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일이 만난 사람-성지순례 특집] 세계평화를 위한 한국가톨릭순례단 동행취재:벨기에 보랭, 프랑스 퐁맹, 파리 편



보랭은 벨기에의 나뮈르 지방과 경계를 이루는 한 읍이다. 성모님은 1932년 11월 29일부터 1933년 1월 2일까지 33번에 걸쳐 산사나무 밑에서 발현했다. 이 고장의 5명의 아이들인 브와쟁 집안의 페르낭드, 질베르트와 알베르, 드장브르 집안의 앙드레아와 질베르트는 잠깐씩 여러 차례 발현을 목격했다. 13살의 질베르트 브와쟁은 애덕 수녀회에서 경영하는 수도원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다가 아주 환한 불빛 속에서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했다. 1932년 12월 8일 이후 성모 마리아 발현은 매일 저녁 6시에서 10시 사이에 계속되었고 성모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것과 순례자들이 올 수 있는 경당을 세우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다섯 아이의 사진이 걸려있는 곳은 바로 피정의 집이다. 1932년 12월 23일 페라낭드 브와젱이 '어찌하여 이곳 보랭에 발현하셨습니까?'라고 성모님께 묻자 '사람들이 이곳에 순례 오기를 원한다'라고 답하셨다. 성모님의 요청 이후 1955년부터 성주간의 목요일에서 부활절까지 3일간 병자와 노약자들을 수용하고 있다. 피정의 집은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가 운영하고 있다.


봉헌 경당은 성지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1932년 12월 17일 토요일 성모님께서는 '하나의 경당'을 요청하셨다. 건물은 크지만 벽의 두께가 2m나 되기 때문에 내부는 매우 아늑한 공간이다.
"손의 형상과 같은 이 성광이 만들어진 것은 모두 순례객들의 도움입니다. 50년 동안 순례자들이 정성껏 기부한 금과 은을 모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감을 받은 것은 구약의 모세의 떨기나무와 주님의 십자가 나무, 그리고 성모님이 발현하신 오베핀 나무입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프랑스 북서부 마옌느 주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마을로, 퐁맹의 성모님으로 유명한 곳이다. 퐁맹의 성모님은 1871년 1월 17일 퐁맹에서 발현한 성모님을 일컫는 말로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과 전쟁을 치르면서 패전을 거듭할 때 12살 외젠느와 10살 요셉 바르베데트가 헛간에서 별들로 뒤덮인 파란 드레스를 입은 성모님을 보았다.




센강(江)이 남동쪽에서 시가지로 들어와 생루이섬과 시테섬을 감싸면서 북쪽으로 크게 만곡을 이룬 다음 남서쪽을 거쳐 시외로 흘러나간다. 따라서 동쪽으로는 뱅센 숲, 서쪽으로는 불로뉴 삼림공원이 이어진다.






절대적인 힘과 승리의 상징인 왕관이 성모 마리아 상에 씌워진 성당이다. 1853년 7월 9일 프랑스가 로마를 구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교황 비오 9세의 요청에 따라 진행되었다. 1614년 루이 13세는 오베르빌리에 교회에서 그가 개신교에 대한 군사적 승리를 거둔다면 파리에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된 교회를 세우겠다고 선언하였다. 1628년 라로셸 포위 공격 이후에 소원이 이루어지자, 그는 파리 노르트담 데 빅투아르 교회를 건축하게 된다. 3만7000개가 넘는 명패, 금과 은으로 만든 하트, 군사 장식품이 대성당에 남아 있다.

성 빈첸시오 바오로에 의해 세워진 ‘자비 수녀회’에 소속된 기적의 메달 성당은 파리 시내 한 복판에 위치한 곳으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장소이다. 까트린느 라부레 수녀에게 1830년 11월 27일 이곳에 발현하여 인간 모두에게 내리는 은총과 구원의 상징인 기적의 메달을 준 곳으로, 현재도 많은 성지순례 여행객의 행렬이 이어지는 곳이다.

'어려운 시기에 제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성모님은 저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 메달은 19세기 수백만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끄는 촉매가 되었고, 믿음과 확신으로 이 메달을 목에 걸고 다닌 많은 사람들은 굳은 믿음을 갖게 되었고, 기적과 같은 병의 치유, 회개를 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받게 되었기에 ‘기적의 메달’이라고 불리게 됐다.
▲에펠탑
1889년 파리의 만국 박람회장에 세워진 높은 철탑이다. 1889년 3월 31일 준공되었고, 1889년 5월 6일 개관하였다. 에펠탑의 이름은 이것을 세운 프랑스의 교량 기술자 구스타브 에펠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재료로는 프랑스에서 제조된 7,300톤(높이 약 300m)의 시멘즈 마르탕 평로강이 사용되었다. 탑에는 3개소에 각각 전망 테라스가 있다. 파리의 경치를 해치는 것이라고 해서 완공 당시 모파상과 같은 예술가와 지식인의 비판을 받았지만 그대로 남아 무전탑(無電塔)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55피트의 텔레비전 안테나가 덧붙여져서 텔레비전의 송신탑으로 사용되고 있다. 탑의 높이는 건설 후 약 40년간 인공 건조물로서는 세계 최고였다.



17세기 중반에 주로 아시아 지역의 가톨릭 포교를 위하여 프랑스에 설립된 해외 전도단체이다. 1653년 로마 교황청이 프랑스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창설했으며 1664년에는 신학교를 설립해 선교사들을 가르쳤다. 아시아 각 지역에 선교사를 파견했는데, 선교사들은 파견 지역에서 현지인들과 어울리며 평생토록 선교에 종사하는 방식을 취했다. 설립 이후 아시아 외에 북미 지역에도 많이 파견되었다. 한국에는 1831년 9월 9일 천주교 조선대목으로 브뤼기에르가 임명되어 방콕에서 출발하여 만주에 3년 만에 도착하지만 한국 입국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 때문에 1835년 10월 한국을 바라보며 만주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1836년 모방 신부, 1837년 2대 조선대목인 앵베르 주교와 샤스탕 신부가 입국했다. 그들은 파리 외방전교회의 본래 목적에 따라 3명의 소년을 선발하였다. 바로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신부이다. 이들은 마카오 신학교에 보내서 신학공부를 하게 해 사제서품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1845년 첫 한국인 사제 배출의 산파 역할을 했다.


세계평화를 위한 성모성지 한국순례단이 많은 희생과 노력과 땀으로 어려운 장정의 순례를 무사히 마침에 주님과 성모님과 순례단 한 분 한 분들께 감사드리며 순례 중 협력과 인내로 함께해주신 순례단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주님과 성모님께 이 순례는 '저를 위한 순례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하는 세계자녀들의 평화를 위한 순례단이다. 순례 잘 마칠 수 있게 성모님 주님께 빌어주십시오' 하며 묵주기도를 수십 번 했다. 프랑스 루르드에서 아침 동굴미사 때는 주님의 도움을 받는 성모님의 은총으로 미사를 잘 봉헌하고 끝까지 순례를 무사히 마치게 됐다. 이 모든 것이 순례단의 기도 덕분이고, 우리의 협력의 은총 중에 순례가 지속되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모두 건강하시고 주님 신앙 안에서 행복한 기도생활 되시길 기도드린다. 중도일보 기사가 가톨릭성모순례 성지의 이해를 돕는 기사가 될 수 있길 희망하고 성원을 부탁드린다. 진심으로 주님과 성모님의 은혜로 평화로운 일상생활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고마웠다. 감사하다.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유럽 성지순례 일주에 헌납한 우리의 땀과 노력과 기도로 세계평화가 이루어지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벨기에 보랭, 프랑스 퐁맹, 사르트르, 파리에서 글, 사진 한성일 편집위원(국장)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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