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원자력, 자연이 먼저 실험한 에너지

이현철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 2025. 8. 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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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철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

원자로는 아인슈타인이 1905년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이후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원자핵 발견, 제임스 채드윅의 중성자 발견, 오토 한의 핵분열 발견 등 당대 최고 물리학자의 여러 발견과 이론적 뒷받침에 힘입어 엔리코 페르미에 의해 1942년 세계 최초로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원자로는 현대 과학기술의 결정체로 평가받지만, 일부 종교계와 생태주의자들은 인공적으로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신의 영역을 침범한다’ ‘자연의 질서에 반한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과거 지구상에 천연 원자로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아프리카 가봉 공화국 오클로 지역 우라늄 광산에서 약 20억 년 전 여러 개의 천연 원자로가 형성돼 수십만 년 동안 가동됐음이 1972년 밝혀졌다. 현재 자연계에 존재하는 우라늄 중 핵분열을 잘 일으키는 우라늄-235의 비율은 약 0.7%에 불과하지만, 20억 년 전에는 이 비율이 3% 이상이었고, 이는 현재 경수로 핵연료의 우라늄-235 비율보다 약간 낮지만 충분히 경수로 핵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우라늄이 풍부한 오클로 지역 곳곳에 물이 스며들어 감속재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레 경수로 노심과 비슷한 환경이 만들어졌고, 이로 인해 천연 원자로가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원자로 가동에 따른 열로 수분이 증발하면 가동이 멈추고, 다시 물이 공급되면 재가동되는 식으로 간헐적 가동과 정지가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이 천연 원자로들이 방출한 총에너지는 우리나라 신고리 1호기 원자로가 전출력으로 5년간 운전하며 방출하는 에너지와 맞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천연 원자로의 존재는 핵분열 반응이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자연에서 발생해 온 현상임을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증거이다.

오클로 천연 원자로의 발견은 또한 사용후핵연료 심지층 처분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오클로 천연 원자로는 가동이 멈춘 후 땅속에 그대로 묻혀 있었으니, 천연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이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원자로 가동으로 인한 핵분열 생성물 중 지르코늄 바륨 네오디뮴 등 대부분의 핵분열 생성물은 결정 구조 내에 고정되거나 광물과 결합해 이동하지 않았으며, 핵분열 생성물의 90% 이상이 발생지점에서 수 cm의 범위에, 일부 이동성이 높은 세슘 루테늄 스트론튬 같은 핵종들도 수 m 이내에 머물러 있었다.

사용후핵연료 심지층 처분이란 사용후핵연료를 깊은 암반층에 영구적으로 격리하는 처분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사용후핵연료를 두께 5㎝의 구리 용기에 넣고 이 구리 용기 주변에 벤토나이트를 채우는 등의 공학적 방벽을 설치한 후, 지하 500m 암반층에 처분할 계획이다. 심지층에서 구리의 부식 속도는 연간 0.1마이크로미터(μm) 이하이며, 5㎝의 구리 용기가 부식되는 데는 수십만 년이 걸린다. 벤토나이트는 일종의 점토로, 물을 흡수하면 부피가 팽창해 물의 유입을 차단하는 성질이 있다. 이러한 인공 방벽이 모두 뚫린다해도 500m의 암반층으로 구성된 천연 방벽이 존재한다. 오클로 천연 원자로에서 가장 이동성이 높은 핵종들이 20억 년 동안 최대 수 m 이동한 사실을 고려하면 사용후핵연료 안의 방사성핵종이 방사능을 띤 채 500m의 암반층을 뚫고 이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오클로 천연 원자로의 사례는 원자력 기술이 결코 비자연적이거나 인간의 오만의 산물이 아님을 증명한다. 자연이 이미 수십만 년 동안 통제된 핵반응과 20억 년 동안 방사성 물질의 격리를 실현한 전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과학기술이 이를 모방하고 개선해 보다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두려움과 오해로 원자력을 기피하기보다,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 시각으로 이를 안전하게 활용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자연의 법칙과 과학적 이성 위에 구축된 원자력 에너지는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중요한 열쇠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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