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혁의 슬기로운 문학생활] [11] 헤밍웨이와 6·25전쟁

여름이 되면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은 책 중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있다. 이 짧은 소설은 헤밍웨이가 작가 인생 후반에 건져 올린 역작으로 유명하지만, 뜻밖에도 한국과 인연이 있다는 사실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6·25전쟁이 지루하게 진행 중이던 1952년 여름이었다. ‘라이프’는 당시 한물간 작가로 평가받던 헤밍웨이의 신작 중편소설을 잡지에 싣는 모험을 하려 했다. 출간에 앞서 영향력 있는 작가나 평론가들에게 미리 보여주고 추천사나 평을 받고자 전 세계로 초고를 발송했다. 그중에는 종군기자로 6·25에 참전 중이던 미국 소설가 제임스 미치너도 있었다. 훗날 미치너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썼다. “나는 그 원고 봉투를 개봉해 한국의 어느 외진 산간 지방의 해병대 초소 불빛 밑에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물고기와 씨름한 뒤 그것을 빼앗으려고 달려드는 상어와 투쟁하는 한 늙은 어부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원고를 다 읽은 미치너는 어떤 흥분과 벅참 속에서 밖으로 나가 한동안 한국의 밤길을 걸었다고 전해진다. 미치너의 추천에 힘입어 결국 이 소설이 실린 잡지 ‘라이프’는 이틀 만에 500만부 넘게 판매되었다. 잊혀가는 작가였던 헤밍웨이는 1953년 퓰리처상에 이어 1954년 노벨 문학상의 주인공이 된다.
이따금 나는 원고를 다 읽은 미치너가 초소 밖으로 나가 걸었을 한국의 여름밤을 상상해 본다. 전쟁의 한가운데, 극동아시아 낯선 나라에 떨어진 미국 소설가. 그가 카리브해에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늙은 어부의 이야기를 품고 마주했을 그 비현실적 광경을.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시공간을 이어준다. 그리고 깨닫게 한다. 실은 어디나 거친 바다이고, 누구나 자신만의 청새치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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