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설득에 게으른 자들의 투정 [세상읽기]

한겨레 2025. 7. 15.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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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성 | 작가

한국 자본시장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상법 개정안이 지난 3일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다.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의 의결권 제한 등 많은 조항이 변경되었지만, 이번 개정의 핵심은 공포 즉시 시행되는 382조의3, ‘이사의 충실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상법에서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 머물렀다면, 개정 상법에서는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금번 상법 개정은 그간 한국에서 소외돼왔던 주주 보호 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써, 자본시장 참여자 대다수는 이번 상법 개정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이나 재계와 일각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그중에서도 가장 빈도 높게 제기되는 우려는 ‘기업이 장기적 안목을 통한 투자보다는 주주들 등쌀에 단기적, 재무적 이익에 집착하다 결국 전반적인 기업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은 단기 차익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기업의 단기적·재무적 이익에 예민하다는 우려는 덤이다.

그러나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이 단기적·재무적 이익에 집착하는 것은, 결국 거꾸로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장기 투자 수익률을 보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기 투자자에게 손해를 안겨주거나, 다른 시장보다 수익률이 열위에 처해 있는 시장에 장기 투자를 하는 바보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투자자들의 투자 행태를 문제 삼는 것은 모순이다. 결국 시장의 상황이 투자 행태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순환을 어디선가 끊어내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거버넌스가 바뀌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식 주주자본주의하에서는, 오너 경영의 장점도 단점도 모두 극대화된다. 오너가 혜안이 있다면 미래를 내다보고 미래 먹거리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오너가 있다면 그 기업의 ‘미래 먹거리 투자’는 진짜 미래 먹거리 투자가 아니게 된다. 그 오너의 이익 또는 그 오너의 그때그때 기분에만 맞춰진 투자가 신사업 투자로 포장되고, 주주들의 반발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본예산이 집행된다. 그 결과 사실상 사기를 당한 것에 가까운 실패를 겪었던 사례도 우리는 다수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재벌 대기업 대주주들과 그의 특수관계인들은 전세계에서 유례없이 불성실한 사람들이다. 애당초 큰 자본을 들여 장기 투자를 하려면, 주주들을 설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의 재벌들은 그렇게 해본 적이 없다. 즉 전제군주제가 너무 당연했던 나머지 민주주의가 도저히 와닿지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심지어 전제군주들도 민중을 정신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왕권신수설 같은 논리와 철학을 만들어냈는데, 재벌 군주들은 주주를 설득하기 위해 그런 차원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 한국이다.

주주가 무서워서 장기 투자가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할 바에야, 주주를 설득하려는 노력을 더 기울이는 것이 낫다. 주주들이 단순히 단기 차익에 신경 쓰느라 회사의 미래를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한국의 주식 투자자들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주장이다. 회사가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주주가 불문곡직 소송을 남발할 것이라는 예상도 지나치다. 다만 향후 ‘주주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두고 분쟁이 잦아질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는 건전한 자본시장을 위해 우리 모두가 분담해야 하는 비용이다. 새로운 질서에는 세부적인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법 개정 이후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될 곳은 기업이나 국회나 행정부가 아닌 법원이다. 초기 10년에 법원이 제대로 된 판례를 쌓지 않으면 그 후의 수십년이 피곤할 것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상법 개정이 새롭게 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본주의의 논리대로만은 돌아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상법 개정의 부작용이 두려워 지금의 체제를 유지한다면, 장기 투자도 오직 오너의 결정에만 의존할 것이고, 오너가 고른 사업에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오히려 부실한 실사 등으로 손해를 입는 경우, 차세대 제품·기술 개발보다는 부동산에 치중했던 과거 일부 재벌 기업의 오판 같은 사례만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인공지능(AI)과 같은 새로운 물결,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속 약화하는 자유무역의 흐름 등에 우리가 현명하게 대응하려면, 건전한 자본시장이 토대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상법 개정은 이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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