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4주년] 부천 친환경 자족도시 조성… 초록빛 미래 실현 박차

박영재 2025. 7. 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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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서부권 신 첨단산업벨트 구축 성장 동력 확보
친환경 공원·녹지 조성 등 녹색주거환경 조성 목표

부천시가 '대장신도시'를 첨단산업기능을 갖춘 미래형 친환경 자족도시로 조성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경기 서부권 신 첨단산업벨트 구축으로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30만 평 규모의 공원·녹지 조성으로 녹색주거환경을 건설하겠다는 게 목표다.

대장신도시는 오는 2029년 완공을 목표로 대장동·오정동·원종동·삼정동 일원 총 341만9천544㎡(103만 평) 부지에 사업비 4조2천500억 원을 투입해 조성, 약2만여 세대(5만 명) 공동주택과 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사업시행은 경기도·한국토지주택공사·부천도시공사가 맡는다.
대장신도시 위치도. 사진=부천시청

주요 사업은 ▶신산업 복합 자족 도시· 산업단지(56만㎡), 자족용지(16만㎡), 앵커기업유치 ▶스마트 교통도시, 대장홍대선, 간선도로 확장, 자전거 순환네트워크 구축 ▶수변 공원·녹지(100만㎡), 중앙호수 공원, 부천형 가든 조성 ▶입체 디자인 도시·특별계획구역(19만㎡), 에듀카펫 조성(학교·공원 연계) 등이다. 현재 지구별 기반조성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대장신도시의 공동주택단지는 인천 계양구와 서울 강서구와 인접해 있어 부천을 넘어 수도권 서부 주거중심지로 거듭난다. 특히 상업중심 개발과 달리 친환경 스마트시티 개발로 차별화된 주거환경이 제공된다.

주민 편의와 휴식을 위해 ▶대장천 공원에는 30만 평 규모에 산책로 2.8km, 자전거길 3.5km, 연간 8만여 명이 방문할 수 있는 면적 1천200㎡, 200석의 공연장을 갖춘 커뮤니티 센터 ▶오정 스마트공원에는 50만㎡ 규모에 loT벤치, 공기질모니터링 ▶원종 생태공원에는 50만㎡ 생태학습장이 조성될 예정이다.
부천대장산단 투자 및 입주 협약식 모습. 사진=부천시청

특히 부천대장도시첨단산업단지는 총면적 56만554㎡ 규모에 제1(서)·2(동)구역으로 조성된다. 시는 올해 초 선반 및 머시닝 센터 제조 분야 글로벌 기업인 'DN솔루션즈'와 2천400억 원 규모의 첨단기술 R&D 센터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또, 2023년 체결한 SK그린테크노캠퍼스 조성 협약으로 약 4만 평 부지에 SK그룹 핵심 계열사를 집적화한 친환경 에너지 연구개발(R&D) 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대한항공과는 2030년까지 무인기연구소와 조립장, 운항훈련센터 등 조성하기로 약속했다. 단지 내 석박사 및 연구원 등 우수인력과 종사자 수천여 명이 상주하며, 지역 인재 양성 및 경제 활성화에도 큰 기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조용익 시장은 "우수 기업과 좋은 일자리가 늘면 부천시 생활인구가 늘어나고, 숙박·교통·상업 등 지역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 이라며 "사통팔달의 교통중심지 장점을 살려 사람이 모이고 함께 어우러지는 자족도시로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대장신도시 친환경시티 조성 관련 자료. 사진=부천시청

◇대장아카이브북 '들판을 기억하며' 제작 = 부천 대장들판은 오랜 시간 도심 속 그린벨트 지역으로 머물러온 부천의 마지막 남은 농경지다. 시민들이 조상 대대로 지켜온 땅을 일구며 세대를 이어 농민들의 일터이자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이 같은 대장들판에 최근 제3기 신도시개발 지구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옛 추억으로 남겨질 대장들판의 풍경과 주민들의 이야기, 역사적 흔적들을 간직한 과거의 모습들을 후대와 입주민들에게 영원히 남겨주는 기록물인 '대장아카이북'이 제작돼 주목된다.

대장동은 넓고 큰 들판에 자리하고 있어 클 대(大), 장할 장(壯)으로 조선 후기부터 불려졌다. 경작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소작농을 통해 농장을 운영하는 외지인들이 많은 토지를 소유한 지역이다. 김포·부평의 남쪽 끝 평야지역이어서 논농사가 발달했다. 굴포천은 원활한 농경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가을이 되면 황금빛으로 물든 광활한 풍경도 일품이다. 북쪽에 위치한 안동네 일대는 하나뿐인 버스노선과 복지회관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공동체 삶을 이루는 작은 슈퍼와 식당, 부동산 사무소 등이 전부다.

오정동은 오동나무 오(梧), 정자 정(亭)을 쓸 정도로 오동나무가 많은 지역이다. 과거 아주 큰 마을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금골', '검골'로도 불렸다. 1975년 부천시로 편입됐으며 높은 산이 없고 마을이 밀집해 있던 곳을 오정마루라 불렀는데, 오정마을 바로 앞으로 한강조수가 밀려들어 온통 갯벌이었다. 부천 일대에서도 대단위 농지 그린벨트로 가장 늦게까지 농촌지역으로 남아 있던 동네이며, 갈대숲이던 일대가 1925년 한국수리조합이 탄생하면서 논으로 변경되어 주곡생산지로 탈바꿈했다.

봉이 살고 있다고 해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던 봉안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 원종동은 멧마루, 먼마루 등으로 불린 동네다. 메는 산(山)을 의미하고, 마루는 한자 宗(종)의 우리말이다. 겉저리 당아래 고개에서 바라볼 때 마을 지형이 둥그런 산마루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봉안산 아래까지 서해조수가 밀려들어 왔지만, 마을을 빙 둘러서 보를 막은 후 농토로 변했다.

삼정동은 약 300년 전 밀양 박씨 규정공파가 파주에서 이주해 오면서 그곳에 터를 잡았다. 과거 상오정면에 속했던 삼정동은 일제강점기에 상오정면과 주화곶면이 통합되어 오정면에 속했다. 1973년 김포군 오정면에 편입, 1975년에 다시 부천시 신흥동이 되었고, 1982년 도당과 약대가 신흥1동으로 내동과 삼정동이 신흥2동으로 분할되었다. 1990년 도당동이 행정동으로 독립하며 삼정동만 신흥동으로 남았다.

1980년대 도시계획이 시작되며 대규모 공단지역이 되었고, 삼정공단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상살미 일대를 깎아냈고 내촌에서 삼정으로 이어지는 이호선뚝, 산구뚝도 허물었다.
대장들판의 사계절. 사진=부천시청

◇삶의 터전이자 고향인 주민들 이야기 = 농사를 일구며 평생을 살아온 주민들을 만났다.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땅은 해맑게 꽃을 피우고 새싹은 아랑곳하지 않고 싹을 틔우고 있는 가운데, 이들은 그동안 정들었던 땅이 사라짐에 아쉬워했지만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는 않았다.

굴포천 대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다리 마을' 주민들은 1970년대 초반에 코스모스 4H회를 만들었다. 지역사회 발전과 개인의 지식 및 능력을 개발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했다. 마을 청소, 꽃길 조성, 환경 사업, 퇴비 증진 사업을 비롯해 꽃꽂이, 웅변, 서예, 만들기 등 애착심을 갖는 공동체를 강화해 왔다. 마을 초입부터 약 3km에 걸쳐 조성된 코스모스는 가을이면 노랗게 익는 벼와 함께 대장들판과 어우러져 더욱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김창섭(65) 부천새농민회장·오정농협 쌀작목반장

부천에서 6대째 살고 있는 김창섭(65) 부천새농민회장·오정농협 쌀작목반장은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땅에서 농사꾼의 길을 택했다. 부부가 함께 조상의 땅을 일구며 삼남매를 키웠다. 김 회장은 대장들판이 사라져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계속 농사꾼으로 살겠다며 지난 삶을 이야기했다.

그는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학창시절에도 소, 돼지, 닭 키우는 일을 도왔고 농사일을 거들며 영농후계자로 키워진 셈이다. 당시 논농사 부지가 1만 5천 평이고 밭농사 부지도 6천 평에 달했다. 학교 졸업 후 가전제품 판매업체를 운영하며 잠시 다른 일도 했지만 결국 다시 농사꾼의 자리로 돌아 왔다"고 회상했다.

이어 "예전에는 1만2천 평 정도 일일이 논농사를 다 손으로 힘들게 했는데, 지금은 내 꺼 3천 평이랑 임대로 3만 평 정도 기계로 하니 그래도 할 만하다. 여기 대장들판 148만 평의 벼농사가 가을 추수를 시작으로 20일 정도면 다 벨 수 있다"고 말했다.
박휘양(89) 어르신

박휘양(89) 어르신은 대장들판의 산증인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대장들판과 함께 평생을 살아 오래전 마을의 기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는 "여기가 예전에는 전부 박씨 촌이었다. 농사 짓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지만 지금은 외지로 나가서 얼마 안 남았다"며 "일제강점기에는 토질이 개흙이라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없어 커다란 깻묵을 부셔서 농사를 짓다 보니 소출도 얼마 안 됐다. 게다가 소작료와 각종 공출로 바치고 나면 식량이 부족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나라에서 권장한 통일벼가 수확은 많아도 맛은 별로였는데 여기서 몇 년간 계속 심으니 밥맛이 좋아진 것도 땅이 좋고 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평생을 살아온 이곳이 개발된다는 소식에 마음이 착잡하다"고 아쉬움을 토했다.

박 어르신은 "어려서부터 농사 짓던 곳이 없어진다니 섭섭하지만 받아들이고, 힘들었지만 덕분에 어려운 시절에도 쌀밥 먹으며 살았으니 마을 뒤쪽에 논 1만 평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농사는 계속하겠다"고 했다.

박영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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