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경상남도기록원 공동기획- 기록으로 보는 경남] (7) 경남도청의 역사

knnews 2025. 7. 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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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겪은 도청 역사가 곧 경남 역사
도청사 이전, 단순한 행정기관 이동 넘어
지역 정체성·시대변화 담긴 역사적 흔적
과정 기록 소중한 자산… 미래 설계 도움


“우리 고향 신리는 가야국의 숨결이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는, 인정 넘치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동쪽으로는 진례성이 방어하고, 북쪽으로는 봉림사터의 분향이 번져오는 평화로운 향촌이었다. 마을의 역사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임진왜란 전후에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아 약 400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곳이다.”

이 글은 경남도청 신관과 경남경찰청 사이에 세워진 비석의 첫 문장이다. 이 비석은 경남도청이 이전하기 전 원주민인 신리마을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유허비이다.
1983년 3월 20일 경남도청사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외벽 작업을 하고 있다./경남기록원/

1983년 3월 20일 경남도청사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외벽 작업을 하고 있다./경남기록원/
신리마을 옛터(도청 이전 전 마을) 유허비(도청 신관 옆).

신리마을 옛터(도청 이전 전 마을) 유허비(도청 신관 옆).

경남도청은 ‘가야국의 숨결이 이어져 오고, 인정 넘치고 아름다운 마을’에 터를 잡았다.

본청 근무 시절, 나는 이 비석 앞에서 한참을 머문 적이 있다. 집을 제외하고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내 직장이 ‘인정 넘치고, 아름다웠던 곳’이라는 사실은 비록 마을을 떠나야 했던 분들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그 자리에 정착한 이들에게는 근원의 축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경남의 역사를 기록하는 경남도청은 그 자체로 경남의 역사다. 오랜 시간 경남도청이 오고 간 자리마다 경남은 크고 작은 위기와 변화를 겪었다. 도청 이전, 행정구역 변경, 해방 이후 38번 바뀐 도지사, 도 상징물과 도민의 노래 제·개정, ‘경상남도사(지)’ 발간, 서부청사 개청 등 경남도청은 경남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왔다.

지난 7월 1일은 부산에 있던 경남도청사가 1983년 창원으로 이전한 지 42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2025년 올해는 경남도가 탄생한(1896년 8월 4일) 지 129년, 도청사가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한(1925년 4월 1일) 지 100년, 진주시민의 염원이 담긴 서부청사가 개청(2015년 12월 17일)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짧은 글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경남과 도청의 역사는 분리할 수 없고, 분리되어서도 안 될 관계다.
도청사 이축 계획(1981년)./경남기록원/

도청사 이축 계획(1981년)./경남기록원/
제2회 도민의날 경축 경상남도립무용단 창단 공연(1984년)./경남기록원/

제2회 도민의날 경축 경상남도립무용단 창단 공연(1984년)./경남기록원/

경상남도기록원에는 이러한 경남과 도청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수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부산 청사 시절의 상무관 지붕 기와, 경남도청사 증축 공사의 상량문, 1983년부터 2004년까지 사용된 경상남도지사 직인, 자매결연 협정서, 도지사 사진과 당선증 등이 행정박물로 보관돼 있다.

또한 도청 이전(1980~1983년), 울산광역시 인수인계(1996~2003년), 경남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1995~1996년), ‘경상남도사(지)’(1960년, 1963년, 1978년, 1988년, 2020년) 등의 문서도 있다.
제2회 도민의날 기념행사 위원회 구성운영(1984년)./경남기록원/

제2회 도민의날 기념행사 위원회 구성운영(1984년)./경남기록원/

이러한 기록 속에는 현재 도청이 추진 중인 일들의 기원과 100년 또는 40년 전의 경남을 기억할 수 있는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예컨대 도청사가 왜 ‘창원’으로 이전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보면 “창원시는 중화학공업 및 전원도시로, 도 관할 구역의 중심 지역에 위치하며 지리적으로 적합하다(함양, 창원, 울산 간 거리). 또한 1977년 창원 신도시 건설계획 및 설계는 도 본청 및 유관기관 이전을 전제로 정부에서 이미 수립한 계획이었다.”는 이전 사유가 있다.
경상남도 도민가(1961년)./경남기록원/

경상남도 도민가(1961년)./경남기록원/
도민의 노래 가사 제정(1967년)./경남기록원/

도민의 노래 가사 제정(1967년)./경남기록원/

또한, 2023년에 다시 제정된 ‘도민의 날’의 기원과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도민의 노래’ 제정 목적과 연혁도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민의 날은 1983년 처음 관련 조례가 제정돼 ‘10월 14일’로 정해졌고 현재 불리는 도민의 노래는 1961년 ‘경상남도 도민가’였으며 가사와 내용이 지금과는 달랐다는 사실도 남아 있다.

나는 이 많은 기록 중 특히 한 장의 사진을 가장 좋아한다. 이 사진은 1983년 3월 20일, 도청사 공사 현장의 모습이다. 도청사 건립을 완수하기 위해 현장 인부들이 가느다란 줄에 의지한 채 아슬아슬하게 창문을 만들고 페인트를 칠하며 손상된 부분을 메우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며 나는 ‘완성’이라는 결과 뒤에 숨어 있는 수많은 손길과 땀방울을 기억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일의 과정과 노력이 결과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단지 위안처럼 여길 때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결과만큼이나,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과정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임을 실감하게 된다. 때로는 어떤 일이 ‘천년의 세월을 팔아 한 시절을 사려는’ 일이 될 수 있기에, 성공이 전부가 아닌 경우도 있다. 그래서 ‘과정의 기록’은 매우 중요하다. 한 사람의 영웅적인 행위가 아니라 다양한 견해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만들어낸 결과라면 그 과정 역시 결과만큼 귀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1996년 8월 4일 경남 탄생 100주년 기념식.

1996년 8월 4일 경남 탄생 100주년 기념식.

그렇기에 나는 경남도청을 둘러싼 수많은 일의 전개 과정이 새삼 의미 있게 다가온다. 1963년 부산이 경남에서 분리된 이후, 경남도청이 창원에 자리를 잡기까지는 무려 20년이 걸렸다. ‘도청사의 부산시 위치로 인한 도정의 구심점 상실’이라는 도청 이전 필요성의 문구는 그 이면에 숨겨진 수많은 어려움과 노력을 짐작하게 해준다.

처음 도청에 임용됐을 때 나는 두 가지가 궁금했다. 하나는 ‘도청의 역사’이고, 또 하나는 ‘경남의 역사’였다. 경남기록원이 건립되고 이곳으로 발령받았을 때,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이 두 역사를 조망하는 일이었다. 그 결과물은 ‘경남도청 이전을 기록하다’와 ‘경남 독립운동의 기록’으로 발간돼 현재 경남도 홈페이지에 공개되고 있다. 그 이후 경남도청 이전 40주년 기념 전시회, 이전 관련 동영상 제작, 그리고 현재의 경남 산업화 역사까지 경남도청과 경남의 발자취를 조망하는 일은 경상남도기록원을 통해 정리되고 축적되며 공개되고 있다.

경남도청의 이전은 단순한 행정기관의 이동을 넘어 지역의 정체성과 시대의 변화 그리고 도민들의 삶과 꿈이 어우러진 역사적 여정이다. 진주에서 부산, 다시 창원으로 이어진 그 길에는 상실과 희망 그리고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러한 기록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다리로서 도청 이전과 행정구역 개편 등 다양한 목소리와 경험을 담아 경남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된다. 또한 이 기록들이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남아 경남의 뿌리와 정신을 100년 후 미래 세대에게 전함으로써 그들 또한 경남에서 살아가는 것이 근원의 축복임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가희 기록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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