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침대·악취 물 마셨다…미국 구금시설서 참혹한 일주일 보낸 근로자들

안서진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seojin@mk.co.kr) 2025. 9. 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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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근로자들, 7일간의 구금일지 공개
수갑과 쇠사슬 찬 근로자들. [사진출처=근로자 A씨 제공]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7일간 구금된 근로자들이 참혹했던 당시 현장을 전했다.

14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근로자 A씨의 ‘구금일지’에는 참혹했던 당시 구금시설 환경과 인권 침해 상황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해당 일지에 따르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지난 4일 오전 공사장을 급습해 근로자들을 검문·체포했으며 곧장 외국인 체포 영장 서류를 작성하도록 강요했다. A씨는 “종이에 서명하면 풀려나는 줄 알았다”고 기록했다.

ICE 요원들은 오후 1시 20분께 외국인 체포 영장(warrant arrest for alien) 관련 서류를 나눠주며 빈칸을 채우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서류에 대한 설명도, ‘미란다 원칙’ 고지도 없었다. 고압적 분위기 탓에 한줄 한줄 영어를 해석해가며 서류를 작성할 분위기도 아니었다고 한다.

A씨는 “근로자들은 이 종이를 작성하면 풀려나는 줄 알고 종이를 제출했다”며 서류 제출 후 손목에는 빨간 팔찌를 채웠다고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

이후 요원들은 서류를 제출한 근로자들의 짐을 뺏기 시작했다. 양파망 같이 생긴 가방에 휴대전화 등 짐을 넣으라고 강요했다.

A씨는 9시간 넘게 대기하다 손목에 케이블타이가 바짝 채워진 채 호송차에 탑승했다. 먼저 간 사람들은 쇠사슬로 허리, 다리, 손목까지 채워진 채 이동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근로자들은 구금 초반에 72인실 임시 시설에 몰아 넣어졌다. 1번부터 5번 방까지 있었고 구금자들은 방을 옮겨 다녔다.

늘어선 이층 침대와 함께 공용으로 쓰는 변기 4개, 소변기 2개가 있었다. 시계도 없고 바깥도 볼 수 없었다. 침대 매트에는 곰팡이가 펴있었다.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에서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았다. 변기 옆에는 겨우 하체를 덮는 천만 있었다고 한다.

임시 공간이 너무 추워 근로자들은 수건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일부는 전자레인지에 수건을 돌려 몸을 녹였다. 제공된 물에서는 냄새가 났다고 한다.

이후에는 치약, 칫솔, 담요, 데오드란트 등이 제공됐다.

A씨는 4일차에 입소 절차가 끝난 뒤 2인 1실 방을 배정받았다. 구금자 규모가 워낙 커 관련 절차가 늦어진 경우에는 72인실에만 머문 사람도 있었다.

“나는 합법 비자” 질문에도 “나도 모른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작성을 요구한 ‘자발적 출국 서류’. [사진출처=근로자 A씨 제공]
ICE와의 첫 인터뷰는 체포 3일 만에야 진행됐다. 요원들은 ‘자발적 출국 서류’ 서명을 요구했고 일부 요원은 A씨를 상대로 ‘노스 코리아’, ‘로켓맨’(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에 붙인 별명) 등을 언급하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A씨는 “나는 적법한 B-1 절차로 들어왔고 그 목적에 맞는 행위를 했는데 왜 잡혀 온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겠고 위에 사람들은 불법이라고 생각한다”는 요원의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구금 4일차인 7일에는 총영사관 및 외교부 직원 4명이 구금자들을 만났다.

총영사관 측에서는 “다들 집에 먼저 돌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사인하라는 것에 무조건 사인하라”고 말했다고 A씨는 전했다.

또 분쟁이 생기면 최소 4개월에서 수년간 구금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사인하면 강제 출국당해 비자는 취소되고 전세기를 통해 고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는 사실을 안내했다고 한다.

A씨는 그날 밤 11시께 4일 만에 정식 입소 절차를 밟았다. 죄수복으로 처음 옷을 갈아입고 키, 몸무게, 혈압 등 메디컬 체크를 받았다.

5일차인 8일에도 외교부 직원들이 구금자들을 만났다.

A씨는 “B-1 비자로 들어온 게 왜 불법인지에 대해 파악이 안 된 것 같아 화가 났다”며 “자발적 출국 서류에 사인한 후에 우리를 무조건 보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느껴져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고 적었다.

이후 근로자들은 11일 새벽 1시께부터 애틀랜타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근로자 330명(한국인 316명·외국인 14명)은 대한항공 전세기 KE9036편을 타고 한국 시간으로 오후 3시 30분께 고국 땅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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