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넘어 지속가능한 복지로

한국은 오랫동안 '경제 발전의 신화'를 써 온 나라였다. 그러나 성장의 그림자 속에서 방치됐던 복지의 구조적 한계는 이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최근 정부가 국제입양 프로그램에서의 인권침해를 공식 인정하고 사과한 일은 복지정책의 실패가 어떻게 수십 년간 개인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는 최소 56건의 입양 피해 사례를 조사하며 정부가 민간기관의 상업적 입양을 묵인·방조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닌 복지시스템의 감시 실패이자 책무성의 부재를 드러낸 결과였다.
또 우리 사회는 노년기 빈곤이라는 구조적 과제 앞에 서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 노인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는 노인일자리를 확대하고 기초연금을 인상했지만 고령자 노동이 불안정하고 저임금으로 이어지는 '노년의 일상화된 생계노동'이라는 근본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경향신문 2024) 고정된 근로 방식과 임금 체계는 노인의 경제적 고립을 가속화하며 복지는 삶을 지탱하기보다 버티게 만드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처럼 반복되는 실패의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 실패를 단순히 부끄러운 과거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실패에서 배워야 하며 그 안에서 시스템 개혁의 단초를 찾아야 한다. 입양제도, 노인복지, 아동보호정책 등 모든 영역에서 실패를 공개하고 성찰하는 태도는 더 나은 정책 설계를 가능케 한다. 실패를 숨기지 않고 분석할 때 복지는 살아 있는 제도로서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다.
둘째, 데이터 기반 복지로의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전국적인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이 도입됐지만 아직은 전력·수도 체납 정보나 공공요금 연체 기록 등 일부 데이터에 국한돼 있다. 복합적 위기를 겪는 청년, 장애인, 정신건강 위기군은 여전히 시스템 밖에 머물러 있다. 사회보장정보 시스템의 확대뿐 아니라 이러한 데이터를 현장에서 읽어 내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이 역할은 국가가 아닌 현장 중심의 NPO와 지역사회 조직이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다.
셋째, 우리는 중앙정부 중심의 폐쇄형 복지국가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특히 NPO와 시민사회의 참여를 제도화한 네트워크형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처럼 정부 주도로만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방식은 시대착오적이며 오히려 지역성과 다양성의 반영을 방해한다. 복지 수요가 다양화되고 복합화되는 오늘날 주민 참여와 지역 기반의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한 복지 체계만이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복지는 제도를 넘는 존엄의 회복 과정이어야 한다. 단순한 소득 보전이나 생계 지원에 그치지 않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야말로 복지의 본질이다. 실패를 드러내고 그 안에서 약자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그것을 통해 정의와 공동체의 책임을 재구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속가능한 복지의 가장 깊은 기반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어렵지만 '추상적인 복지'가 아닌 이름을 부르고 삶을 바꾸는 복지, 실패로부터 배우고 변화하는 복지 그리고 행정과 시민이 함께 만드는 복지. 우리는 이제 그런 복지를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대한민국 복지의 새로운 미래와 인간 존엄을 다시 세우는 가장 강력한 여정이 될 것이다.
인천시는 '위기가구 긴급 발굴 시스템'과 '복지멤버십', 공공과 민간 NPO가 참여하는 지역 통합돌봄 체계와 맞춤형 지원 정책, 행정-민간-주민 간 신뢰 구축으로 한국 복지의 지속가능성 선도 모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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