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실행

1993년. 삼성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을 부르짖으며 ‘처자식을 제외하고 다 바꿔라’고 정신적 무장을 강조했다. 그리고 시행한 것이 7시 출근 4시 퇴근인 74제이다. 당시 용인에서 서울 태평로에 있는 삼성 본관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용인에서 서울로 출발하는 첫차가 6시였기 때문에 7시에 도착할 수가 없었다. 삼성답게 74제를 한다고 발표하고 1주일도 되지 않아 실행했다. 급히 서울 홍제동으로 이사했다.
처음에는 ‘7시 출근은 의무이고, 4시 퇴근은 권리였다.’ 하지만, 회사의 변화 의지는 강했다. 사실 4시 퇴근이 반갑지 않은 사람은 경영진이었다. 저녁 약속이 많았고, 20년 넘도록 늦게 퇴근하는 것이 익숙해 4시 퇴근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임원들이 퇴근하지 않으니, 아래 직원은 4시 퇴근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전체 소등을 해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회사의 방침에 반대하는 경영진을 퇴직 조치하고, 사내 홍보 강화, 4시 퇴근 강행을 추진하자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4시 반에 귀가했다. 며칠은 아내가 좋아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4시반에 퇴근하는 남편이 그렇게 반갑지 만은 않다. 새벽 밥, 잠시 쉬고 지인들 만나는 시간에 남편의 퇴근이다. 밝은 대낮에 집에서 할 일 없는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강제적으로 시행되었던 74제는 많은 충격과 시사점을 주었으나, 각 사의 실정에 맞도록 85제 등으로 유연하게 운영되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74제가 시작되자, 몇 명 앞서가는 지인들은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변화의 기회로 삼아 평소 해보고 싶은 일에 도전했다. 인사팀에 근무하던 동기는 노무사 준비를 시작했다. 퇴근 후 학원을 다니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했다고 한다. 삼성전자 다니던 후배는 영어 회화 학원에 등록했다. 필자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졸업을 하고 박사 과정에 입학하는 계기가 되었다.
74제 시행 후 10년이 지난 다음, 개개인의 위치와 역량에 큰 격차가 생겼다. 노무사 공부를 한 동기는 지금도 노무법인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언제 변화할 것인가?
모토로라, 코닥, 엔론, GNC, GM, 리먼 부라더스 등은 글로벌 기업으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왜 망했을까? 망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경영층의 무능과 임직원의 역량 부족은 아니다. 망하기 전, 지속적으로 매출이나 이익이 현저히 떨어져 더 이상의 성장 가능성이 없던 회사도 아니다. 산업 순위가 글로벌 1위에까지 올라갔던 기업도 있다. 이들이 망한 이유는 오히려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의 강점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익을 포기할 수 없어 변화에 대한 인식과 때를 놓쳐 경쟁에 밀린 탓도 있다.
전자 산업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교하면 어떨까?
TV,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에어컨 등 가전 산업은 아직도 수요가 있고, 경쟁이 심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70년대까지는 LG의 점유율이 높았다. 80년대부터 마케팅의 삼성이 추격했다. 어느 순간, 삼성이 LG를 앞선 적이 있지만, 현재 가전은 LG가 우세이다.
하지만, 가전을 제외한 전자 산업의 다른 업종을 보면 양상이 달라진다.
삼성은 가전에서 출발하여 반도체, 정보통신기기로 변화의 방향을 선회했다. 반도체, 스마트폰, 모니터의 매출과 이익이 삼성전자 매출과 이익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순수 가전만 보면 10%미만일 것이다.
일본의 사례도 있다.
소니와 파나소닉은 2008년만 해도 가전 중심의 매출 7조엔대로 비슷한 회사였다. 2010년 소니는 가전에서 벗어나 게임, 음악,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바꿨다. 파나소닉은 지금도 가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은 어떨까? 경쟁기업이라고 할까? 이미 생산과 경쟁하는 업종이 다르다. LG전자나 파나소닉은 상대를 경쟁기업이라 하겠지만, 삼성전자와 소니는 상대를 동종기업이라 할 것이다. 매출과 이익에서 따라가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미래는 어떨까?
일본 제조기업들이 두려움을 갖고 연구하며 경쟁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기업들이 어디일까? 일본 보다 앞서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초 일류 기업들일까? 한국의 삼성, 현대기아자동차, LG일까? 일본 제조기업들이 한국 기업을 두려워한 적이 있다. 그것은 이들이 변화를 읽고 신속하고 악착 같이 실행하여 도전하고 추격해왔기 때문이다. 지금 이들이 두려워하는 기업은 중국 제조기업이다. 중국 시장이 넓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 기업들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게 추격해 오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도 국내에서의 경쟁은 의미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고 성장해 이익을 창출해야만 한다. 무엇으로 어떻게 이길 것인가? 과거의 방식 중 강점은 계승하되, 미래 변화 트렌드에 맞지 않는 생각과 일하는 방식, 제품과 서비스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이건희 회장이 말한 것처럼 처자식이 아니면 다 버려야 한다. 오히려 그 때보다 더 심각하다.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인데, ‘그 누군가가 74제처럼 획기적 변화와 실행을 주도해 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 곤란하다. 경영층, 지도층부터 변화에 대한 의지와 실행의 결단을 내리고 달릴 때이다
[홍석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홍석환의 HR 전략 컨설팅 대표/전) 인사혁신처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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