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원조국 증거 이걸로 종결!” 배추김치 기원은 1400년대...기존 학설보다 300년 앞당겨

고재원 기자(ko.jaewon@mk.co.kr) 2025. 8. 1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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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12일 배추김치의 기원이 기존 학계의 인식보다 약 300년 앞선 15세기 중엽으로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그간 학계에서는 배추김치의 기원을 1766년 홍만선이 저술한 '증보산림경제'에 기록된 '숭(菘, 배추)'을 이용한 침저법으로 인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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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서 산가요록서 기록 찾아
배추 물김치 조리법 명시돼
[사진=픽사베이]
“깨끗이 씻은 백채(白菜) 한 동이에 소금 삼 홉을 뿌려 하룻밤 재운다. (절인 백채를) 다시 씻어내고 먼저처럼 소금을 뿌려 항아리에 담고 물을 붓는다. (1450년, 산가요록)”

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12일 배추김치의 기원이 기존 학계의 인식보다 약 300년 앞선 15세기 중엽으로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그간 학계에서는 배추김치의 기원을 1766년 홍만선이 저술한 ‘증보산림경제’에 기록된 ‘숭(菘, 배추)’을 이용한 침저법으로 인식해 왔다.

이는 그간 산가요록에 적힌 백채를 ‘머위’로 해석해왔기 때문이다. 1715년 홍만선이 저술한 ‘산림경제’에서는 중국 농서 ‘신은지’와 조선 농서 ‘한정록’ 등 이전 시대 농식서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백채를 머위로 명시해 단정했다. 이로 인해 18세기 이전 농식서에 등장하는 침백채는 오랫동안 머위김치로 해석돼 왔다.

연구팀은 “우리 고유의 나물인 머위를 한자로 백채로 표기해 온 전례가 있었으며, 이는 동의보감과 어학사전 등에서도 확인된다”며 “그러나 중국에서 유입된 채소인 배추 역시 백채로 표기되어, 동일한 한자어를 두고 혼선이 발생할 여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이 산림경제에 인용된 중국 문헌의 원문과 조선시대 농서·음식서·어학서·풍속서 등에 나타나는 백채의 용례를 조사·대조했다. 그 결과, 백채가 머위가 아니라 배추임을 사료적·조리학적·식물학적 근거로 입증했다. 연구팀은 “오류가 학계의 검증 없이 계속 인용되면서 잘못 정착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한양 지역에서 백채가 재배된 정황이 확인된다. 당시 농식서에 이를 김치의 재료로 다룬 기록이 없어, 백채는 주로 약용이나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결과로 백채를 김치 재료로 다룬 기록을 찾은 것이다.

연구결과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학술지 ‘한국문화’ 110호에 게재됐다. 박 책임연구원은 “배추가 조선 전기, 더 나아가 고려 말기부터 한반도에 유입되어 귀한 식재료로 널리 자리 잡았고, 이를 활용한 김치 제조법이 이미 널리 보급되었음을 이번 연구를 통해 실증적으로 검증했다”고 밝혔다.

원나라 승려 고영이 그린 배추 그림. [사진=세계김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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