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쿠폰’보다 시급한 일[뉴스와 시각]

박동미 기자 2025. 8. 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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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미 문화부 차장

영화 할인 쿠폰 신청을 했다. 선착순에 극장 할당이 있다 보니 인파가 몰리는 지역이나 인기 영화 상영관은 이미 소진이다. 마음이 급해져 어디라도 가자는 심정으로 여러 사이트를 배회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꽤 떨어진 한 독립예술영화관에 표가 남아 있었다. 이참에 예술영화를 볼까 하다가 예매하지 않았다. 취향에 꼭 맞는 작품도 아니고, 이동 거리를 감내할 만큼 6000원 할인이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결론은 ‘OTT에 풀리면 봐야지.’

정부가 271억 원을 들여 영화 쿠폰을 ‘살포’한 명분을 떠올린다. 내수 진작, 문화 소비 촉진, 영화산업 활성화…. 쿠폰을 안 쓴 게 괜히 머쓱해지는데, 영화계 한 관계자는 “쿠폰은 애초 저 중 어느 것에도 기여하지 못한다”며 쓴소리를 했다. “뿌리가 썩었는데 흙을 갈아야죠. 이건 잠깐 몇 송이 꽃만 피우겠다는 겁니다.”

발급 첫날 서버 다운 대란을 겪으며 쿠폰 배포가 시작된 지 열흘. 일각에선 벌써 ‘쿠폰 효과’를 논한다. 지인의 표현대로, 꽃 몇 송이 잠시 피었나 보다. 근거는 실제로 극장가에 활력이 돈다는 것. 쿠폰 발행 직후 주말(7월 25∼27일) 관객 수가 전주 대비 14.8% 증가했다. 지난 주말(1∼3일)은 직전 주말보다 26.8% 증가해 219만 명이다. 어떤 영화가 수혜를 입었는지, 관람객 수와 예매순위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좀비딸’은 첫날 43만 명을 동원, 올해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 6월 개봉한 ‘F1 더 무비’는 이른바 역주행, 300만 명을 돌파했다.

정말 쿠폰 때문일까. 관객들은 할인 행사 덕에 극장을 가고, 영화를 봤을까. 내수 진작, 영화산업 활성화는 우선 내버려두고, 국민의 문화 향유 확대 측면만 놓고 봐도 ‘쿠폰 효과’는 아리송하다. 영화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열흘간 585만 명이 영화를 봤다. 2024년 같은 기간엔 537만 명, 2023년은 644만 명이었다.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고, 재작년보다는 오히려 줄었다. ‘쿠폰 덕에 그나마 이 정도’라고 주장할 수 있으나, 무책임한 결과론이다. 업계에선 결국 영화를 늘 보던 사람들이 조금 저렴하게 관람한 것뿐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넓은 의미에서 ‘민생 회복’ 정도는 될까.

영화 할인은 처음이 아니다. 2020년 영화진흥위원회의 ‘목금토일 6000원 할인’이 있었고, 이어 정부가 3차 추가경정예산으로 88억 원을 긴급 투입해 147만 장의 쿠폰을 배포했다. ‘언 발에 오줌 누기’라며 매번 무용론이 제기됐으나, 오히려 덩치를 키워 돌아온 것이다. 애초 복지 차원 소비 지원이 영화산업 위기 대응으로도 적절치 않지만, 관객 증가에도 효험이 없었는데, 이 정책은 누구를 위해 계속 존재하는걸까.

“관객들은 왜 극장에 올까요?” 영화시장분석가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는 최근 3년 개봉한 주요 영화를 나열하며 이렇게 질문했다. 이 대표는 관객을 끄는 힘은 결국 매력적인 영화 콘텐츠 그 자체라며 “할인 행사보다는 영화 제작 활성화에 지원을 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대다수 영화인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한국 영화 살리기가 아니라 극장 살리기” “반짝 효과로 생색내기” 등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영화 생태계를 바로 세우고 시장을 회복시키기 위해선 근원적이고 상업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271억 원이면 올 한 해 영화 예산(829억 원)의 30%에 달하는 규모다. 보다 영리하고 가치 있게 쓰였어야 했다. OTT의 급격한 성장과 영상 유통 다변화로 시대적 한계에 부닥친 한국 영화에, ‘진화’할 기회를 주는 것 말이다. 6000원 할인에도 OTT를 택한 소비자, 할인을 반기며 영화관을 찾은 관객도, 모두 그걸 바라고 있지 않을까. 티켓값 할인이 없어도 그들은 극장에 갈 것이다. 영화관에서 볼만한 ‘21세기형 영화’가 그곳에 있다면 말이다.

박동미 문화부 차장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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