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일으킨 ‘재일동포 고규미 사건’
굳이 실명을 내걸고 '사건'이라 제목을 단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나와는 무관하여 자칫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지나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관심을 끌만한 특별한 일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통해 완전한 해결을 도모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시작은 이러하다.

이유는 고 씨가 지원 대상 요건인 '국내거주 내국인'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지원금을 부당하게 받았다는 것이다. 고규미 씨는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태어난 교포 3세로 일본 영주권을 지니고 있으며, 외조부의 고향은 제주도 한림읍 금릉이다. 하지만 그녀는 2003년 한국으로 이주한 이래로 22년째 한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 물론 한국인으로 국민의 의무를 모두 이행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해왔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소득세법' 제1조 제1항 제1호는 거주자에 대해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83일 이상의 거소를 둔 개인'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조세특례제한법' 제2조 제1항은 '내국인'을 '소득세법'에 따른 거주자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녀가 '국내거주 내국인'이 아닌가? 아니라면 '국내거주 외국인'이란 말인가?
아마도 정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들은 재외동포이다. 2008년 3월 14일 전문개정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약칭 재외동포법) 제2조(정의)에 따르면, 재외동포는 "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장기체류하거나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나. 출생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사람(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에 국외로 이주한 사람을 포함한다)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사람"이다. 고규미 씨는 '가'에 속할 것이고, '나'는 주로 재미동포 등과 관련된 사항이다.
하지만 이중국적, 또는 영주권을 가진 재미동포가 귀국하여 한국에 오래 살면서 '국내거주 외국인' 취급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재중동포(조선족)는 중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재일동포는 처음부터 한국 국적이나 조선 국적, 또는 귀화하여 일본국적을 지닌 이들이다. 그러니 포기할 것도 없고, 선택할 것도 없다. 처음부터 국적이 한국이나 조선, 나중에는 일본이기 때문이다. 국적이 한국인데, 일본 영주권을 포기하고 귀화하라는 것도 우습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왜 한국을 국적으로 가진 재일동포만 일본에서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국내거주 내국인'의 권리는 누리지 못하고, 외국인 취급을 받고 있는가?
문제는 간단하고 복잡하다. 우선 간단한 이야기부터 하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재단)이 창작준비금 지원사업 공고를 내면서 '국내거주 내국인'으로 한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규미 씨는 자신을 '국내거주 외국인'으로 생각하고 있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국적이 한국이고, 국내에 오래 거주하였으니 당연히 내국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재단 지원금 심사를 받기 위해 제출한 주민등록초본에는 '재외국민'이라는 표기가 선명하다. 다시 말해 재단은 이를 알고 2020년과 22년에 그녀에게 지원대상으로 선정한 셈이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로 들어가자.
한국 국적을 갖고 예전부터 외국에 살던 또는 외국에서 출생한 이들이 적지 않고, 한국에 살다가 외국으로 이주하는 이들도 날로 늘어난다. 전 세계 곳곳에 터를 잡고 사는 한국인들을 우리는 통틀어 '재외국인' 또는 '재외동포'라고 부른다. 하지만 외국에 사는 한국인이라고 모두 비슷한 처지인 것은 아니다.
특히 재일동포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독특한 위치에 있다. 우선 일본 정부는 제국주의 일본의 침탈과 전쟁으로 인해 일본에 징용되거나 자의든 타의든 일본 땅에 살게 된 외국인, 특히 한국인에게 거주권 외에 시민권을 일체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특히 선거권이나 피선거권 등 참정권을 불허한다는 뜻이다. 다만 일본 거주 재외국민 중 1948년 대한민국 성립 이전 이주자 및 그 자손의 경우 '특별영주자격'이란 법적 지위를 부여했을 따름이다. 이는 권리가 아니라 그냥 자격인 셈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묻은 채 그 과오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남몰라 한 것이다. 그렇다면 독립한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조치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가? 필자는 과문한 까닭에 들은 바 없다. 다만 재외국민에 대한 최초의 법률로 1949년 제정된 '재외국민등록법'만 덩그라니 던져졌을 따름이다.
제1조(목적)
이 법은 외국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는 대한민국 국민을 등록하도록 하여 재외국민在外國民의 현황을 파악함으로써 재외국민의 국내외 활동의 편익便益을 증진하고, 관련 행정사무를 적절하게 처리하며, 그 밖에 재외국민 보호정책의 수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목적은 '현황 파악', '행정사무 처리', '보호정책 수립' 세 가지이다. 이제 막 독립한 나라에서 서둘러 재외국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현황 파악'부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나 현황파악의 근본적인 목적, 즉 재외국민 보호정책 수립과 실천은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이 또한 알 수 없다. 곧이어 전쟁이 터졌고, 남북으로 분열되었으며, 독재정권이 들어섰다. 1965년 한일수교 당시 양국 정부는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의 조치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5년 재외국민의 주민등록 및 주민등록증 발급이 있기 전까지 재일동포는 한국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등록번호를 취득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조선인이라면 외국인으로 규정당하고, 한국에서는 재외국인으로 취급받되 국인國人으로서의 권리는 보장받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에선 '조센징', 한국에선 '반쪽바리'라는 멸시를 당하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문제는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해결책은 매우 간단할 수 있다. 우리가, 한국정부가 한국 국적의 재일동포를 온전한 국민으로 대우하면 된다. 법률의 문제는 법률로 풀면 되고, 행정의 문제는 행정으로 풀면 되고, 외교의 문제는 외교로 풀면 된다. 진정으로 재일동포의 역사와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다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고규미 사건부터 풀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23일 일본을 방문하여 재일동포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의 캐치프레이즈는 '함께 쓰는 새로운 역사, 진짜 대한민국'이었다. 이제 해결할 때가 되었다.


1998년 한일농촌우정문화 교류회와 놀이패 두루나눔은 7월 18일부터 8월 11일까지 일본 치바현 나루하마 소학교를 시작으로 아비코, 나루토, 군마현, 나가노, 우에다, 나라, 오사카 등지에서 10여 차례 탈춤 공연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사카 이쿠노구 조선시장(지금의 코리아타운)의 길놀이에 이어 재일동포와 어울리는 풍물놀이와 탈춤 공연을 함께 했다. 고규미 씨를 처음 만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우리는 함께 풍물을 치며 춤추고 놀았다.
세월이 흘러 나도 고규미 씨도 머리가 희끗해진 초로에 접어들었다. 그녀가 한국에 와서 결혼하고 인형극 배우로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히 접했다. 그런데 이런 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간 재일동포 여러 친구들과 어울려 잘 놀면서도 왜 나는 재일동포의 아픔에 대해 제대로 해결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속상했다. 그래서 이제야 글을 쓴다.
그녀에게 닥친 부당한 일이 하나의 사건이 되어 재일동포의 법적 지위와 권리를 개선하고 해결하는 새로운 첫걸음이길 바라마지 않는다. 아니 그럴 것이라 굳게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