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단상] 상록회, 그리고 태극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던진 질문이다. 역사와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이 물음은 현대의 우리에게 의미 깊은 화두가 됐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다. 현재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내 가족과 학교, 우리 고장의 역사를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기에 특히 역사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춘천고 교장으로 재직하며 자랑스러운 것 중 하나는 우리 학교의 빛나는 역사다. 6·25 전쟁 당시 춘천은 전국 최초로 학도병이 활약한 곳이었다.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부터 춘천고 운동장에 모인 학생 311명이 학도병으로 참전해 춘천대첩에서 용맹을 떨쳤다. 그리고 이 중 27명이 조국을 위해 꽃다운 목숨을 바쳤다.
춘천고의 나라 사랑 정신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1937년 3월 14일 결성된 항일 비밀결사 ‘상록회’다. 사계절 늘 푸른 상록수처럼 조국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을 갖는다는 뜻을 담은 상록회는 독서와 토론을 통해 민족의식을 키우며 조국 독립의 꿈을 품었다. 춘천농고 등 지역 학교와도 연대하며 학생운동을 이끌어갔다.
그러나 숭고한 꿈은 일제의 탄압 앞에 시련을 겪어야 했다. 1938년 일제에 발각돼 137명이 연행됐고, 10명이 2년 6개월 형을 받았다. 백흥기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스무 살 나이에 순국했고, 1941년에는 고웅주가 옥중에서 순국했다. 꽃피우지 못한 청춘을 조국 광복이라는 대의를 위해 바친 것이다.
상록회 선배들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 의식,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책임감이다. 상록수처럼 변함없는 마음으로 후세에 더 나은 조국을 물려주려 했던 그 숭고한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참된 나라 사랑의 모습이다.
광복 80년을 맞는 지금, 우리는 선배들이 꿈꾸었던 조국에 살고 있다. 눈부신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었고, 문화 강국으로 세계에 우뚝 섰다. K-열풍이 전 세계를 사로잡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우리 문학의 위상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조국의 오늘이다.
아직도 우리에겐 과제가 남아 있다.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실현,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 등이다. 상록회 선배들처럼 변함없는 나라 사랑의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나라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웅장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 속 작은 행동들의 연속이어야 한다.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교육해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것, 민주주의를 지키고 사회의 부조리에는 목소리를 내는 것, 약자를 배려하며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도 나라 사랑의 실천이다. 무엇보다 다음 세대가 살아갈 터전을 더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려는 마음도 진정한 나라 사랑에서 온다.
돌아오는 광복절, 각 가정에 태극기 게양을 요청드린다. 태극기 한 장 한 장이 상록회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마음이며, 그들이 꿈꾸었던 조국에 대한 우리의 변함없는 사랑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태극기 아래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상록회의 정신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살아 숨 쉬어야 할 현재진행형의 가치다. 사계절 변함없이 푸른 마음으로 이 땅을 사랑하며,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것이 바로 광복 80년을 맞는 우리의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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