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수많은 목숨을 건너 우리 곁에 온다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압제에 대한 끝없는 거부를 뜻하는 것이다. 민중이 원하지 아니하는 정치권력을 폐지할 권리 없이는 민주주의는 없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민중의 혁명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최종적인 담보로 하여 존립하는 것이다.’
민중이 원하지 않는 권력을 폐지할 권리, 윤석열 파면과 처벌이 꼭 그 권리의 행사였으므로 이 대목, 마치 12·3 계엄 관련 칼럼처럼 읽힌다. 이 글은 50년 전인 1975년 쓴 김지하 ‘양심선언’의 부분이다. 장문이며 명문인 이 선언을 지금 읽어 봐도 당장 잡혀 들어가지 않을까, 소름이 돋는다. 이때가 2차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선고와 사법살인이 이뤄진 그 무렵이다.
김정남 선생 말이다. “세상이 너무나 살벌해져서 그냥 두면 감옥에서 꼼짝없이 죽게 생겼어요. 그들이 공소로 내세우는 것이 김지하 자필 진술서예요. 고문 끝에 쓴 것인데 ‘나는 가톨릭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로서, 반국가 활동을 획책했다’는 노란 표지의 책자, 그것을 뒤엎지 않고는 살릴 방도가 없어요. 어떻게, 어떻게 이 판을 뒤집을 수 있을까, 오직 그 생각뿐이었어요.” 노란 표지의 책자는 군사정권이 9개 국어로 번역하여 전세계에 배포한 ‘김지하 반공법 위반 사건 관계 자료’를 말한다. 그때 묘수로 떠오른 것이 지학순 주교가 했던 ‘양심선언’이었다. 김정남은 진술을 뒤엎을 글, ‘양심선언’을 기획했다. 초고는 조영래가 썼다. 초고가 감옥으로 들어가고 김지하 글이 보태지고, 보완한 내용이 다시 감옥으로 갔다가 수정되어 나오고, 장시 ‘장일담’과 ‘말뚝’ 이야기가 얹어지고, 그 살벌한 시대에 원고가 10번 넘게 옥을 넘나든다. 들어갈 때는 조영래-김정남-전병용-김지하, 나올 때는 역순이다. 전병용은 창살을 넘나드는 손, ‘민주 교도관’이다. 다들 목숨 걸고 한 일이었다. 글이 완성되자 김정남은 여러 벌을 만든 뒤에 독일인 신부 오도 하스를 통해 일본으로 보낸다. 그해 8월 일본 가톨릭정의와평화협의회(정평협) 소마 노부오 주교를 통해, 그리고 미국에서 동시 발표된다. 이 선언은 외국 언론에 전문 번역 보도되면서 전세계에 큰 충격과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에서 구명운동을 하자면 새 자료가 계속 나와야 해요. 그래야 관심을 이어갈 수 있지. 내가 김지하 원주 집에 가서 짐을 전부 꺼내서 뒤졌어요. 정보부에서 털어간 뒤라, 써 놓고 미처 챙기지 못한 시, 쓰다 만 시, 그리다 만 난초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거기서 시 ‘타는 목마름으로’가 나왔어요. 산문 ‘가포일기’하고.” 그가 발굴한 ‘타는 목마름으로’는 1976년 홍성우 변호사가 김지하 재판 최후 변론 때 첫 낭독 하면서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해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육필 원고가 선생을 찾아온다. 국내 출판은 불가하니, 밖으로 나가야 한다. 길 잃은 것들의 종착은 김정남이었다. 그는 ‘양심선언’이 도일하는 경로를 따라 일본 정평협 간사 송영순에게 보낸다. 이 책은 1978년 일본에서 ‘불꽃이여, 나를 태워라-어느 한국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필자와 역자를 가명으로, 첫 출간 된다. 김정남은 조영래를 ‘백석정한(白晳精悍)한 사람’이라 했다.
영화 ‘1987’에 보면 ‘우촌전’(友村前)으로 시작하는 편지가 나온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급히 몇자 적어 보내네. 박군 건으로 구속된 조·강 건은 완전 조작극이야.’ 발신 이부영, 수신 김정남이다. 우촌은 김정남의 호다. 당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사무처장 이부영은 인천 사태 배후 혐의로 옥중이었다. 옥에서 반출되는 이 편지, 우리 현대사의 가장 빛나고 장엄했던 장면,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이 편지가 어떻게 나왔을까? 역시 등장한다. 창살을 넘나드는 손, 민주 교도관들. 이부영은 교도소 보안계장 안유로부터 취재한 내용을 편지로 써서 교도관 한재동에게 넘기고, 한재동은 전 교도관 전병용에게 전달하고, 전병용은 유원호텔에서 김정남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며칠 뒤인 3월27일 전병용은 체포된다. 영화에서 배우 유해진이 분한 한병용, 한재동과 전병용을 합친 이름으로 나온다.
이 대목 극적이다. 현대사의 주역도 아니고, 미관말직 8급에, 잡히면 구속에 파면에, 그런데 무엇이 그 길로 이끌었나? 이부영과 김정남을 연결하며 옥을 넘나드는 비둘기들. 우리만 그랬나 하고 찾아보니,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바스티유 감옥의 하급 간수가 정치범과 혁명파 사이를 오가며 비밀 메시지를 전하는 보이지 않는 연결자였다는 대목, 또 1823년 폴란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투옥되었던 아담 미츠키에비치가 감옥 간수들의 도움을 받아 외부 조직과 소통했던 장면도 있다. 그는 뒤에 이런 글을 남긴다. ‘내 외투에 꽂혀 온 작은 종이 한장이 나를 숨 쉬게 했다. 너의 손길이 닿은 작은 종이, 이 벽을 뚫은 바람보다 따뜻한 것이었다.’
‘하필왈리’(何必曰利)라 했던, 하필이면 리(利)냐? 의(義)가 있는데, 라고 했던 맹자의 말처럼, 무엇이 꺾이지 않고 낭창 휘어지면서 한 매듭을 짓는 그 곡절에 영락없이 이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창살을 넘나드는 손, 담장을 넘나드는 발, 이 대목 신의 숨결이 느껴진다. 이부영은 이 교도관들 이야기를 20여년 침묵했다가 다들 정년퇴직하고 나서야 세상에 그 행적을 알렸다.
왜 편지 수신은 김정남이었냐는 물음에 이부영 선생 말이다. “그때 축구 국가대표 코치가 김정남이었거든, 그래서 내 친구 김정남을 ‘김코치’라고 불렀어요. 새벽의 희미한 빛 같은 것이라 할까, 드러나지 않으면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때 민주화로 가는 모든 길이 김코치를 통하면 이어졌지.”
김정남은 편지를 보고 전율했다. “전두환이 무슨 짓이든 못 할까 싶었지만, 막상 범인까지 조작하는 것을 보고서는 이거는 진짜 아니지 않나, 이 정도로 타락한 정권이라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는 여러 확인을 거쳐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은 조작되었다’는 성명서를 작성한다. 그것은 시대의 뇌관이었다. 어디서 터뜨려야 저 숨통을 끊을 수 있을까, 세곳이 떠오른다. 언론, 야당, 사제단. 언론은 ‘반관’(半官)이다. 신민당과 사제단에 동시에 보냈다. 야당 대정부 질의가 가장 폭발력 있어 보였다. 야당에서 답이 왔다. ‘나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 못 하겠다는 말을 주기도문을 인용해서 한다. 결국 김수환 추기경, 함세웅 신부밖에 없다. 수배 중이라 고영구 변호사 부인 황국자를 통해 선을 넣는다. 성명서를 담고 따로 몇자 적었다. 김정남은 내가 이 사건의 제보자라는 사실을 밝혀도 좋다고 했다. 돌아보면 이 문건, 몇 사람의 목숨을 싣고 여기까지 왔는가,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발표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신부님 어깨에 대한민국 민주화가 되느냐 안 되느냐, 전두환이 몰락하느냐 안 하느냐가 달려 있습니다. 신부님이 십자가를 지고…’ 그런 내용을 담았다. 함세웅 신부,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김승훈 신부를 찾아간다. 함 신부 “신부님 이번에, 신부님이 꼭 감옥에 가셔야 합니다”라고 하니, 김 신부 “알았어, 알았어”라고 답했다 한다.
1987년 5·18 7주기, 명동성당. “추기경이 1부 미사에서 강론도 아주 강하게 하시고, 그 뒤에 김승훈 신부가 올라왔는데 제대에서 제의가 젖혀질 정도로 아주 90도 이상 절을 하더래요.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 성명서를 읽었다고 들었어요.”(황국자 전언) 3120자 성명서의 마지막 구절. ‘우리 사회가 진실과 양심, 그리고 인간화와 민주화의 길을 걸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중대한 관건이 이 사건에 달려 있다.’
안유-이부영-한재동-전병용-김정남-황국자-함세웅-김승훈, 진실은 이토록 굽이굽이 수많은 목숨을 건너 우리 곁에 온다. 1천개의 강물에 비친 달빛처럼 진실은 암흑세상을 환하게 비추었으니, 바야흐로 유월, 항쟁 전야였다.
김정남은 책 ‘우리는 너를 결코 빼앗길 수 없다’에서 그의 ‘부활’에 대해 이렇게 썼다.
‘박종철은 그해 1월14일에 죽었으나 투쟁의 고비마다 살아나와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소생시키고,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게 했다. 어떻게 보면 박종철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태어났고,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순국했다.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필요할 때 그때마다 부활했다. … ‘우리는 너를 결코 빼앗길 수 없다’고 했던 그 약속을 마침내 지켜낸 것이다.’

이광이 |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그쳐본 적이 없다’ 목포 김현문학관에 걸린 이 글귀를 좋아한다. 시와 소설을 동경했으나, 대개는 길을 잃고 말아 그 언저리에서 산문과 잡글을 쓴다. 삶이 막막할 때 고전을 읽는다. 읽다가 막히면 ‘쓴 사람도 있는데 읽지도 못하냐?’면서 계속 읽는다. 해학이 있는 글을 좋아한다. 쓴 책으로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스님과 철학자’(정리), ‘절절시시’, 산문집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가 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속보] 러시아 캄차카 8.7 초강진…일본 “3m 쓰나미 경보” 대피령
- [속보] 조태용도 ‘윤석열 격노’ 인정...채 상병 특검 “회의서 화냈다” 진술 확보
- 오늘 ‘중복’ 낮 최고 38도 무더위…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 대전 흉기살해도 ‘교제 살인’ 가능성…8개월간 폭행 등 경찰 신고 4번
- 이 대통령 “산재사망 반복 기업, 주가 폭락하게”…초강경 발언
- 특진으로 장군 된다…국방부 ‘소극적 계엄수행’ 특진 대상에 대령도 포함
- 구윤철, 러트닉과 2시간 협의...“트럼프 설득할 모든 것 갖고 오라 ”
- 이 대통령 “결론만” “직 거십시오”…최초 생중계된 92분 국무회의 어땠나
- 막말 최동석, 여당 ‘전문가’ 감싸지만…성과도 전망도 ‘갸우뚱’
- 김건희 오빠, 필사적으로 얼굴 가리고 ‘줄행랑’…“장모집 목걸이” 물었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