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R로 두 생명 살린 ‘의인’ 알고 보니···‘억강부약’ 외치던 인권변호사[강홍민의 미담]

2025. 7. 3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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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출신’ 류하경 변호사 국군수도병원 앞 쓰러진 군인 CPR로 구해
작년 대전 지하철서 쓰러진 아주머니도 응급처치로 구해
류 변호사 "'억강부약'이 제 모토···어려운 처지 놓인 이들 이야기 들어 주고파"

얼마 전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한 한 군인이 병원 정문 앞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쓰러진 걸 의인의 재빠른 대처로 생명을 살린 사례가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13일 땅거미가 지던 저녁 7시경 류하경 씨는 국군수도병원 정문 근처에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의 시야에는 환자복을 입은 한 군인이 병원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유난히 키가 커 눈길을 끌었던 그는 병원으로 들어서던 중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지듯 넘어졌다.

“속으로 ‘키가 참 크네’라고 생각하던 순간 그 친구가(군인이) 앞으로 넘어졌어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게 아니라 의식이 없어 쓰러지면서도 머리를 다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멀리서도 느껴졌어요.”

류 씨는 “어?”라는 짧은 외침과 동시에 군인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쓰러진 군인의 코에 손을 갖다 댄 류 씨는 호흡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기도를 확보한 류 씨는 곧바로 CPR(심폐소생술)에 들어갔다. 류 씨의 급박한 움직임에 주변 이들은 하나 둘씩 그의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류 씨는 현장으로 모인 이들에게 임무를 할당했다.

지난 7월 13일 경기도 분당구에 위치한 국군수도병원 앞에서 쓰러진 군인을 류하경 변호사가 CPR하는 모습을 챗GPT가 그렸다.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땐 주변 사람을 특정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병원 유니폼을 입고 있던 한 아주머니께 병원으로 가서 의사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고, 근처에 있던 군인들에게는 쓰러진 청년의 팔, 다리를 펴 달라고 부탁했어요.”

호흡이 없던 환자의 골든타임이라는 걸 직감한 류 씨는 빠르고 정확하게 CPR을 반복했다. 그는 3년 전 라이프 가드 자격증을 취득한 인명 구조 요원이었다. 배운 대로 환자의 호흡을 체크하면서 반복 또 반복했다.

수분쯤 지났을까. ‘쿨럭’하는 소리와 함께 환자의 호흡이 돌아왔다. 숨죽여 지켜보던 이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류 씨의 손도 멈췄다.

다행히 현장에 빠르게 의료진이 도착했고, 환자와 함께 목격자 신분으로 병원 응급실로 따라 들어간 류 씨는 의료진에게 상황을 전달하며 응급상황은 일단락됐다.

13일 밤 병원 앞에서 쓰러진 군인은 신분을 밝히진 않았지만 취재진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저를 살려주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 삼아 남은 군 생활도 열심히 복무하겠다”고 전했다.

 

 생명 살린 ‘의인’···약자 권익 보호 전도사인 류하경 인권변호사

응급상황에 놓인 군인의 생명을 살린 그는 공익인권변론 법률가 단체인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였다. 어릴 적부터 수영을 좋아했던 그는 철인3종 경기에 참여할 정도로 운동 마니아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3년 전 우연히 따 놓은 ‘라이프가드 자격증’이 실제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일지 몰랐다던 그는 사실 생명을 구한 적이 한차례 더 있었다.

작년 이 맘 때 즈음, 대전 충남지방노동위원회 심판위원으로 활동 중인 류 변호사는 재판 심리 참석을 위해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의자에 앉아 목적지로 향하던 그의 옆 좌석에 한 아주머니가 앉아 있는 상태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작년 대전 지하철에서 쓰러진 여성을 재빨리 응급처치 하는 류하경 변호사의 모습.(제작=챗GPT)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아주머니를 본 그는 재빨리 그녀를 좌석에 곧게 펴 눕혔다. 호흡이 없는 아주머니의 기도를 확보하고 CPR을 준비했다. 호흡은 없었지만 의식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류 변호사는 환자를 향해 계속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 제가 남성인데, 지금 CPR을 해야 돼서 윗옷 단추를 좀 풀게요. 가슴에 좀 접촉이 있습니다. 시작할게요.”

다행히 십 여 차례의 심폐소생술 끝에 깨어난 아주머니는 류 변호사와 함께 지하철에서 내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라는 말이 있듯, 약자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그의 앞에 긴급 상황이 반복되는 걸 보면 누군가를 돕는 일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 않을까.

그에게 물었다. 꿈이 무엇인지를.

“이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억강부약(抑强扶弱)강자를 억누르고 약자를 돕는다는 뜻의 고사성어)’이 사실 제 삶의 모토이기도 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더 이퀄라이저’인데, 덴젤 워싱턴이 나쁜 놈들은 없애주고 착한 사람은 잘 살게 만들어 주는 쾌감이 있거든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제 일과도 비슷하지 않나요.(웃음)”

류하경 변호사(본인 제공)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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