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욕지도의 기적- 김성호(통영거제고성본부장)

김성호 2025. 7. 23. 19:2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4학년 학생 1명이 욕지초등학교로 전학 왔다. 지난 9일부터는 유치원생 2명이 욕지초 병설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다음 달에는 2학년과 4학년 남매가 욕지초등학교로 전학 올 예정이다.

섬 학교의 학생 수가 늘어나다니, 그것도 1년 만에 무려 5명이나. 기적 같은 일임에 틀림없다.

욕지도는 통영항에서 카페리를 타고 1시간 걸려 도착하는 섬이다. 먼 바다에 있는 섬이기에 물은 더할 수 없이 맑다. 해안선은 기기괴괴한 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육지 쪽으론 올망졸망 섬들이, 반대편엔 수평선이 보인다.

욕지도는 한때 남해안 어업의 전진기지로 깃발 날리던 섬이었다.

욕지도 전성시대는 1920년대 근대 일본의 어업기술이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됐다. 돛 단 어선이 전부이던 시절, 엔진으로 달리는 일본 배의 등장은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혁신이었다. 당시 일본 배들은 조선의 돛단배가 엄두도 못 내던 먼바다에서 고등어를 쓸어 담아 조업지와 가까운 욕지도로 실어 날랐다. 욕지도 자부포에는 일본인 마을이 형성됐고 목욕탕, 이발소, 상점, 요리점, 당구장, 술집 등이 들어서 인파로 북적였다.

욕지초등학교도 이때 생겼다. 1924년 원량공립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연 이래 100년 동안 7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46년엔 욕지공민학교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욕지중학교가 문을 열었다.

욕지도의 불야성은 딱 1970년대까지였다. 한때 인구 2만을 자랑하던 욕지도는 1395명이 전부인 초라한 섬이 됐다. 여느 섬이 그렇듯 인구 감소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2022년 이후 욕지도에서 태어난 아기는 지난해 딱 1명뿐이다. 전교생 15명인 욕지초·중학교 역시 폐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기적은 졸업생과 섬 주민들의 합심에서 시작됐다. 졸업생들과 섬 주민들은 지난해 9월 ‘욕지학교살리기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욕지도로 전학 오는 학생 가족에게 살 집을 제공해 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 결과 초등학생 1명이 전학 오기로 했고 지난 1월 둥지1호 입주식이 열렸다. 이제 곧 둥지2호와 둥지3호 입주식이 연달아 열릴 예정이다.

이번에 전입을 결정한 유치원생 2명을 둔 젊은 부부는 욕지도에 놀러왔다가 여객선 뱃머리에 걸어놓은 현수막을 보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전입 올 초등학생 2명을 둔 가족은 아이들의 외할머니 고향이 욕지도여서 인연이 닿았다.

사실 욕지도는 섬 치고는 기본적인 생활 여건이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도서관과 우체국, 파출소가 있고 교회, 성당, 절이 다 있다.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은 없어도, 하나로마트와 탑마트, 개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이 성업 중이다. 주유소도 1곳, 목욕탕도 1곳 있다. 횟집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집 4곳, 치킨집도 4곳, 국밥집, 국숫집 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욕지도엔 학생 수가 적다 보니 1대 1 맞춤 교육이 가능하다. 욕지초등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트럼펫과 색소폰을 연주하는 관악앙상블 단원으로 활동한다. 욕지중학교엔 실내 골프연습장이 설치돼 있어 욕지도의 모든 아이들이 골프를 배운다.

섬 아이들이 뛰어노는 그림이 아름다워 욕지도를 응원하는 마음이 더욱 크다.

김성호(통영거제고성본부장)

Copyright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