 서울경제 백상미술정책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예술에 대한 시선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감정의 여백을 기록하는 글을 쓴다. 현재 인공지능 예술 융합 분야에서 실험적 전시와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하은정 기자 haha@ilyo.co.kr

Copyright © 우먼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