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된 안톤 허 "영어 소설가 되는 꿈, 떨쳐낼 수 없었죠"

황재하 2025. 7. 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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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영어로 소개해온 번역가, 첫 소설 '영원을 향하여'
'저주토끼' 부커상 후보 함께 올랐던 정보라가 한국어로 번역
신작 '영원을 향하여' 펴낸 안톤 허 작가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안톤 허 번역가 겸 소설가가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작 소설 '영원을 향하여'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7.28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제가 소설가가 된 계기를 설명하기보다는 왜 번역가가 됐는지 말하는 게 더 적절한 관점인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구체적으론 영문 소설가가 되고 싶었죠. 제 나이가 한자릿수이던 때부터 꿈이었고 정말 그 꿈을 떨쳐낼 수가 없었어요."

정보라의 '저주토끼',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황석영의 '수인' 등 수많은 한국 소설을 영어로 번역해온 안톤 허(44·한국명 허정범)가 펴낸 첫 소설 '영원을 향하여'(반타)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안톤 허는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영원을 향하여'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번역가에서 소설가로 변신한 계기를 묻는 말에 "제 오랜 꿈이 소설가였다"고 대답했다.

그는 "사실 번역 일 자체에 대단한 열망이 있었다기보다 제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시작했고, 처음엔 문학이 아닌 다른 영역의 통역과 번역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게 번역 일을 하던 중 '문학 번역도 하다 보면 영미권 출판사와 소통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문학 번역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안톤 허에게 문학 번역은 소설가의 꿈을 향한 길이었던 셈이다.

'영원을 향하여' 표지 이미지 [반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원을 향하여'는 세포를 나노 로봇으로 대체해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근미래부터 수천년 뒤 핵전쟁으로 지구가 황폐해진 먼 미래까지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SF(과학소설)다.

불치병을 치료하려 나노 로봇의 몸이 된 용훈은 어느날 홀연 사라졌다가 며칠 만에 기억을 대부분 잃은 채 나타난다. 이후 용훈은 자신이 용훈이 아닌 다른 존재라고 느끼지만, 사별한 배우자 쁘라섯과의 기억을 되찾아감에 따라 스스로를 용훈이라고 여기게 된다.

소설은 인간이란 무엇인지, 한 자아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아가 다른 자아와 구별되는 지점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탐구한다.

안톤 허는 "'인간'이라는 단어는 '사람 사이'라는 뜻인데, 우리 선조들이 이걸 휴머니티(인간성)라고 말했다는 게 재밌다"며 "우리가 서로에게 인간성을 부여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성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 있는 무엇이라는 점을 (소설에)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톤 허 작가 '영원을 향하여' 출간기념 간담회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안톤 허 번역가 겸 소설가가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작 소설 '영원을 향하여'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7.28 ryousanta@yna.co.kr

이번 작품의 번역은 2022년 소설 '저주토끼'로 안톤 허와 함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랐던 소설가 겸 번역가 정보라가 맡았다. 정보라의 소설을 안톤 허가 영어로 번역했던 과거와 입장을 바꿔 이번엔 안톤 허의 소설을 정보라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안톤 허는 "미국에서 제 소설이 출간된 후에 정보라 작가님이 '죽어도 제가 번역하고 싶다'며 먼저 제안해주셨다"며 "처음 제안받고 '아니, 이 양반이 얼마나 바쁜데 번역할 시간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정말 고마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작가님은 제가 그분 소설을 번역할 때 '안톤씨, 번역본은 당신 작품이니까 마음대로 번역하라'고 말해주셨고, 저도 제 소설을 그분이 어떻게 번역하는지 아무런 참견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제가 19세기 영어 시를 워낙 좋아해서 이번 소설에도 자주 인용되는데, 정 작가님이 19세기 영어 문학, 그 중에서도 시를 싫어한다고 해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며 "그런데 평소 싫다고 하셨던 시마저도 너무 잘 번역해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영원을 향하여'는 이처럼 과학적 상상력으로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 호평받고 있다.

소설가 박상영은 추천사에서 "'영원을 향하여'는 오래전부터 인류를 사로잡아온 철학적인 질문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에 대한 해답을 건넨다"고 평가했다. 뉴욕 타임스는 "다양한 삶의 형태와 불멸에 대한 변주를 아우르는 수천 년에 걸친 사랑 이야기"라고 호평했다.

질문에 답하는 안톤 허 작가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안톤 허 번역가 겸 소설가가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작 소설 '영원을 향하여'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7.28 ryousanta@yna.co.kr

안톤 허는 스웨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해외에서 졸업하고 한국의 문학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한 이력 때문에 교포일 것이라는 오해를 받지만, 사실 한 번도 외국 국적을 가져본 일이 없다. 지금도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저는 백프로 한국 사람"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왜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설을 썼는지 묻자, 안톤 허는 "한국에는 문단 시스템이 있는데, 그게 문학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것 같다. 그런 시스템의 존재 때문에 국문학 작가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또 "어린 시절부터 영어 소설을 굉장히 많이 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영어로 소설을 쓰겠다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첫 소설을 펴낸 안톤 허는 앞으로도 소설가로 활동할 계획이지만, 번역 일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가 번역한 이성복 시인의 시집 '그 여름의 끝'은 내년 미국 출간을 앞두고 있다.

안톤 허는 "번역 출판 계약을 맺으면 그 순간부터 번역가는 일이 시작되지만, 소설가는 더 일할 필요 없이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엄청난 장점"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번역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도 번역을 계속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368쪽.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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