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끈펭귄, 하루에 10000번 잘 수 있다

인간은 하루 평균 7~8시간을 잔다. 그것도 밤에 몰아서 규칙적으로 깊은 수면을 취한다. 만약 이 리듬이 무너지면 물질대사, 인지, 면역 기능이 모두 흔들리고, 만성 수면 장애는 심혈관 및 정신 건강에까지 경고등을 켠다. 재밌게도 ‘수면’이라는 행동은 해파리처럼 신경계가 단순한 동물부터 복잡한 인간에 이르기까지 거의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동물은 수면을 통해 뇌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하며, 기억을 저장하고, 면역계를 재가동하며 하루를 살아내는 일을 반복적으로 해낸다.
남극을 비롯해 남반구 해안에 서식하는 조류인 펭귄은 매우 독특한 수면 패턴을 가지고 있다. 야외에서 펭귄을 관찰해 보면 이들은 특정 시간에 푹 잠을 자는 게 아니라 낮이나 밤이나 관계없이 눈을 ‘깜빡’ 감았다가 1~2초 뒤에 다시 뜨는 짧은 ‘쪽잠’을 잔다는 걸 알 수 있다. 선 채로 부리를 날개에 파묻거나 바닥에 엎드려서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한다. ‘대체 펭귄은 언제 제대로 자는 걸까?’라는 질문이 절로 나온다.
이 수면의 비밀을 풀기 위한 첫 단서는 1980년대에 나왔다. 1986년 프랑스의 클로드 부셰 연구팀은 남극 황제펭귄 두 쌍의 뇌파 신호를 측정해 이들이 수초간 잠들었다 깼다 하는 ‘졸음’(drowsiness)이 약 3.4시간, 4분 이상 지속하는 ‘서파 수면’(slow wave sleep)이 125회 반복돼 총 9시간 잠드는 것을 확인했다. 1983년 오스트레일리아 콜린 슈타헬 연구팀이 쇠푸른펭귄 다섯 마리의 뇌파를 측정했을 때도 수면이 지속되는 시간은 평균 42초로 매우 파편화돼 있었다. 펭귄의 ‘쪽잠’ 가설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앞의 이런 연구들은 펭귄의 잠이 짧게 여러 번으로 쪼개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긴 했지만 표본 수가 적고 사육 환경에서 얻은 수치라 실제 야생에서도 그대로일지는 미지수였다. 후속 연구가 진행되지 못한 탓에 1980년대 이후로 연구의 맥이 끊기고 말았다.
2014년 처음 남극에서 펭귄을 만난 나는 이들의 수면 패턴이 궁금했다. 약 3000쌍의 턱끈펭귄을 매일같이 지켜보는 동안 이들은 눈만 깜빡거릴 뿐 푹 자는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특히 짝이 알을 품을 땐 일주일가량 먼바다를 끊임없이 헤엄치며 육지에 올라오는 일 없이 먹이 사냥에만 몰두했다. 인간이라면 금세 피로해져서 탈진하고 말 스케줄이다.
답을 찾고자 프랑스의 폴-앙투앙 리부렐 박사와 야생 환경의 턱끈펭귄에 부착할 수 있는 25그램 초경량 수면 로거를 개발했고, 2019년 세종기지 인근에서 열네 마리의 자료를 10일 이상 얻는 데 성공했다. 결과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턱끈펭귄의 평균 수면 지속시간은 4초, 하루 수면 횟수는 1만 회 이상이었다. 합산하면 하루 평균 11시간을 자는 셈이다. 10초를 넘는 수면은 극히 드물었다. 이렇게 짧은 잠을 생리학에서는 ‘미세수면’(microsleep)이라 하는데, 사람에 대입하면 피로가 누적됐을 때 나타나는 졸음운전이 여기에 해당한다. 학자들은 미세수면은 수면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생리적 반응으로, 일상생활에서 몸을 다치거나 집중이 흐트러질 수 있을 뿐 별다른 기능은 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번 턱끈펭귄의 수면 연구를 통해서 미세수면만으로도 회복 기능이 분할식으로 충족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잠은 길게 푹 자야 한다’는 전통적 개념을 뒤집고, 야생 환경에서 초 단위의 단편화된 수면이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동물계에서 처음으로 밝힌 순간이었다.

또한 펭귄은 좌뇌와 우뇌 가운데 한쪽 반구만 잠자는 ‘반구수면’(unihemispheric sleep)도 관찰됐는데, 이는 물에서 생활하는 돌고래나 물개에서 이미 보고된 패턴으로, 펭귄 역시 포식자 경계와 휴식을 동시에 달성하는 전략을 쓴다. 먼바다에서는 먹이 사냥 중에는 이따금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상태로 수면을 취하기도 했다.
턱끈펭귄의 전반적인 수면 패턴은 매우 파편화된 조각 잠이지만 둥지 위치에 따라서 수면의 품질에 차이가 있다. 번식지에서 안쪽에 있는 개체들은 외곽에 있는 개체들에 비해 더 짧고 얕은 잠을 잤는데, 이는 과밀화된 집단 속에서 다른 녀석들이 지나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 수면에 방해를 받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세수면은 ‘길고 연속된 수면이 도움된다’는 통념 때문에 그동안 경시됐으나, 남극의 펭귄들은 짧은 수면만 취하면서도 번식을 하고 생리적인 항상성을 유지한다. 이러한 전략은 둥지를 보호하고 포식자를 감시하며 집단 소음에서도 생리적 기능을 잃지 않기 위한 진화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수면의 본질은 ‘얼마나 길게 자느냐’가 아니라 ‘필요한 회복을 위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자느냐’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산 증거다. 남극에서 펭귄이 반복적인 짧은 수면만으로도 뇌의 노폐물을 씻어내고, 시냅스를 재정비하며, 에너지 대사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지구상에 또 다른 동물들도 이미 유사한 전략을 진화시켜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수면을 인간에 응용할 수 있다면 고립된 지역에서 장시간 경계 업무를 하는 우주비행사나 군인의 수면 설계에 생물학적 힌트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원영의 아주 극한의 세계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줄기러기를 아시나요? 영하 272도에서도 죽지 않는 곰벌레는요? 인간은 살 수 없는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동물이 많은데요. 여름엔 북극, 겨울엔 남극에서 동물행동을 연구하는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지구 끝에서 살아가는 경이로운 생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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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동물행동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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