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나광국〉재난에 강한 전남,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지난 8월 초 전남을 강타한 기록적 폭우는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침수 피해 신고만 579건 이상 접수되었고, 무안에는 시간당 142.1㎜의 극한호우가 쏟아져 순식간에 마을과 농경지가 물바다가 되었다. 수 백억원을 들여 건설한 복합문화센터와 보건소마저 침수되었고, 배수작업 중이던 60대 남성이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까지 발생했다.
전남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24년부터 2025년 전남 각지에서 설계 기준을 훨씬 초과하는 극한호우가 잇달아 발생했다. 나주 418㎜(200년 빈도 초과), 담양 381㎜(200년 빈도 초과), 함평 348㎜(100년 빈도 초과) 등 과거 100~200년에 한 번 내렸던 수준의 비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 2024년 7월에는 전남 진도에서 시간당 103.5㎜의 폭우가 기록되었고, 9월에는 전남 지역에 365건의 침수 피해 신고가 단 2시간 만에 쏟아졌다. 2025년 8월에도 무안공항에서 시간당 142.1㎜의 기록적 폭우로 147세대 19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피해 집중도다. 전남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도내 자연재난 피해액의 77%인 3284억원이 호우로 인한 것이었고, 전체 호우 피해액의 96%가 최근 5년간 발생했다. 이는 극한 기상현상이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의 방재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문제의 핵심은 낡은 설계 기준과 예산이다. 현재 우리나라 지방하천 방재 인프라는 30~50년 빈도 강우량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200년 빈도의 극한호우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법한 극한 폭우가 최근 들어 자주 발생하면서 기존 설계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이 되었다. 50년 전 기준으로는 200년 빈도 폭우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이번 피해로 명확히 증명되었다.
지방하천 정비사업이 1999년부터 25년간 지속되었음에도 전남의 지방하천 개수율은 예산 부족으로 인해 40% 수준에 불과하다. 과거 지방하천 정비사업은 국고 보조사업이었지만, 2020년 지방재정 분권 취지에서 지자체 사업으로 이양되었다.
그러나 지역별로 재정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따라 하천 정비 수준의 불균형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국가지원 지방하천' 제도 도입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는 지방하천 가운데서도 국가하천과 연계성이 높은 하천을 '국가지원 지방하천'으로 지정하고, 국가가 직접 하천공사를 실시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우리의 대응 방식은 여전히 사후 복구에 머물러 있다. 홍수가 발생하면 양수기를 동원해 물을 퍼내고, 피해 복구비를 지급하는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 이 방식으로는 다음 폭우에 또다시 같은 피해가 발생할 뿐이다. 이제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설계 기준을 현실에 맞게 대폭 상향 조정하고, 국가지원 지방하천제도 도입을 통해 지자체 재정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안전은 행정의 선택이 아니라 첫 번째 책무다. 기후재난시대에 걸맞은 극단적 기후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방재 인프라를 전면적으로 재검토·재설계해야 한다. 과거의 설계 기준과 안이한 행정으로는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없다.
전남이 재난에 강한 지역으로 거듭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극한 기상현상이 빈발하는 기후변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설계기준 도입과 국가지원 지방하천 제도 실현을 통해 예방 중심 행정으로 전환하는 것만이 다음 폭우 앞에서 우리가 무너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음 폭우는 변명이 아니라 책임으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