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애리의 유럽문화예술기행] 다뉴브강의 슬픈 선율이 흐르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Budapest)로 역사 문화 기행을 떠나봅니다.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언덕 위의 부다(Buda), 동쪽은 평야 지대인 페스트(Pest)로 나뉘어 있습니다.
부다와 페스트의 통합 이야기는 1848년 헝가리 혁명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헝가리의 근대화를 꿈꾼 귀족 세체니 이슈트반은 두 도시와 오부다를 통합해 새로운 수도로 삼자고 주장했습니다. 부다는 왕궁이 있는 전통적인 수도였지만 낙후되어 있었고, 페스트는 무역과 문화의 중심지로, 두 도시는 역사적, 사회적 차이가 컸기에 통합에는 반대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연합군이 침공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부다와 페스트는 통합에 동의했으나, 혁명이 진압되면서 통합도 무산되고 맙니다. 이후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탄생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고, 마침내 1873년 11월17일 부다, 페스트, 오부다가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통합 이후로 부다페스트는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도시가 되었습니다. 피아니스트 리스트가 활약하고, 안드라시 대로, 유럽 최초의 지하철, 국회의사당, 오페라 하우스, 세체니 온천 등이 만들어지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부다페스트의 모습이 형성되었습니다.
이제 부다 언덕으로 올라가 봅니다. 13세기에 건설되어 오랫동안 헝가리 왕실의 거처였던 부다 왕궁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은 헝가리 국립미술관과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며, 과거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왕궁 옆에는 오색 타일 지붕이 인상적인 마차시 교회와, 중세 동화 속 성채를 연상케 하는 '어부의 요새'가 그림처럼 어우러져 중세의 정취를 자아냅니다.

'어부의 요새'는 19세기 말, 헝가리 건국 100주년을 기념해 세워졌습니다. 이름은 전설에서 비롯되었는데, 중세 시절 이 지역을 지키던 어부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려 붙여졌다고 합니다. 일곱 개의 뾰족한 탑은 896년 이 땅에 정착한 일곱 마자르 부족을 상징합니다. 이곳에 서면 도나우강 너머 페스트 지역과 국회의사당의 장대한 전경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특히 해가 지고 조명이 켜지면, 반짝이는 도시의 실루엣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언덕에서 내려와 세체니 다리를 건너봅니다. 1849년, 세체니 이슈트반의 주도로 건설된 이 다리는 부다와 페스트를 처음으로 연결한 다리로, 당대에는 기술적 혁신이자, 근대 헝가리의 상징이었습니다. 다리 양편에 놓인 돌사자는 국가의 자부심을 상징합니다. 이 다리는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학생들과 시민들이 소련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건넜던 길이기도 합니다. 이후 1989년 공산 정권의 붕괴 직전, 수천 명의 시민들이 이 다리를 건너 자유를 향해 행진했고, 사람들은 이 다리를 '자유의 다리', '민주화의 다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강을 건너 부다페스트 중심부를 향해 걷다 보면, 시야가 탁 트이며 거대한 공간이 펼쳐집니다. 이곳이 바로 '영웅광장'으로, 헝가리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광장의 중심에는 높이 36m의 '자유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헝가리 건국신화를 상징하는 천사 가브리엘이 성 이슈트반의 왕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기둥 아래에는 헝가리 민족의 시조로 여겨지는 아르파드와 여섯 부족장이 말을 탄 채,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어 9세기 말 마자르족의 이주와 정착을 상징합니다. 자유기념탑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펼쳐진 반원형 회랑 안에는, 총 14명의 왕과 영웅들의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헝가리의 역사 속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 인물들입니다. 이 웅장한 조각상들은 마치 전설 속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생생함과 역사의 무게감, 그리고 민족의 자부심을 함께 전해줍니다.

마지막으로, 다뉴브 강가를 따라가다 보면 가슴 아픈 기억이 남겨진 자리에 도착하게 됩니다. 1944년, 부다페스트가 나치와 협력한 친나치 정권의 통치 아래 놓였을 때, 수천 명의 유대인이 강가에서 총살당하고 강물에 떠밀려 갔습니다. 총살 직전, 강가에 신발을 벗어놓게 했지요. 그 참혹했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2005년 이곳에 60켤레의 쇠 신발이 설치되었습니다.
부다페스트는 화려한 예술과 깊은 역사, 그리고 자유와 슬픔의 기억이 어우러진 도시입니다. 이곳을 걷는 일은, 시간과 기억을 함께 걷는 특별한 여정이 됩니다.

/나애리 전 수원대학교 유럽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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