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펌프장 늑장 가동에 시설하우스 침수 논란…농가 “인재”

이시내 기자 2025. 7.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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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여 만든 배수펌프장
구례 7곳 중 4곳 전력공급 지연
고압선로 미비 핑계 뒷북 가동
전국 곳곳 노후화로 작동 안돼
기상이변 대응할 수 있도록
배수펌프장·배수로 재설계해야
전남 구례에 1000억원에 가까운 규모의 배수펌프장이 신설됐지만 전력 공급이 지연돼 시설하우스를 중심으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극한호우가 전국을 할퀴고 간 뒤 지역 곳곳에서 ‘배수펌프장 책임론’이 비등하고 있다. 배수펌프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는 주장이다.

전남 구례 마산면 사도리 일대의 시설하우스에서 여름오이를 재배하는 임병준씨(60)는 17일 전국을 할퀸 극한호우로 하천의 물이 범람해, 2644㎡(800평) 시설하우스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봤다.

임씨는 “한창 과습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시기에 뿌리가 6∼7시간 물에 잠겨 있어 산소가 공급되지 못했다”며 “현재 뿌리가 노랗게 변하면서 썩고 있고 잎도 힘없이 처져 있는데 이런 상태라면 정상적인 과실이 나올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 지역에 당시 많은 비가 예보돼 있었지만 임씨 시설하우스 바로 옆에 있는 배수펌프장은 작동하지 않았다. 전력 공급이 안됐기 때문이다.

임씨는 “오후 9시에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 배수펌프장은 작동을 안해 이웃 농가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며 “자정쯤 돼서야 한국전력 직원이 나와 퓨즈(전기회로 안전장치)를 꺼내 전선을 연결하니 펌프장이 작동해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농가들은 배수펌프만 제때 가동됐더라면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침수가 ‘인재’라고 비판했다.

섬진강댐 하류에 있는 이 지역은 2020년 8월 기록적인 호우로 대규모 침수 피해를 겪었던 곳이다. 이후 정부 지원금 1000억원가량을 받아 지난해 4월 배수펌프장 7곳을 준공했다. 하지만 문제가 된 사도리를 비롯해 배수펌프장 4곳이 전력공급이 안돼 작동하지 않았다.

구례군은 상시 전력 공급을 위해서는 고압선로 구축이 필요한데, 전봇대 설치 과정에서 토지 소유주와의 협의가 지연돼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미 저압선로는 설치돼 있어서 비상시 예비전력만으로도 펌프장 가동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배수펌프장이 뒤늦게나마 작동한 것이 그 반증이다.

이에 군 관계자는 “14∼15일 공문과 유선으로 한전 구례지사에 전력 공급을 수차례 요청했으나 회신받지 못했다”며 “공문에 ‘예비전력’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풍수해 대비 기간에 맞춰 배수펌프장을 가동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취지로 내용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군과 한전 사이에 책임 공방이 일고 있는 가운데 농가는 지역 재난 상황을 총괄해야 할 지방자치단체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봉용 구례군농민회장은 “구례는 2020년 대규모 홍수 피해를 겪은 곳이라 배수펌프장이 안전과 생존을 위한 필수 시설이라는 것을 모두가 절감하고 있다”며 “광주광역시와 전남 일대에 호우경보가 발령된 비상상황에서 배수펌프장을 언제든 가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누구의 책임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수펌프장이 낙후돼 제 기능을 못한 경우도 있었다. 경남 밀양시 무안면 연상리 내 고사배수장은 17일 800㎜ 펌프 2대 밸브가 모두 고장나 정오부터 약 4시간 동안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다행히 농가 피해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근처 요양원이 침수 피해를 겪는 등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경남 창녕군 도천면 우강배수장도 17일 한두 시간 동안 1350㎜ 펌프 한대를 정지시켜야 했다. 과부하로 연기가 올라와 정비가 필요했다.

한국농어촌공사 창녕군지사 관계자는 “시설 낙후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해명했다. 실제 해당 배수장에는 1976년에 설치한 펌프도 있는 실정이다.

반복적인 침수 피해를 보고 있는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일대 농가들은 배수펌프장과 배수로의 부족한 용량을 지목했다.

곽병갑 청주 옥산농협 조합장은 “지금의 배수로 또한 과거 강우 기준으로 설계된 만큼, 최근 기상이변에 맞춰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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