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 괴롭힘에서 보호하는 세상 바꾸려면
'방송 미디어 노동자와 직장 내 괴롭힘, 오요안나법 조건은' 토론회
무늬만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괴롭힘 피해 현실 증언 나와
'오요안나법' 표방한 관련 법에 "법 취지 역행" 우려도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MBC 보도국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 씨 유족이 국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노동자들을 만나 “제 딸만 겪은 일로 착각하고 1년 가까이 생각해왔는데 문제는 방송미디어 자체의 오래된, 고착화된 관례들이었다”며 “PD, 카메라, 작가, 아나운서 등 방송의 꿈을 가졌던 사람이 현실을 못 견디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오요안나법'을 표방한 관련 법 중 일부는 오히려 법 취지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어머니 장연미 씨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오요안나법의 조건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프리랜서 신분으로 일하며 직장 내 괴롭힘과 사측의 고용책임 회피 문제에 대한 증언을 들은 직후 현장 노동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회노동포럼(국회의원 이학영·이용우·신장식)과 김소희 의원실, 엔딩크레딧, 직장갑질119가 주최했다.
장씨는 “딸이 생일에 낳아줘서 고맙다며 맛난 것을 사주면서 '이거 그냥 돈이 아니라 뼈를 간 거야'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새벽 3시에 나가 생방 3개 하고, (유튜브) 라이브를 하고, 태풍 오면 퇴근 못하고 계속 있어야 했다”며 “방송 종사자 한 분 한 분이 거대한 방송사 움직이는 하나의 부속들이다. 누구는 나사, 기름, 엔진 역할을 하면서도, 어느 몇 명을 빼고는 소모되면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요안나는 TV에 나왔지만, 얼굴을 알 수 없는 분들, 뒤에서 일하는 분들은 훨씬 많지 않나. 그런 분들이 많기에 방송이 이어진다. 엄마로서, 너무 여러분들이 당하는 현실이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울면서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실태 하나 하나를 고용노동부든, 국회든 철저히, KBS부터 시작해 다 조사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말씀대로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할 수 있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잘 나가는 소수 엘리트만 행복한 방송이 아니라 땀흘리면 대가가 있는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방송미디어업계에서 '프리랜서' 신분을 적용받으며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오 씨의 경우 사망 뒤 사회적 여론이 일자 고용노동부가 MBC를 상대로 특별근로감독에 나섰다. 그러나 노동부는 지난 5월 오 캐스터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인정하면서도 그가 노동자가 아닌 프리랜서로 일했다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76조의2·3)을 적용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주요 경제지 A사의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했다고 밝힌 허이슬(가명) 씨는 “(팀장은) 매출을 잘 내면 1년의 에디터를 거쳐 본사 정직원의 특채 기자로 채용될 수 있다고 설득했다”며 “알고보니 이 곳은 A사가 사업장을 쪼개 근로기준법을 피해가려 만든 업장이었다”고 했다. 그의 사건을 맡은 하은성 노무사(샛별노무사사무소)는 “당사자는 A사 프리랜서 소속으로 근무했으나 계약서 '갑' 부분에 회사명이 기재돼 있지 않고, 실제 계약 상대방은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신고된 'A사 기획사업본부'”였다고 설명했다.

허씨는 “팀장은 계약서만 프리랜서라고 말했다. 큰 회사의 이름을 믿었다”며 “그러나 저는 전혀 '프리'하지 않았다. 사무보조였고, 에디터였고, 영업사원이었고, 팀장 비서이면서 동시에 몇 푼의 월급 때문에 CCTV 감시와 성적 농담을 견뎌야 했던 한 명의 노동자였다”고 했다. 그는 아침 사무실에 9시30분까지 출근해 팀장의 지시를 받고 본사에서 신문을 가져오고, 커피 심부름과 사무실 컵과 접시 닦기 등 작은 살림까지 도맡았고, 무급 야근과 주말근무도 했다고 했다. 그는 고용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과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신고했지만, 소속 직원이 5인 미만이라는 이유 등으로 불인정 판단을 받았다.
외주제작사 방송작가로 일한 김서윤(가명) 씨는 “주말에 일하지 않고, 시즌제 아닌 장기 프로그램 팀이기에 기한의 정함 없이 일할 수 있다는 메인 작가 말을 듣고 입사했지만 사실과 달랐다”며 “회사 정규직보다 더 강한 지시와 통제 속에서 모든 것을 수시로 보고해야 했고, 일반 근로자의 3~4배에 달하는 근로 시간을 감내했으나 수당도 없고 휴게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자료를 찾으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업무의 반복 지시로 많은 날 새벽을 지새웠고, 결과를 못 내면 사무실에서 공공연히 폭언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해고 당일 뒤늦게 '프리랜서 근로계약서'라는 이름에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근로복지공단은 그의 산재 신청에 대해 '노동자가 아니다'란 이유로 기각했다. 이후 김씨는 노동위원회와 노동청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 받은 뒤에야 산재도 인정 받을 수 있었다.
이날 토론회는 국회에 '오요안나법'을 표방한 직장내 괴롭힘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된 가운데 올바른 입법 방향을 논하는 자리로 열렸다. 하지만 언론에 주되게 언급된 법안 일부에 법의 취지를 역행하는 조항이 포함됐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대표노무사는 “일하는 사람 모두가 근로기준법을 당장 전면 적용 받지 못한다면, 인권침해 영역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만이라도 당장 적용돼야 한다는 결론은 나와 있다”며 “그런데 일부 법안에 '지속성'과 '반복성'을 요건으로 추가하거나, 허위신고가 남발되니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허위신고자를 징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재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의 발의안과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 등 41인이 발의한 특별법안은 허위 신고자를 징계하도록 하는 제재 근거 조항과 함께 괴롭힘 해당 요건에 '지속성, 반복성'을 추가했다. 김 노무사는 “이전 정권부터 노동부, 일부 사용자 중심 학회 등에서 거론해온 '괴롭힘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적극 수렴한 결과로 보인다”며 “그러나 이 경우 필연적으로 지속성과 반복성을 수치화할 수밖에 없고, 신고 문턱이 높아진다. ILO 190호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 협약'은 '일회적이든 반복되는 괴롭힘과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명시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최충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기획과 서기관은 “이재학 PD님이 사망하시고 방송사 근로조건을 본격 감독해왔다”며 “MBC 특별근로감독 과정에서도 여전히 괴롭힘 관련 불합리한 문화, 프리랜서 오남용 사례 등 여러 가지 노동관계법 위반이 지속 발생함을 확인했다”고 했다. 이어 “제작 현장에서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지, 위법을 확인하고 시정 지시했음에도 왜 반복되는지 구조적 문제를 반드시 짚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구조적 개선 방안을 같이 고민하고, 이를 감독 결과로 내놓아 다시는 안타까운 사고가 없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진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노동부가 오 캐스터의 노동자성을 불인정한 가운데, 유족과 국회의원실 요구에도 MBC 특별근로감독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최 서기관은 “법 위반 부분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보고서를 공개할 시 '피의사실 공표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오 캐스터의 외삼촌인 장영재씨는 “김소희 의원이 출퇴근 기록 제출을 요청했는데 아직 MBC가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죽은 오요안나가 피해를 증명하는 제도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 가해자가 증명하는 제도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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