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딧]결혼도 쇼핑처럼…사랑은 멸종위기?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심가현 2025. 8. 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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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크레딧] 좋은 영화와 공연을 소개하고, 끝난 뒤 떠오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출연 배우 크리스 에번스(왼쪽부터), 다코타 존슨, 페드로 파스칼.


Dating is hard—but love is easy. (데이트는 어렵지만, 사랑은 쉽다.)

로맨틱 코미디를 그저 유치한 사랑놀음으로 치부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살면서 벌이는 대부분의 일이 깊게 따지고 보면 무언가와 사랑에 빠져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 아니던가. 그중에서도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중요한 사회, 경제, 정치적 이슈가 어디 있을까. 일반인 대상 연애 관찰 프로그램이 시대를 불문하고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셀린 송의 신작 <머티리얼리스트> 속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삼각관계는 어딘가 낯익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이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리메이크된다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여자 주인공은 루시(다코타 존슨), 뉴욕의 고급 결혼정보회사에서 커플 매니저로 일한다. 회사는 늘 결혼을 원하는 의뢰인들로 붐빈다. 그들은 필요한 물건을 사러온 백화점에서처럼 결혼 상대가 갖춰야 할 조건이 빼곡이 담긴 리스트를 내민다. “고양이와 민주당은 절대 안 돼요.” “BMI 20 이하 탄탄한 몸매여야 해요.” “서른한 살은 늙었어요, 스물일곱이면 좋겠네요.” 깐깐한 이 시장에서 키 185cm 남성의 '시장 가치'는 170cm 남성의 두 배다.

남의 커플 매칭에 여념이 없던 그가 두 남성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선다. 첫 번째 인물은 능력, 외모, 자산을 두루 갖춘 ‘유니콘’ 해리(페드로 파스칼). 루시는 자신에게 과분하다고 느끼는 해리와 데이트 도중 뜻밖의 장소에서 과거의 연인 존(크리스 에반스)을 마주친다. 존은 무명 배우이자 경제적 여유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지만,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다. 한 선택지는 안정을 보장하는 듯하고, 다른 쪽은 잊고 지내던 과거의 결핍을 뒤돌아보게 한다. 자신을 찾아온 의뢰인들에게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전자를 추천했을 그녀,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건 도무지 합리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선택은 루시에게 달려 있다.

영화는 사랑을 상품처럼 다루는 시대의 풍경을 직시하면서도 마음 한켠에 자리한 가장 본질적인 욕구를 비춘다. '조건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관객들은 루시의 고뇌를 함께하며 자신에게 되묻게 된다. 사랑은 합리적 소비의 동의어가 될 수 있을까. 비효율과 손해를 용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사랑일 수 있을까.

루시가 만나는 의뢰인들의 모습은 요즘 인기 있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과도 겹쳐 보인다. 사랑 앞에서도 상품성과 가성비를 따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 호감있는 여성에게 '잠실호수공원을 슬리퍼 끌고 나갈 수 있는 자가'를 어필하던 한 출연자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분명 매력적인 조건이었겠지만, 그 여성은 남성을 선택하지 않았다. 당신과 함께라면 호수공원 꼴도 못 보는 집에서라도 즐겁게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면 혹 이야기는 달라졌을 수도 있을까. 모두가 물질적인 조건부터 따지고 드는 시대라고 쉽게 한탄하지만, 당신이 꼭 그렇지만은 않듯 상대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없음은 없어질 수 없으므로'라는 문장으로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를 설명한다. 욕망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반면, 사랑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해진다고 했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멸종위기 사랑'의 세상에서도 기꺼이 무언가를 함께 무릅쓰기를 택하는 뉴욕과 서울 거리의 루시들을 떠올려본다.
<머티리얼리스트>는 오는 8일 개봉한다. 12세 이상 관람가.

MBN 문화부 심가현 기자 [gohyu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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