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 음료에 의한 연쇄살인…기적의 제초제 '그라목손' 퇴출의 역사

2025. 8. 7.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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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프면 병원에 가고, 병원에 가면 병이 나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한 전제가 된 이 문장이 과연 당연한 사실이 된지 얼마나 되었을까. 마취제도 진통제도 항생제도 없던 시절, 세균과 바이러스의 존재조차 모르던 시절, 위생과 청결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이 머나먼 옛날이 아니라 기껏해야 100년, 200년 전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무지의 시대에 어떻게든 살리려 애썼던 의사들, 그리고 그 의사들에게 몸을 맡겨야만 했던 환자들의 이야기.
[의사와 함께 펼쳐보는 의학의 역사]
저렴하고 효과 좋은 제초제지만
치명율 70~90%의 극독 물질
사건·사고 잇따르며 '사용 금지'

파라콰트(그라목손). 제초제의 유명한 한 종류다. 제조체란, 말 그대로 풀을 죽이는 약품으로, 원하지 않는 풀을 죽이는데 쓰이는 물질이다. 당연히 농업이나 정원 관리 등에 널리 사용된다.

잡초 제거는 생각보다 엄청 힘들다. 필자 역시 과거 서울시 텃밭을 분양받아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데, 잡초를 뽑다가 허리를 다칠 뻔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뿌리기만 하면 이렇게 성가신 잡초를 죽일 수 있는 약이 있다면? 사실상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당연히 인류는 오래전부터 이런 약을 찾아 헤맸다. 황산, 비소, 구리염, 석유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약품은 독성이 강해 풀을 어느 정도는 죽일 수 있었지만, 살포하는 사람까지 죽을 수 있었다. 게다가 가격도 비쌌고 땅도 망가지는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

이번에 소개할 파라콰트는 1955년에 제초제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실 이 약물을 발견한 건 1882년인데, 당시에는 농약으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이 파라콰트를 주성분으로 하는 제초제 ‘그라목손’은 1962년에 개발·출시된다.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그라목손을 알리는 광고에는 ‘파라콰트는 액체로 된 쟁기다. 이제 쟁기는 필요 없다. 쟁기는 완전히 그라목손으로 인해 대체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농업 혁명이다, 조용한 혁명이 이미 일어났다”라고 흥분하기도 했다. 단순한 ‘오버’가 아니었다. 그라목손은 식물이라는 식물은 다 죽일 수 있는 약품이다. 속도도 빨라서 한번 쓰면 2, 3시간 내에 잡초가 다 죽는다. 가격도 저렴하다. 그러면서도 땅에 닿으면 활동을 멈춘다. 그래서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효과는 훌륭하고 강렬했으며, 가격은 저렴했다.

그러나 현재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이 파라콰트, 즉 그라목손은 생산 및 판매가 중지된 상태다. 이유가 뭘까. 뛰어난 제초 효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너무나 치명적인 독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파라콰트를 마셨을 경우 사망률은 무려 70% 이상인 것으로 보고되는데, 일부 의료 기관에서는 ‘90%를 초과한다’고도 보고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촌 지역에서 약품을 보관하던 중 실수로 마시는 사고가 발생해 사회 문제로 떠오른 바 있다. 다른 약들은 그나마 회생 가능성이 있지만, 파라콰트는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유는 파라콰트가 활성 산소에 의해 재활성화 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체내에서 산소 농도가 높은 폐 조직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데, 그 결과 폐 섬유화를 일으켜 호흡 곤란 끝에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또 피부나 눈을 통해서도 중독 증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낮은 치사율을 보이지만, 여전히 다른 약물에 비하면 훨씬 높다. 심지어 코로 흡입시에도 국소 자극을 일으키거나 경우에 따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는 등 위험한 효과를 내기도 했다.

단순한 독극물이 아닌, ‘극독’인 셈이다. 그렇다면 판매를 하지 않는 것이 옳겠지만, 그러기엔 저렴하고 효과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 시장에서 퇴출하는 대신 다른 조치를 취하게 됐다. 악취 물질과 구토 유발제를 첨가하는 등 섭취를 억제하기 위한 ‘보완책’을 도입한 것이다. 이 약을 실수로, 또는 우발적으로 먹는 일을 피하도록 하는 일종의 예방 조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라목손으로 인한 사고는 꾸준히 발생했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에서 그라목손으로 인한 사상 최악의 사건이 발생했다. 때는 1985년. 당시 일본에서는 파라콰트를 고농도인 24% 농도로 판매하고 있었고, 18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4월 히로시마에서 한 트럭 운전사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신 뒤 며칠 만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음료에서는 파롸콰트가 검출됐다. 9월에는 오사카에서 2명, 미에현, 후쿠이현, 미야자기 현에서 각각 1명씩 총 5명이 자판기 음료를 마신 뒤 사망했다. 이 중 한 명에게서는 또 다른 종류의 제초제인 디콰트로가 검출됐고, 나머지 4명 모두에게서는 파라콰트가 검출됐다. 이어 10월에도 4명이, 11월에는 2명이 사망했는데, 모두 파라콰트가 검출됐다. 안타깝게도 이 당시에는 폐쇄회로(CC)TV도 없었던 데다 물증도 없어 사건은 아직도 미제로 남았다. 이 사건 이후 일본은 파라콰트의 개인 판매 및 유통을 엄격하게 제한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파라콰트에 의한 음독 자살 사례가 급격하게 늘면서, 2012년 신규 등록이 금지됐다. 물론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환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그건 이미 시중에 판매된 제품 때문이었고 지금은 전면 금지된 상태다. 그 결과 2015년 발표에 따르면, 농약 자살자 수가 무려 56%나 감소했다고 한다. 우발적으로 마셔도 돌이킬 수 없는 약이었지만, 엄격한 금지 조치가 확실한 예방 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이낙준 닥터프렌즈 이비인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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