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품은 배우' 이정은의 연기 여정

김지호 인턴기자 2025. 7. 30.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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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미스터션샤인>, <조명가게> 등 모두가 그를 “알고 있다!”는 반응은 같았지만 대표작은 달랐다. 그만큼 많은 작품에서 얼굴을 알린 배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우 이정은의 연기 인생에 빨간불은 없었다. 이정은은 여전히 누구보다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사진=NEW 제공

"이제는 연기에서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리하게 결과만 좇기보다는 진심을 담는 게 먼저다" 

[우먼센스] 필모그래피가 넘치는 배우 이정은. 2019년 영화 <기생충>에서 미스터리한 가정부 '문광'을 연기하며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정은은 어떤 작품에서든 등장하면 기억에 남는 연기파 배우 중 한 명이다. 매년 다양한 작품에서 신스틸러를 차지하며 연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번엔 그가 웹툰 원작 코미디 영화 <좀비딸>로 돌아왔다.

<좀비딸>은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진 상황에서 좀비가 된 딸 '수아'(최유리 분)를 지키려는 아빠 '정환'(조정석 분)의 고군분투를 그린 코미디 가족 영화다. 좀비를 색출하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 정환은 딸 수아를 데리고 고향 은봉리로 숨어든다. 액션 스릴러 영화 <인질>과 동명의 웹툰 원작 시리즈 <운수 오진 날>로 독특한 전개의 스릴러를 완성한 필감성 감독과 영화 <부산행>, <반도> 등 K좀비물 1인자인 전영 안무감독이 뭉쳤다. 이정은은 은봉리에 사는 정환의 엄마이자 수아의 할머니 '밤순' 역을 맡았다.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한 이정은은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의 점쟁이 보살 '서빙고'역을 소화하며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이후 드라마 <쌈,마이웨이>, <미스터 션샤인>, <눈이 부시게>부터 영화 <검사외전>, <택시운전사>, <미쓰백> 등 수많은 작품에서 맡은 배역을 맛깔나게 소화해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19년 <눈이 부시게>로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조연상을 수상한 데 이어, 그해만 8개의 상을 수상했다. 2020년에는 <기생충>으로 제56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조연상과 제26회 미국배우조합상 영화부문 캐스팅상을 받았다. 지난 10년간 영화와 드라마 등 70여 개에 이르는 작품 활동을 해온 이정은의 연기 인생에 브레이크는 없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100% 완벽한 연기는 없다"고 할 만큼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열정과 끈기가 대단했다. 그가 직접 마주하고 전한 제3세계 어린이들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사진=NEW 제공

영화 <좀비딸>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좀비딸>은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건강한 작품이다. 건강한 코미디 드라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시나리오를 만났다. 배우로서 관객이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콘텐츠를 만드는 일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는 좀비라는 장치를 통해 가족, 양육, 공존의 문제를 던지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래서인지 시사회 시작하고 반응이 좋았다. 좋게 생각해 주는 분들이 많았다.

건강한 작품이라고 평가한 이유가 무엇인가?

'용기'와 '희생'이라는 주제가 있어서다. 인간일 때 일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좀비를 대하는 태도가 색다르다. 다른 매체에서도 좀비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장면이 있지만, 대부분 좀비를 살해하는 결말이 많다. 하지만 <좀비딸>은 다르다.

건강한 코미디 드라마 장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

코로나19 시기를 견디면서 협력과 배려의 중요성을 느꼈다. 우리나라만큼 규칙을 준수하고 같이 보듬어주며 협조하는 국민이 없다. 이런 부분 덕분에 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딸을 지키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도 협조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세대를 아우르는 감동이 있다. 또 미디어에서는 연일 좋든 싫든 상상 이상의 사건과 표현이 나오고, 시청자들은 피로감에 빠져있다. 그래서 자연과 같은 상쾌한 작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좀비딸>은 재미와 감동은 물론 영화 속 아름다움 장면이 시원함을 선사해 주는 그런 작품이다.

촬영하면서 느낀 점은?

사실 리딩 할 때까지만 해도 좋은 작품인 것은 알았지만, 결과물이 너무 뻔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촬영된 장면을 보자 생각이 변했다. 경치가 정말 아름답게 표현됐고 장면마다 동화 같은 따뜻함과 동시에 시원함이 느껴지더라. 감독님께 '무슨 요술을 부린 거냐'고 묻기까지 했다. 웹툰을 기반으로 해 단순한 구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구성하는 방식에 따라서 신선함을 줄 수 있다. 이 영화는 상쾌한 작품이다.

<운수 오진 날>에 이어 필감성 감독과 두 번째 작품이다. <좀비딸>에 합류를 결심한 계기가 있나?

<운수 오진 날> 작품 촬영을 하다가 감독님이 <좀비딸> 시나리오를 보고 있다며 스케줄을 물어봤다. 원작 웹툰을 안 본 상태에서 '좀비가 나오고 좀비가 된 손녀를 가족들이 살리는 내용'이란 감독님의 설명을 들었을 때 인상적이었다. 감독님이라면 분명 장면마다 공을 많이 들이시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출연작을 선택할 때 '나를 필요로 하는 작품인지'로 판가름한다던 말이 기억난다. 나를 필요로 한다는 건 어떻게 파악하는가?

'나를 설득하는 힘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는 혼자만의 싸움이랄까. 대본을 읽으면서 나 말고는 다른 누군가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고, 작품을 제안한 사람의 정성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순간도 있다. 때로는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 말없이 머쓱하게 건넨 글을 받자마자 "그냥 내가 할게"라고 말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저는 알맹이 없이 그저 속이려 드는 상대방의 속셈은 빠르게 감지하는 편이다. 주변에서 다 좋다고, 분명 도움될 거라는 작품이라도 그런 느낌이 들면 마다한다.

극 중 캐릭터인 '밤순'과 싱크로율이 높다는 평가가 많다.

눈이 조그매가지고 보일락 말락 하고 이런 부분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원작과 닮을 수 있었던 건 분장과 의상팀의 노력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밤순'에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 투영했나?

어머님들이 슬픈 감정의 끝에서 "더 흘릴 눈물도 없다. 메말랐다"는 표현을 하신다. 밤순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밤순이 느끼는 슬픔의 경지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올해 4월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견도 생각이 났다. 19년간 함께하면서 3~4년은 정말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훈육과 사람, 기다림으로 결국 마음이 통했다. 그 모습에서 손녀 '수아'를 바라보는 밤순이 생각났다.

사진=NEW 제공

극 중에서 사투리를 사용한다.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데 비결이 있나?

웹툰에선 전라도 사투리를 쓰지 않아서 혹시라도 캐릭터가 거칠어 보이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다. 사실 이제 와서 말씀드릴 수 있는데, 사투리 대사를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녹음된 데이터를 기준으로 삼고 여러 선생님들의 억양을 따라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100% 똑같이 되는 건 아니다. 사투리를 평상시 일상어처럼 사용하라고 하면 못한다. 한 작품이 끝나고 나면 항상 번아웃이 온다. 그만큼 쉽지 않다. 처가가 전라도 지역인 동료 배우 조정석과 윤경호에게도 수시로 의견을 구하며 톤과 억양을 조율했다. 확실히 사투리 연기는 어떤 사람의 영향을 받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또 이제는 연기의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과정에 집중해야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고 덜 지치기 때문이다. 사투리 연기도 예전에는 "이만큼 연습했는데 왜 티가 안 나지"하며 괴로워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지역 사람의 정서를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리하게 결과만 좇기보다는 진심을 담는 게 먼저다.

극 중에서 2NE1의 <내가 제일 잘나가> 춤을 추는 장면도 있다. 부담은 없었나?

이 장면에 대한 부담이 컸다. <우리들의 블루스> 이후 작품마다 춤추는 장면이 꼭 들어가더라. <좀비딸>도 감독님이 춤추는 장면을 꼭 넣어야 한다고 하셔서 오랫동안 연습했다. 오로지 어머니들의 흥으로만 안무를 넣을 순 없어서 개인 교습을 받았다. 영화사에서 붙여준 코치님에게도 안무를 배웠다.

연기할 때 외에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지 궁금하다.

너무 바빠서 그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촬영할 때는 연기를 제외한 모든 생활 영역을 사실상 방치하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하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몰아 보기도 한다. 안무 외우고 익히는 과정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춤도 추러 다닌다. 이번 촬영 후에는 개인 교습 춤 선생님이 안무 외우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했다. 근데 아직 '뽕삘'이 남아있다더라.(웃음)

와이어 액션도 처음 도전했다.

공중에서 매달려 연기하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지만, 동시에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도전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절감했다. <잭과 콩나무>와 <걸리버 여행기> 같은 동화나 마블 영화도 좋아한다.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점은 배우 입장에서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언제 또 와이어에 매달려 공중에서 연기해 보겠나.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지만, 그만큼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이번에 느꼈다.

체력적인 부분은 어땠나?

촬영이 이어지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꼈다. <운수 오진 날> 때보다 감독님도 '체력이 떨어지신 것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선배 배우들이 오랜 시간 꾸준히 작품을 하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걸 요즘 들어 더욱 실감한다. 체력관리도 하려고 노력 중이다. 개인 PT를 받고 춤도 가끔 춘다. 종종 PT 선생님이 "왜 이렇게 안 오냐"고 연락 주신다.(웃음)

사진=NEW 제공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고 싶다. 우리가 사는 기준만으로 세상을 판단할 수 없다"

각종 영화제와 인터뷰에서 보여준 영어 실력도 화제다.

1998년에 캐나다에 처음 놀러 갔는데 말을 잘 못 알아들어 창피한 일이 많았다. 그때부터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제에 참여했는데 다른 배우들이 국내 일정 때문에 돌아가고 혼자 남게 됐다. 자막을 넣을 수도 없고 외국인들이 직접 듣고 있으니 연습해서 해봐야겠다고 생각해 시도했다. 지금도 영어 공부는 계속하고 있다.

아프리카 잠비아로 봉사활동도 다녀왔다.

김혜자 선생님께서 "아프리카에 너무 못 살고 힘든 아이들이 있다. 후배들도 기회가 되면 가보면 좋겠다"는 얘기를 오래전부터 하셨다. 김혜자 선생님의 추천으로 관심을 갖고 가게 됐다. 직접 가보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무관심으로 인해 땅이 버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서가 우리에게 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가 사는 기준만으로 세상을 판단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환경 문제나 불균형 발전의 문제를 직접 눈으로 본 경험이 연기 외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줬다.

'길벗'(방송, 영화, 연극인들의 사회봉사 모임) 거리 모금 캠페인도 참여하더라.

'길벗'과는 거리 모금 행사에 오래 참여했던 후배의 추천 덕에 연이 닿았다. 단체에서 개최한 법륜 스님 공개 강연에 갔던 걸 시작으로 겨울 연탄 봉사도 함께했다. 그 외 몇몇 사회단체와 계속해서 관계를 맺고 있다. 수감자 자녀들을 돕는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의 모금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사회봉사에 관심이 많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 마음이 점점 커지는 건 나이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그런 대의적 차원이라기보다 대부분 개인적 수양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더 많이 가지고 싶고, 명예도 더 높아졌으면 하는 때가 있더라. 그렇게 욕심이 차오를 때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마음을 조금씩 다스리게 된다. 욕심을 덜어내는 것이다.

공동체의식이 담긴 이번 영화 어떤 작품인가?

고 남문철 배우가 했던 "영화에서 클리셰는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그게 인생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익숙한 것이 주는 감동, <좀비딸>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어떻게 보면 좀비를 훈련시키고 공생하는 단순한 이야기다. 모든 인물도 복잡하지 않은 구조 속에 있다. 마치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을 안 본 것처럼 구성하는 것이 어렵다. 쉽게 다가가면서 감동을 주는 것도 힘들어서다. 감독님이 어마어마한 공을 들였다.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코미디라는 평가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꿈이 무엇인가?

원대한 꿈은 없다. 멈추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그랬으면 한다. 모든 선택에 큰 책임감을 지고 사는 것보다는 그저 가볍게 즐겁게 가고 싶다. 경력 단절이 되면 힘들 수 있지만 그런 두려움 없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운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김지호 인턴기자 womansens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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