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뮤지컬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기억을 잃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함은 지나온 시간과 추억, 나의 삶이 사라짐이다. 매번 새로운 하루를 살아야 하는 마오리가 그렇다. 자고 일어나면 기억은 다시 1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 써놓은 자신의 일기장 속 어제의 나에게 오늘의 나를 기댄다.
새로운 일이 나에게 과연 생길까에 대해 기대가 없는 도루. 엄마를 잃은 도루의 가족은 꿈을 찾아 떠난 누나,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아버지 등 뿔뿔이 흩어졌다. 어제와 오늘이 새롭지 않은 같음을 살아가는 것. 매일이 특별히 다르지 않은 그의 일상은 우리가 살아가며 떠올리는 생각이다.

그러던 둘은 우연찮은 기회에 ‘쿨’하게 사귀게 된다. 어벙벙한 도루에게 마오리는 ‘남자친구님’이라는 호칭을 붙여준다. 그리고 이즈미와 켄토라는 친구들과도 우정을 쌓아간다. 원작의 ‘청춘 로맨스’라는 장르답게 아기자기한 일상과 풋풋한 청년들의 사랑이 펼쳐진다.
청춘들의 감정을 폭발시키기에 1막의 마지막 불꽃놀이 씬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화려함을 남기고 사라지는 불꽃이지만 그것을 본 벅찬 마음만은 남겨두기 때문이다. 따뜻함을 가진 극 속 불꽃은 등장 인물들처럼 서로를 향해 달려가며 피어난다.
가볍게 웃고 즐기며 1막이 지나갔다면, 2막은 본격적인 감정의 임팩트를 준다. 시간은 흘렀고, 도루는 사라졌다.

2막을 보면서 세상에 잘못된 선택은 없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도루가 자신의 흔적을 지워달란 유언을 한 것도, 이즈미와 켄토가 이를 두고 고민해 유언을 따른 것도 모두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 이는 마오리와 도루 모두를 아낀 친구들이 내린 선택이었다. 점점 기억을 찾아가는 마오리에게 도루는 조금씩 선명해지는 존재가 되고, 그를 잃은 아픔만큼 그와 함께한 행복한 시간도 중요했기에 친구들은 마오리를 위한 또 다른 선택을 한다.
이는 단순히 누군가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떠난 이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 채 그를 찾고 싶어하는 이의 감정이 와닿게 한다. 관객들이 눈시울을 붉히는 이유 또한 떠나도 지워져도 그들이 소중하게 여겨온 사랑의 기억은 다른 형태로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도루와 마오리의 친구인 이즈미와 켄토의 역할도 눈에 띈다. 켄토의 경우 원작과 달리 새롭게 만들어진 인물이다. 이즈미는 원작에서 도루가 떠난 이후에 맞이해야 할 모든 상황을 끌어안고 마오리를 지키는 인물이다. 작품의 각색과 가사를 맡은 황정은 작가는 그런 이즈미에게 홀로 모든 것을 떠안게 한다는 것이 무거워 보였다고 했다. 원작을 보고 이즈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새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은, 그 무거운 마음의 짐을 서로 나눠 지게 하고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수긍이 가기도 했다.

원작은 일본에서도 유명한데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장르로 리메이크 되고 있다. 작품이 보편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기에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있지만, 각 나라가 가진 정서와 특색은 글 속에 녹아 있을 수 밖에 없다. 황 작가는 “응축되어 있고 가려져 있는 작품의 정서를 표면으로 꺼내는 작업들이 결국 가장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활자 아래 숨어 스쳐 지나가던 장면들이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이 되는가를 보는 것도 이 극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반적으로 넘버와 가사들이 잘 어우러져 인상적이었다. 가사로 선율로 뮤지컬을 차지하는 본연의 메시지가 충실하게 잘 표현된 느낌이다. 넘버들은 가요처럼 세련미를 갖췄고, 그 속에 내포된 가사들은 인물들의 감정과 생각을 잘 드러내는 듯했다.
세상을 가득 채운 기적과 사랑은 어쩌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매일을 마음에 담고 새겨보자 무엇으로든 어떠한 형태로든. 그렇게 작은 기적과 사랑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곁에 찾아올 것이다. 오늘은 오늘만 오늘이니까.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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