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전통건축의 오해, 안채와 사랑채

2025. 8. 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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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교수

지난 칼럼에서는 전통건축이 대부분 단층으로 구성됐고, 중층 구조 역시 통 층 방식이 일반적이었음을 다뤘다. 이러한 형식은 기술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법제와 제도가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기둥 높이의 제한 그리고 조선 중기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온돌의 보급은 2층 이상의 건축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었다. 그런데 전통건축을 둘러싼 오해는 단지 구조나 기술에만 그치지 않는다. 주거 공간의 구성 방식, 특히 '안채'와 '사랑채'에 대한 인식에서도 그러한 오해는 여전하다. 이 주제는 앞선 칼럼들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다시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전통건축을 전공하며 조사를 위해 혹은 수업과 특강을 위해 답사를 다니다 보면,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주택을 대상으로 할 때가 있다. 전통주택에 대한 해설을 시작하며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이 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 즉 정침은 사랑채일까요, 안채일까요?"라고 하면 대부분 "사랑채"라고 답한다. 이는 사랑채가 주택의 가장 바깥에 위치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머물고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며, 외부 손님들은 안채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사랑채를 중심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가옥의 공간구성에서 '정침'은 안채를 말한다. 필자가 지난 6월 칼럼 '아름다운 전통주거, 여럿이 하나가 되다'에서 언급했듯이 16세기 주택에서는 사랑은 안채에 속하는 공간이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채'는 실제로는 '객청'의 모습에 가깝다.

세계유산이자 전통마을인 양동마을과 하회마을처럼 15-16세기에 조성된 주택이 잘 보존된 곳을 살펴보면 사랑의 공간은 집의 외곽 모서리에 있고, 방 하나와 한두 칸의 마루로 구성된 경우가 있다. 주택 내부에서 안방·건넌방·사랑·행랑이 한 건물에 밀집된 구조로 배치돼 있어, 지금처럼 별동의 '안채' 와 '사랑채'로 구분 짓는 것이 모호하다. 다만 무첨당이나 양진당, 충효당과 관가정 등 조선 중기의 주택들에서는 별도의 건물을 짓거나 안채에 건물을 붙여 추가하면서 비로소 사랑의 공간이 안채에서 분리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특히 종가 안채에는 3칸 대청이 마련돼 있었는데, 이곳은 유교 의례인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치르는 공간이었다. 국가는 오례를 중심으로 유교의 예제절차를 거행했다면, 일반 백성은 사례를 중심으로 이를 실천했다. 이러한 기능적 역할 때문에 안채는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중심 공간으로 인식됐고, 그래서 '정침'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가면 상황이 변한다. 남성 중심 사회의 보편화와 함께 집안의 대소사가 사랑채에서 거행되기 시작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제사나 각종 의례 역시 남성 중심으로 재편되며 사랑채가 중심 공간처럼 인식되는 현상이 굳어졌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가옥의 중심이 사랑채라고 믿는 인식은 불과 200-300년 남짓한 변화의 결과일 뿐이다. 한국 건축사 수천 년 역사 속에서 보면 매우 짧은 시간이다.

그리고 안채·사랑채의 구분 자체도 양반계층에 국한된 이야기다. 대부분의 일반 백성은 초가삼간처럼 하나의 건물에서 온 가족이 함께 생활했다. 두 개의 작은 방과 부엌으로 구성된 소박한 초가집에서 관례와 제사, 일상이 모두 이뤄졌다. 전통가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대개 왕실이나 양반 계층의 건축 사례를 통해 형성되고, 피지배계층의 건축은 구조의 간소함과 기록의 부족, 재해로 인한 소멸 등으로 인해 현재까지 전해진 사례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오늘날 유행하는 한옥은 과연 어떤 모습을 반영하고 있을까. 지금 우리가 소비하고, 동경하고, 재현하고 있는 한옥의 모습은 혹시 조선 후기 이후 특정한 계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의 터전이자 문화의 총체였다는 전통주거의 본래 모습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공간을 보는 방식의 전환이자 우리의 주거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상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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