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못 하는 게 없는 권력[오승훈의 시론]

2025. 7. 2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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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논설위원
李 5개 재판 중지돼도 법 개정
공소취소 시동에 면소도 추진
‘퇴임 후에도 재판 없다’ 의도
저어하고 부끄러움 없이 감행
새 與 지도부 출범 뒤 가속 조짐
憲政과 常道마저 뒤흔들 우려

전국시대 제나라의 선왕이 맹자에게 “어찌하면 왕도(王道)를 실현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답이 간명했다. “백성을 보호하고 왕도를 실천하면 됩니다.” 선왕이 마지못해 다시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가능합니다”라고 했다. 이유가 멀리 있지 않았다. 당시엔 동물의 피를 발라 제사를 지냈는데, 선왕이 제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곤 “차마 볼 수가 없다. 놓아주라”고 했단다. 맹자는 그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인(仁)이고, 백성을 위하는 왕도 정치를 펴는 길이라고 했다.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정치를 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 위에서 할 수 있습니다.”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여기는 왕도 정치의 열쇠는 부끄럽거나 안타까워서 감히 못 하는, ‘차마’란 얘기다.

어쭙잖게 공자 왈, 맹자 왈을 할 생각은 없다. 위민(爲民) 왕도 정치의 현대판 ‘국민주권 정부’를 표방한 정부여서 하는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엔 ‘맹자’의 고자(告子) 편에 나오는 구절이 계시록처럼 퍼져 있으니 생뚱맞은 것도 아닐 터다. ‘하늘이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 먼저 마음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며, 빈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대선 때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이 대통령에게 최강욱 전 의원이 읽어주었다고 한다. 덩샤오핑이 품고 다녔다는 글귀가 이제는 ‘시련’을 딛고 대업을 이룬 이 대통령의 서사가 됐다. 그런데 구원자가 휘어잡은 권력에는 ‘차마’가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법원이 지난 22일 이 대통령의 대북송금 의혹 사건 재판도 연기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 위증교사 사건 항소심, 대장동·성남FC 등 의혹 1심, 법인카드 유용 의혹 1심까지 5개 재판이 모두 중단됐다. 끝이 아니다. 변수를 아예 없애기 위해 대통령 재임 동안 재판을 연기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은 “대통령이 보류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미뤘는데, 당은 한다는 입장”(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이다. 대북송금 사건에 대해선 검찰에 공소 취소를 요구했다. 정치검찰조작기소대응TF가 해외 도피 중인 조폭 출신의 증언 등을 들먹이며 “잘못된 내용으로 기소됐다”고 주장했다. “세상이 변했다”(양부남 의원)고 으름장도 놨다. 대장동 사건도 진상 규명 대상이라니 똑같은 수순으로 공소취소까지 몰아갈 심산이다.

선거법 문제 역시 언제든 허위사실공표 혐의에서 ‘행위’를 삭제해 개정하면, 면소(免訴) 판결이 가능해진다. 이걸 문제 삼더라도 헌법재판소는 사실상 진보 우위로 바뀌었고, 대법원에 가도 대법관 증원으로 유리한 구도를 만들면 된다. 변호인 출신들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 대통령실의 민정비서관·법무비서관·공직기강비서관 등에 포진시키지 않았나. 국가권력 기관 차원에서 사법 리스크 해결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재임 중은 물론 ‘퇴임 후에도 재판을 받을 일은 없어야 한다’고 결의라도 한 듯하다. 아무리 무소불위 권력을 잡았다고 한들 설마, 했던 일들이 착착 실행 중이다.

두려운 게 없어서일 것이다. 매주 올랐던 국정 지지율에 비례했을 자신감이 거침없는 인사에서 확연했다. 부동산 투기를 시인하며 “정치적으로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었다”고 고백했던 ‘흑석 거사’를 새만금개발청장으로 귀환시킬 줄, 대통령을 “하늘이 내렸다”고 추켜세운 유튜버를 인사혁신처장에 앉힐 줄을 보통의 권력이라면 생각이나 했겠는가. 임명장을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저어하는 인식과 부끄러움이 없다. 1기 내각 인사청문회를 ‘갑질’과 ‘표절’로 도배질하게 한 인사 검증 실패도 거기서 비롯됐을 것이다. 반성하는 척, 성찰하는 시늉은 잠시뿐일 것이다. ‘절대 충성’을 맹세한 여당 지도부가 들어서면 “개혁 골든 타임”(김병기 원내대표)이 본격화할 것이란다.

전 정부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재입법 앙갚음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민생을 앞세운 시장 왜곡이 얼마나 벌어질지, 매서운 시선들이 늘어가는데 살피는 낌새도 없다. 정치권력이 교체돼도 지켜야 할 헌정(憲政)의 근간과 상도(常道)가 있다. ‘차마 못 하겠지’ 하던 일들이 태연하게 감행되는 나날이다. 그 권력이 무엇을 더 휘몰아갈까. 이제는 걱정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 같다.

오승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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