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빈민 구제에 헌신… ‘청계천 성자’ 떠나다

최하연 기자 2025. 7. 2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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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목사 노무라 모토유키 별세
1975년 청계천 개미촌을 방문한 노무라(맨 왼쪽) 목사. /눈빛출판사 제공.

1960~1980년대 서울 청계천 하류 판자촌에서 구호 활동을 벌였던 일본인 목사이자 사회운동가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94)씨가 지난 26일 세상을 떠났다. 노무라씨는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고 지난달부터 입원해 최근까지 치료받았다.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식은 치르지 않는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수의학을 공부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목격한 뒤 자퇴하고 1961년 미국으로 신학 유학을 떠났다. 유학 시절 인종차별을 경험하면서 일제 치하 한국인의 아픔을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한국에서 봉사했다. 1968년부터 1985년까지 15일짜리 관광 비자로 60번 이상 한국을 방문해 청계천 빈민을 도왔다. 1973년에는 도쿄 자택을 팔아 탁아소를 세웠고, 박정희 정부가 청계천 일대 빈민촌을 철거하자 빈민들이 경기 화성시 남양만으로 이주해 자립할 수 있도록 뉴질랜드에서 종자 소 600여 두를 들여왔다. 빈민들에게 지원한 금액이 7500만엔(약 8억원) 이상이다.

노무라 모토유키

노무라씨는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청계천 빈민촌의 모습, 근대화 이전의 농촌 풍경, 유신 체제 아래 민중의 삶 등을 카메라로 촬영했다. 참담한 현실을 기록하는 것이 참회의 한 방법이라 믿었다. 간첩으로 오해받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노무라씨는 2005년 직접 촬영한 사진 800여 장을 서울시에 기증했고 2013년 명예서울시민증을 받았다.

그는 지난 2012년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찾았다. 무릎 꿇고 일본군 위안부 동원을 사죄했다. 일본 우익들의 협박 전화·이메일에 시달렸지만 “지난 역사에서 가해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미안한 마음으로 사는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더 많다”고 했다.

‘18년 지기’ 동화 작가 임정진(62)씨는 “노무라 할아버지는 본인 옷은 재활용 센터에서 주워 입으면서도 기부를 아끼지 않던 사람”이라고 했다. 아들 노무라 마코토(59)씨는 “아버지는 한국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편히 눈감으셨다”며 “나도 한국의 아이들을 도우며 살아가겠다”고 했다.

그의 시신은 이날 화장됐다. 일본의 강과 바다에 뿌려질 예정이다. 유족은 ’죽어서도 한국에 뼈 묻길 소망한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유골의 일부를 청계천에 뿌리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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