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암각화 화폭에 새긴지 40년···선사-현대 '연결고리'

고은정 기자 2025. 7. 2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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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 울산예술로 꽃피우다]
(7)'암각화 작가' 서양화가 양희성
양희성 작가가 29일 진행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반구대 암각화 작업의 계기와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지원 기자

"어릴 적 외갓집에서의 즐거웠던 추억으로 시작된 암각화를 담은 창작 작업이 벌써 40년 가까이 됐네요."

29일 울산 남구 신정동, 오래된 골목 안쪽. 작고 조용한 작업실 문이 열리자, 캔버스 위에 원시의 도상이 새겨지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채 붓을 쥔 작가 양희성(68)은 환한 얼굴로 취재진을 맞았다. 반구대 암각화를 화폭에 옮겨온 세월만 40년, 양 작가는 울산을 대표하는 '암각화 작가'로 불린다.

# "작업보다 돌아다니는 일 많았던 시절"

"사실 예전에는 작업보다 외부 활동이 더 많았어요. 신화예술촌에서 해설사로도 일하며 관광객들 앞에 서기도 했죠."

한때 닭을 키우기 위해 울주군 온양에서도 지냈다는 그는, 소탈한 웃음 속에 다양한 삶의 궤적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몇 해 전, 닭을 돌보다 늦은 밤 발을 헛디뎌 허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겪었다. 그때부터 그는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예전처럼 돌아다닐 수 없으니 오히려 작업에만 매달리게 됐죠. 강제로 작업시간이 늘었다고 할까요."

그 말에 담담한 체념이 아니라 오히려 창작에 대한 열정이 스며 있었다.
원시회귀 시리즈

# "암각화, 나의 기억이자 시대의 언어"

양 작가의 대표작 '원시회귀' 연작은 반구대 암각화를 모티브로 한 회화다. 1980년대 후반, 울산현대미술회(현 울산현대미술작가회 전신)의 '태화강 백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암각화 작업에 뛰어들었다.

"반구대 근처 식당 벽에 걸린 암각화 탁본 사진이 있었어요. 그걸 찍어와서 처음 그려봤죠. 그 그림이 제 작업의 출발이었어요."

작품 제작은 번거롭고 고된 수작업의 연속이다. 나무판을 조립해 화판을 만들고, 한지를 붙인 뒤 백시멘트와 모래를 혼합해 밑작업을 한다. 빨강, 검정, 파랑의 물감을 겹겹이 쌓아 암각화가 가진 거칠고도 묵직한 느낌을 구현한다.

그의 화폭은 처음엔 갈색톤이 주를 이루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작품은 점점 더 푸르고 밝아졌고, 최근에는 화려한 색감도 시도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양희성 작가. 최지원 기자

# "현대미술의 낯섦이 싫었어요"

비구상 작업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현대미술의 '어려움'에 거리감을 느낀 사람들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표현의 방향을 전환했다.

기호화된 도상 하나하나를 개별화해 그렸고, 3~4호짜리 소형 캔버스를 이어 붙여 암각화 전체의 느낌을 전달하려 했다.

그의 방식은 현대의 이모티콘 문화와도 맞닿는다. 빼곡히 들어찬 작은 도상들, 고래·사람·호랑이·짐승 등은 고대인의 감각을 현대에 끌어오며 자연과 인간의 본능적 연결을 시사한다.

2008년, 울산시청 신청사 미술장식품 공모에 당선된 것도 이 '원시회귀' 연작이었다. 앞서 암각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전국 공모전에 다수 출품해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1회, 입선 7회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원시회귀 시리즈

# 고래·호랑이와 함께한 유년의 기억

양희성 작가에게 암각화는 단순한 유물 그 이상이다. 고향 울산, 외갓집이 있던 울주군 구랑마을은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인근이다. 초등학생 시절, 외사촌들과 소를 먹이며 고래와 호랑이 도상이 새겨진 바위를 보던 기억이 작업의 뿌리가 됐다.

그는 동국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울산미술협회 회원으로, 울산미술의 궤적을 함께해온 작가다.

양 작가는 인터뷰 말미,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에 대해 의미 깊은 말을 남겼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암각화를 보러 오는데 실제로 관람할 수 있는 여건은 아직 부족해요. 더 가까이, 더 제대로 보기 위한 행정의 지원이 필요해요."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작업이 누군가에겐 암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며 조용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현재는 건강상의 이유로 대작은 어렵지만, 그는 오늘도 4호, 10호, 20호 크기의 화판 위에서 고래와 호랑이를 그리며 기억과 시간을 화폭에 새긴다.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