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진정 흠모한 인물, 주공(周公)

기호일보 2025. 7. 2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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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용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보계시 기산의 주공 사당 정문.
문승용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중국에는 기원전 21세기 이래 하(夏), 상(商), 주(周)와 같은 여러 왕조가 있었지만 오늘날 중국의 주요 민족을 한족(漢族), 중국의 언어를 한어(漢語), 중국의 문자를 한자(漢字)라고 일컫는 등 중국의 문화를 한문화(漢文化)라고 부르는 이유는 기원전 206년에 건국한 한(漢)나라가 문화적 통일을 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는 공자의 유가(儒家) 사상을 정치 이념으로 채택해 유가 중심의 중국 문화를 형성시켰고, 나아가 유가의 정치사상은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유가문화권을 형성했다. 그러므로 공자가 살았던 주나라는 중국 문화의 이상향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공자는 주나라 건국을 완수한 무왕(武王)의 동생인 희단(姬旦)을 흠모했다.

희단을 흔히 주공(周公)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공은 봉건제(封建制)를 시행한 주나라에서 왕자라는 의미다. 오늘날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 사극에서 왕이 신하를 부르거나 높은 벼슬아치들이 상대방을 높여서 '공'이라고 일컫는 것과는 다르다.

앞서 종족을 이끌고 기산으로 왔던 고공단보와 문왕이 주나라 건국의 기틀을 다졌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상나라를 무찌르고 혁명에 성공한 이는 무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작 후대에 주의 건국뿐 아니라 중국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성인(聖人)으로서 빛나는 영예를 누린 이는 주공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공자가 가장 존중한 인물로 주공을 꼽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 '술이(述而)'편에서 "심해졌구나, 내가 노쇠했구나! 오래됐구나, 내가 꿈에서라도 주공을 다시 뵙지 못하는구나!(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라고 말할 정도로 공자는 꿈에서라도 주공을 보고 싶어했다.

공자가 요순(堯舜) 임금을 최고의 성군으로 들기도 했지만 이들은 기원전 2500년 전쯤의 전설에 나오는 인물일 뿐이고 그들이 정말 존재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 가운데 공자가 그의 어록인 「논어」에서 주공을 얼마나 흠모했는지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오늘날 기산에 주공의 사당이 가장 번듯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주공이 중국 역사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 잘 알 수 있다.

공자가 주공을 가장 흠모했던 이유는 유가 이념 가운데 예(禮)의 실천에 가장 모범적인 인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본디 예자를 쪼개서 그 의미를 살펴보면 제단 위 그릇에 풍성한 제사용품을 담아 하늘에 제례를 올린다는 뜻이다. 이것이 후대로 이어오면서 인간사회에서 구성원들이 각기 지켜야 할 도리나 규범의 의미로, 오늘날에는 예가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 자기의 직분이나 할 도리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로 흔히 쓰게 됐다. 예와 인(仁)은 공자 유가사상의 핵심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주나라를 가장 이상적인 시대로 꼽았지만 실제로 후반기인 동주(東周)를 흔히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라고 일컫는 것처럼 밖으로는 이웃 나라와 매일같이 패권 전쟁을 치르느라 여념이 없었고 안으로는 임금과 신하가 각각 권력 다툼을 하느라 죽고 죽이던 지극히 혼란스러운 때였다. 

반면 주공은 아버지 문왕이 건국 기반을 다질 때 아들로서 열심히 받들었고, 아버지가 죽고 형님인 무왕이 군사를 일으켜 상나라를 물리치고 나라를 세울 때는 동생으로서 형을 잘 도왔고, 무왕이 즉위한 지 2년 만에 죽자 이제는 조카인 성왕(成王)을 잘 보필해 나라의 기틀을 세워 보전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처럼 주공은 아버지에게는 효자였고, 형에게는 우애로운 동생이었고, 조카에게는 은혜로운 삼촌이었다. 

주나라의 극심한 혼란기인 춘추시대를 살았던 공자는 주공이야말로 자신의 처지에서 본분을 지켜 최선을 다했던 인물로서 유가의 핵심 사상인 예를 가장 적절하게 실천한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라고 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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