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돌아온 부르주아 패션…덜어냄 사라진 과잉의 미학[최수진의 패션채널]
과감한 패션이 올해 트렌드로 주목받아
사넬, 프라다, 제니가 쏘아올린 네오 부르주아
'맥시멀 럭셔리'로 패션계 주목

지난해까지만 해도 '조용함'이 패션업계를 지배했습니다. 2023년 시작된 스텔스 럭셔리(조용한 명품) 유행은 의류 안감을 보거나 가방을 열기 전까지는 어떤 브랜드인지 확인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로고를 통해 제품의 가치를 나타내는 대신 높은 가격대와 고급 소재를 사용하는 겁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불안정한 경제에 직면하자 ‘굳이’ 돈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 현상이 생긴 결과였죠.
조용한 명품은 주로 어두운색이나 무채색을 사용합니다. 밝은색을 사용하더라도 여러 색을 혼합하지 않고 한두 가지 색으로만 통일합니다. 여기에 디자인은 단순해야 하죠. 반짝이는 장신구나 과한 디테일은 모두 생략합니다. 덜어낼수록 트렌디하다는 게 핵심입니다.
당시 업계에서는 이 유행이 최소 2~3년 더 이어진다고 내다봤지만, 벌써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미니멀리즘을 뒤로 하고, 화려하고 과장된 1970년대 부르주아 패션이 새로운 트렌드로 올라섰습니다. 주요 명품 브랜드들이 '네오 부르주아(Neo Bourgeois)' 패션을 런웨이에 등장시킨 영향인데요.
안정된 경제력과 교양을 갖춘 계층이 입었던 격식 있는 옷차림이 '부르주아 패션'이고요. 여기에 현대적인 재해석을 담은 게 '네오 부르주아 패션'입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은 25/26 가을겨울(FW) 컬렉션에서 단정한 클래식 트위드 재킷에 룩에 '푸시 보우'를 포인트로 활용했습니다. 푸시 보우는 목둘레를 리본 모양으로 감싸는 1970년대 부르주아 스타일의 가장 대표적인 장치로, 레이스와 실크 소재를 주로 사용합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 역시 25 봄여름(SS) 여성 컬렉션에서 고급스럽고 우아한 푸시 보우 블라우스와 카디건을 매치했습니다.

또 다른 이탈리아 명품 발렌티노는 지난 3월 파리 패션위크를 통해 리본, 레이스 디테일에 페플럼(아래로 갈수록 풍성해지는 실루엣) 장식을 추가했습니다. 맥시멀리즘 디자인으로 유명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디자인이었죠. 화장실을 배경으로 한 런웨이에서는 '푸시 보우' 디테일이 적용된 아이템을 매치한 남성 모델의 워킹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영국의 명품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을 이끄는 '션 맥기르'는 화려한 장식을 내세운 컬렉션을 선보였습니다. 실크 소재를 사용한 블라우스와 스카프를 통해 모델의 목을 중심으로 풍성한 실루엣을 연출해낸 것이 특징이었죠.
명품 브랜드의 움직임에 인플루언서들의 패션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이돌그룹 블랙핑크 멤버 제니는 2025 멧 갈라(Met Gala) 무대에서 샤넬 드레스와 함께 보우 번(리본 장식을 머리에 사용한 디자인) 헤어스타일을 연출해 화제를 모았죠. 이 스타일은 ‘네오 부르주아’ 트렌드의 핵심 코드인 리본 디테일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대표 사례이기도 합니다.

국내 패션업계도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랜드월드의 여성 브랜드 로엠은 2025 가을 1차 컬렉션에서 돌아온 부르주아 트렌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상품들을 대거 선보였습니다. △타이 블라우스 △브이넥 타이 블라우스 △우븐매칭 트위드 미니원피스 △보트넥 타이원피스 등 푸시 보우 디테일이 적용된 다양한 블라우스 라인을 구축했습니다.
로엠은 원래 로맨틱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브랜드죠. 2004년 본격적인 '로맨틱' 분위기를 강조하며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할 때 내세운 게 '블라우스'와 '원피스'였거든요.
로엠은 로맨틱 트렌드에 맞춘 상품을 이번 시즌 30개 스타일로 크게 준비했다고 합니다. 이 배경에는 소비자들의 니즈가 있었는데요. 로엠에 따르면 올해 1~8월 ‘블라우스’ 키워드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30% 상승했다고 합니다. 이랜드 로엠 관계자는 "로엠은 과거 여성 패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선보이며, 30년간 로맨틱 시장을 지켜온 브랜드”라며 “올해 선보이는 푸시 보우, 레이스 등 디테일이 적용된 다채로운 블라우스 상품으로 1970년대 부르주아 패션을 쉽게 연출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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