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에세이〉샤머니즘에 빠진 로맨틱 코미디의 반전 매력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는 감독이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써낸 오컬트+로맨틱 코미디로서 미스터리나 스릴러적 요소도 있는 복합 장르다. 소재는 한국의 샤머니즘에서 가져왔다. 요즘 들어 부쩍 한국의 토속신앙이라 할 수 있는 무속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날개를 펴고 있다는 느낌이다. 심지어는 무속인들의 TV토크쇼까지 등장해서 놀랍기도 하다. 아무래도 직전 정권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사람이 균형을 잃을 만큼 맹신했던 무속에 대한 쏠림 현상(사회적 영향)인가 싶기도 하다. 감독은 타이틀에 무교적 '귀신' 대신 기독교적 '악마'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감독 나름의 균형 잡기였을 것이다.
길구(배우 안보현)는 청년 백수다. 취준생이라기보다는 힘들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 다음 수순을 막막해 하는. 하릴없이 동네를 배회하다 자신의 특기인 인형뽑기하다 술을 마시다 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느날 그의 눈에 들어온 아름다운 그녀 선지(배우 임윤아). 알고 보니, 그녀는 이 동네에 새로 개업한 '정셋빵집'을 사촌여동생 아라(배우 주현영)와 함께 운영중이며 길구의 바로 아래층으로 이사온 이웃이다. 관심이 있다 보니 청순한 낮 선지와 달리 새벽 2시면 기괴한 악마로 변하는 밤 선지를 목도하고 관찰하게 된다. 새벽이면 악마로 변하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선지아빠 장수(배우 성동일)와도 맞닥뜨린다. 그러다 장수의 부상으로 인해 밤 선지의 보디가드를 의뢰받는다. 선과 악을 오가는 이중적 인격은 귀신의 빙의 때문이라는 집안의 비밀을 알게 되고 빵집 알바까지 겸하게 된 길구는 조신한 낮 선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제멋대로인 밤 선지의 영체인 귀신의 비위를 맞춰가며 선지의 몸에서 빠져나가 주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
줄거리상 조상의 잘못으로 인해 대물림된 귀신의 빙의라는 샤머니즘적 인과 설정은 아무래도 천만 관객을 누적한 근간의 영화 '파묘'(2024)의 영향인지 객석에서 쉽게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 같다. 샤머니즘은 오랫동안 우리 생활에 파고들어 있어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여건이기도 하지만….
인류가 발전시켜온 고대사회의 문화는 세계 어느 곳에서건 종교적 주술적 의미에 그 기원을 둔다. 이 가운데 시베리아, 몽고, 만주, 한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우랄-알타이 문화권역에서 발견되는 원시적 종교인 샤머니즘은 한민족에게는 최초의 토착 민속 종교라 할 수 있다.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하느님의 아들 환웅과 여인이 된 곰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은 정치적 수장이었을 뿐 아니라 종교적 제사장인 무인(巫人)이었다. 단군신화가 샤머니즘의 소산이었을 만큼 B.C. 2333년부터 이어온 무속 신앙은 불교가 성행했던 삼국시대나 유교를 국교로 택했던 조선시대에도 공존해왔고, 그 공존은 민속으로 이해되리만큼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고대 종교였던 무속 신앙이 현대사회에서까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역사적으로 보면, 숭불정책 하에서는 불교와의 상생을 했으므로 오히려 전성기를 누렸다. 유교정책을 폈던 조선시대에서는 불교와 함께 억제되었지만 근절되지는 않았다. 유교 사회에서 억압을 받았던 여성들 그리고 신분이 낮은 민중들에게 무속 신앙은 그들의 욕망과 슬픔을 분출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되어주어서였다. 밖에서는 유교주의가, 집안에서는 무속신앙이 존속하는 이중구조 속에서 끈질기게 이어내려온 것이다. 미국의 알란 코벨 교수(노스캐롤라이나 대)는 자신의 저서에, 한국의 샤머니즘은 훗날 기독교를 신앙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어주어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노라 언급했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는 샤머니즘 외에도 청년실업의 현실을 비롯해서 서로 다른 이유로 세상과 단절된 상처를 입고 사는 현대인들을 노정한다. 내가 상처 입은 사람이라도 다른 상처 입은 사람에게 이타심 하나만으로 구원의 손길을 내밀다 보면 종래에는 자신의 상처까지 치유되는, 착함이 착함을 구하는 '무해함'이 있다. 무해함으로는 이 험한 세상을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 그렇지만 감독은 무해함이야말로 세상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는 의도를 영화 안에 잘 넣어두었다.
배우 윤아의 공도 있다. 그녀의 연기범위는 조신함에서부터 발랄함, 깨방정, 이중적 인격에 위악적인 악마에 이르기까지 제법 넓다. 그녀가 아이돌 출신이었음을 잊을 만큼이어서 그녀의 연기력에 왠지 믿음이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