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비추는 ‘섬김의 대상’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

정진오 2025. 7. 2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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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불상경 등 청동거울세트

韓 유물 6개 1세트 사상 최초 발굴
그중 1개 앞뒤 불상 각인, 용도 관심

강화역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청동거울 세트 중 선각불상경. 보이는 부분에 새겨진 불상이 관음보살이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거울은 내 얼굴을 비추어 볼 수 있게도 하지만 나의 내면까지 되돌아보고 반성하게도 하는 독특한 물건이다. 고려시대 사람들에게도 거울은 무척 각별한 생활 도구이자 영험함이 깃든 섬김의 대상이었다.

불과 10여 년 전, 인천 강화에서 고려시대 거울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아주 특별한 청동거울이 세트로 발굴되었다.

2013~2017년, 강화도 교동대교에서 강화대교를 잇는 인화~강화 도로 구간 문화유적 발굴 조사가 있었는데 이때 용정리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 부근에서 그동안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는 고려시대 거울이 출토됐다. 재질은 청동이었고, 지름 17㎝가량의 원형 거울 6개짜리 1세트였다. 거울의 방을 꾸민 것일까. 도대체 이 거울 세트는 어디에 쓰던 물건이었을까.

청동거울 6개 1세트가 한꺼번에 나온 것은 우리나라 유물 발굴 사상 처음이라고 전문가들은 밝히고 있다. 그동안 출토된 청동거울은 1곳에서 1개씩 발굴된 게 고작이었다.

6개 중 1개는 앞뒤 양면에 불상을 새긴 선각불상경(線刻佛像鏡)이고, 나머지 5개는 아무런 문양도 넣지 않은 무문경(無紋鏡)이다. 무문경 5개마다 맨위에 같은 크기(0.3㎝)의 구멍이 뚫려 있다. 어딘가에 매달 수 있도록 한 현경(懸鏡)이란 얘기다. 선각불상경과 5개의 무문경이 크기는 같은데, 두께와 무게에서는 선각불상경이 무문경에 비해 얇고 가볍다.

강화 용정리 청동거울 선각불상경의 경우 한 면에는 아미타불을, 다른 쪽에는 관음보살을 새겼는데 이 또한 그동안의 국내 발굴 선각불상경과는 다른 특색이라고 한다. 특히 청동거울 6개 세트가 발굴된 고려시대 건물지의 용도 역시 관심을 끈다. 전문가들은 이곳의 건물이 사찰이라기보다는 군사적 목적의 방어시설이나 외부 손님을 맞기 위한 객관(客館), 또는 국가 의례용 중요 시설이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이 건물지가 처음 구축된 것은 고려가 강화로 천도하기 전인 12세기 중반이었다. 천도 직후인 13세기에 대규모 증축 공사가 있었던 흔적도 드러났다. 청동거울도 증축할 때 제작해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건물은 14세기 전반기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청동거울의 구체적 제작 시기가 드러난 경우는 이 강화 용정리 출토 거울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고려시대 거울은 불상과 같은 반열의 신성함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대문호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 속 ‘왕륜사(王輪寺)의 장륙금상(丈六金像)이 보인 영험(靈驗)을 수습한 데 대한 기(記)’를 보면, 왕륜사에 앉힐 불상의 가슴에 한 여인이 시주한 거울이 딱 붙으며 나타나는 영험함이 표현되어 있다.

강화 용정리 출토 청동거울은 강화역사박물관 ‘고려시대 강화’ 코너에 전시돼 있다. 박물관 측은 선각불상경을 가운데 두고 5개의 무문경을 위쪽으로 부챗살처럼 펼쳐 놓았다. 우리나라 어느 박물관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고려시대 강화 용정리 건물에서도 지금처럼 걸어 놓았던 것일까. 이 6개짜리 청동거울 세트의 당시 쓰임새가 더욱 궁금해진다.

인천광역시 강화군은 용정리 출토 청동거울에 대해 올 하반기 중 국가문화유산 지정 신청을 한다는 계획이다.


/정진오 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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