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마 덮친 뒤에야”…광주 북구, ‘늦장’ 대피명령 재난문자 논란
‘대피명령’ 재난문자 발송했으나…80대 노인, 1시간 전 이미 실종
일부 주민 “위급한 수해 현장 상황 알렸으나 북구청이 묵살” 주장
(시사저널=정성환·조현중 호남본부 기자)
지난 17일 집중 호우로 광주 북구 신안교 일대에서 많은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관할 지자체인 광주 북구의 대응에 허점이 드러났다. 예상을 벗어날 만큼 거센 비가 오기도 했지만, 침수가 된 뒤에야 뒤늦게 대피명령을 내려 인명과 재산 피해가 커졌다는 게 피해 주민들의 주장이다.
당국의 사고 후 허술한 대응도 도마 위에 오른다. 혼자 살던 80대 노인이 폭우에 불어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관할 북구청은 이런 사실을 닷새 동안이나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시사저널 21일자 보도 기사 참조]

'2시간 가량 늦은' 대피명령 문자 발송…주민 대피 늦었다?
신안교 수해 사례는 현장을 도외시한 당국의 허술한 재난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에 직접 나가 상황을 판단하고 보다 일찍 대피명령을 내리고 노인 등 취약계층이 많이 사는 지역에 인력을 집중 배치했으면 피할 수 있었던 화를 탁상행정으로 되레 불러왔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로 서방천이 흐르는 북구 신안동 신안교 인근 마을에선 한 노인이 주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안타까운 사고가 꼽힌다. 이곳에서 혼자 살던 80대 남성 A씨는 오후 5시께 집 밖에서 실종됐다. 북구가 '대피 명령'을 알리는 긴급 재난문자를 발송하기 1시간 전쯤 일이다.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복수의 주민들에 따르면 A씨는 집안에 물이 들어차자 집 밖으로 빠져 나오다 골목에서 급류에 휘말려 서방천으로 빨려 들어갔다.
북구는 폭우가 쏟아지자 이날 오후 1시~2시 사이 '서방천 범람 우려가 있으니 신안동 주민들은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여러 차례 재난문자를 보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서방천 일대 신안동과 임동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린 것은 오후 6시 4분이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수마가 신안교와 서방천을 감싸고 있는 들재매 마을 등의 가옥을 덮친 뒤였다. A씨 실종 사고가 발생한 오후 5시쯤(경찰 추정)에서 1시간가량 지난 시점이다. 북구는 오후 8시23분에 신안동과 용봉동 주민들에게 '태봉초등학교'로 대피하라'는 대피명령 문자를 다시 발송했다.

주민 "뒤늦게 주민 대피령 내리면 무슨 소용 있느냐" 분통
당시 광주에는 1939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일일 강수량 기준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지난 17일 하루 동안 426.4㎜의 강수량이 기록돼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극한 폭우였다. 광주 최대 피해지역인 북구 신안교 일대는 시간당 50~80㎜의 안팎의 극한 호우가 쏟아지면서 오후 1시경부터 서방천의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고, 배수가 원활치 않아 일대가 물바다로 변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대피조치 없이 시간은 점점 지나갔고 오후 4시 20분께는 어른 가슴 높이까지 물이 불어나 주택은 물론 인근 상가와 도로가 침수됐다. 달리던 시내버스에 반쯤 물이 차올라 승객들이 급히 탈출하는 아찔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급기야 오후 5시께는 침수된 집에서 빠져나오던 80대 노인은 주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집 안에 갇혀있던 노인 10여명도 이웃 주민들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다.
이 같은 전후 사정을 감안하면 당국이 오후 4시 전후에서 이 지역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명령을 내렸어야 했다는 게 다수 주민들의 주장이다. 40대 주민 문아무개(43)씨는 "이날 낮부터 폭우에 따른 마을 침수 상황이 심상치 않더니 오후 4시30분께부터는 허리만큼 물이 차올라 가스관을 붙잡고 겨우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보고 북구청 재난 담당부서에 전화를 걸어 직접 현장에 나와 대책을 강구해주길 요청했으나 직원들이 끝내 나타나지 않다"며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거동이 불편한 어른 신들이 꼼짝없이 변을 당할 것으로 직감하고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린 뒤 두 명의 어르신을 잇달아 등에 업어 물살을 헤치며 골목을 겨우 빠져나왔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주민 최아무개씨는 "주택이 처마까지 침수되고 나서 한참 후 주민 대피령을 내리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결과적으로 탁상행정이 피할 수 있었던 화를 불러온 셈으로 행정당국의 발 빠른 대처가 아쉽다"고 꼬집었다.
일부 주민은 거센 빗줄기 속에 대피 방송도 제때 듣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60대 한 주민은 "미리 대피하라고 문자나 방송을 했으면 소중한 물건만 갖다 치워 버렸으면 되는데 하나도 못 가져왔다"며 "그대로 몸만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수차례 구청 담당자와 통화 연결을 시도했으나 안 됐다고 성토했다.


실종 80대 노인 신원…북구청은 5일 동안 몰랐다
북구의 사고 이후 대응도 엉터리였다는 지적이다. 북구가 발표한 실종자 2명 가운데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는 신안동 주민 A씨의 신원을 사고 발생 닷새째인 지난 21일까지도 파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구청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인근 폐쇄회로(CCTV)를 뒤져 주민이 목격했다는 시간에 A씨로 추정되는 사람이 도로를 걷다 거센 물살에 휩쓸리는 장면을 찾아내고서야 신원이 특정됐다.
경찰이 A씨의 실종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오인 신고'로 사건이 종료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앞서 한 주민이 "물살에 사람이 떠내려가는 것을 봤다"며 이날 오후 10시쯤 구청 공무원에게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주민은 A씨의 아들이 북구청에 신고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당국이 A씨의 신상 파악을 제때 파악하지 못한 것은 현장을 도외시한 재난행정 때문이라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 본지 취재진은 A씨가 실종됐던 신안교 오른쪽 편에 위치한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을 만난 지 불과 10분여 만에 A씨가 길 건너 단독주택에서 혼자 살았던 80대 남성 김 아무개씨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도로변에 모여있던 한 주민은 A씨로 추정되는 남성이 사고당시 골목을 배회하는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다른 주민은 한 마을 주민이 A씨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끝내 그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고 실종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해줬다. 이 주민은 취재진을 골목 안에 있는 A씨의 집에까지 안내해주기도 했다.

현장을 무시한 탁상행정 식 재난안전 컨트롤타워의 실종이 무고한 인명과 재난 피해를 낳았다는 뒷말과 무관치 않은 대목이다. 북구 관계자는 "경찰로부터 A씨의 행적과 관련된 통보를 받지 못해 실종 여부를 몰랐다"고 밝혔다.
시사저널은 대피 명령이 늦은 이유와 재난 위급상황 주민 신고 묵살 여부 등 관련 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수차례 광주 북구청 재난안전 부서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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