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우리의 삶에 가치를 묻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분들의 '삶의 의미가 없다'는 말씀 앞에선 항상 멈칫하게 된다. 이때 종종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바로 '가치'에 관한 대화다. 그렇게 거창하지 않은 소소한 대화다. 없던 삶의 의미를 생기게 한다기보다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내담자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시작으로 더 자주 사용된다. 가치는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심리치료의 한 종류인 수용전념치료에서는 '가치'를 삶의 중심축으로 삼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치는 단지 옳고 그름을 구분하거나 성공과 실패를 따지는 기준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기쁨과 슬픔을 겪으며 성장하는데, 이 모든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떠한 방향으로 살아갈 것인지 개인이 스스로 선택하는 삶의 방향을 의미한다. 즉, 가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실천해야 하는 과정이며, 일상적인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쯤에서 나의 가치가 무엇일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요술봉 은유'를 소개하고 싶다. 만약 여러분에게 무한한 힘을 가진 요술봉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이 요술봉을 한 번 휘두르면 삶의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고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고통 없는 삶', '부와 명예', '완벽한 인간관계' 등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런데 이 은유의 진짜 질문은, 고통마저 사라진 그 삶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것이다. 요술봉을 휘둘러 고통이 없는 삶, 완벽한 조건이 주어진 그 세상에서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것, 행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이 답이 바로 각자의 '가치'이다. 가치는 꼭 거창하거나 위대한 것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정직함', '성실함', '가족을 아끼는 마음', '배움을 추구하는 자세' 등 소박할 수도 있다. 어떤 내담자는 손주에게 사랑을 더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그 대단한 요술봉이 없는 오늘도, 그 가치를 행동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사실 우리에겐 무한한 힘을 가진 요술봉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의 가치 찾기 과정을 예로 들어보겠다. 필자의 가치는 '존중하기'이다. 처음엔 '존중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는 바람에서 출발했으나, 가치 작업에서 추구해야 할 진짜 가치는 언제 어디서나 내가 행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남이 나에게 주어야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여러 번의 고민 끝에 존중'하기'가 내 인생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하게 됐고, 지금도 이 작업은 조금씩 다듬어가고 있다. 가치는 집, 병원, 바깥 어느 곳에서 언제든지 '내가' 행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내가 정한 가치를 무조건 행할 필요는 없다. 마치 아이스크림 맛 고르듯이 가치 중 하나를 선택하여 내 행동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저 멀리 다가오는 잘 모르는 직장동료분께 정중히 인사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나의 '존중하기'라는 가치를 꺼낸다면 쑥스럽더라도 좀 더 밝게 인사할 수 있게 한다.
가치를 찾고 이에 따라 행동하면 고통이 사라질까? 그렇게 얘기할 순 없지만 우리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고통이 있어도 소중한 가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더라도, 내가 가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일 수 있다. 마치 필자가 지나가는 동료에게 용기 내어 반갑게 인사한 후 소소하게 밀려오는 뿌듯함은 매일의 피로와 긴장 속에서도 '오늘도 나쁘지 않다'라고 느끼게 한다.
오늘 이 글을 읽은 당신도 자신에게 요술봉을 건네본다면 어떨까? 모든 방해물이 사라진 그 자리에서 당신이 꼭 이루고 싶은 삶, 마음속 깊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의 삶을 더 빛나게 하는 답은 이미 여러분 안에 있을지 모른다. 윤지애 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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