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시네마-메가박스 합병, 30년 멀티플렉스 넘어 ‘극장의 가치’ 되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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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가 합병을 선언했다. 최근 영화산업이 부진에 빠지면서 한국 영화산업을 이끌어온 2, 3위 영화관 사업자가 하나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소식은 단순히 두 개의 영화관 체인이 합쳐진다는 것을 넘어, 지난 30년간 이어진 한국 영화산업 구조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로 보인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정착된 대기업 주도의 수직계열화 모델에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는 현재 1위 사업자인 씨제이(CJ)와 함께 1990년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라는 혁신 상품을 내놓으며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 CJ는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드림웍스SKG에 투자하며 영화산업에 진입한 뒤, 1998년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CGV강변11을 개관하며 상영 방식의 판을 바꿨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단순히 여러 개의 스크린을 가진 공간이 아니라 쇼핑과 외식, 여가를 모두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확산된 이 모델은 한국에서도 영화 수요를 크게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래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다른 대기업들이 영화산업에서 모두 철수할 때도 CJ는 사업 유지를 택했다. CJ는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함께 수익이 나지 않는 투자와 배급 부문까지 영역을 넓히며 영화산업 수직계열화를 시도했다.
영화산업 혁신한 멀티플렉스
동양그룹도 1994년 오리온카툰네트워크를 설립해 케이블방송 사업에 진출한 뒤, 1999년 미디어플렉스를 세워 영화산업에 진출했다. 동양그룹은 외환위기로 자산을 정리하던 대우그룹으로부터 DCN 채널 인수 협상을 하던 중 우연히 지금의 메가박스 영화관을 인수해 극장 사업에 진입했다. 자금이 부족했던 동양그룹은 세계 최대 극장 체인인 미국 LCE로부터 약 21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운영 노하우까지 전수받았다.
2001년 오리온그룹으로 이름을 바꾼 동양그룹은 2002년에는 쇼박스를 설립해 영화 투자·배급까지 아우르며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메가박스는 2007년 오스트레일리아계 사모펀드인 맥쿼리 컨소시엄에 매각됐고, 2015년에는 중앙그룹의 제이콘텐트리에 인수됐다. 제이콘텐트리는 2020년 영화 투자·배급을 하는 플러스엠을 설립해 메가박스와 함께 영화산업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롯데는 1999년 롯데백화점 일산점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롯데시네마를 열면서 영화산업에 진입했다. 2003년 롯데쇼핑 시네마사업본부에서 영화 투자를 하기 시작해 2005년에는 롯데엔터테인먼트를 세우며 영화 투자·배급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롯데그룹은 백화점과 마트 등 유통 인프라를 기반으로 전국 단위의 멀티플렉스를 빠르게 확장했다. 2018년에는 롯데쇼핑 산하에 있던 롯데시네마와 롯데엔터테인먼트를 분리·통합해 롯데컬처웍스를 세우고 영화산업을 해왔다.
식품·소비재 산업에서 성장한 세 대기업은 단기간에 멀티플렉스를 기반으로 상영→배급→제작까지 산업 전체의 수직통합을 이뤄내며, 한국 영화산업을 산업화 궤도에 올려놓았다. 배급과 상영을 함께 담당하며 영화 시장의 규모를 키워냄으로써 한국 시장에서 ‘천만 영화’가 탄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체제 아래에서 한국 영화는 대중적 성공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부작용도 있었다. 멀티플렉스 등장은 산업 내 힘의 구도에 변화를 일으켰다. 이전에는 주요 극장이 영화 상영 여부를 결정했지만, 멀티플렉스 체제에서는 배급사의 힘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광역 개봉이 일반화되며 개봉 첫 주의 성과가 영화의 흥망을 결정짓기 시작했고, 마케팅 비용이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대기업 계열 배급사는 자신들이 투자한 영화를 자사 극장에 우선 배정했고, 극장이 없는 중소 제작·배급사는 경쟁에서 점점 불리해졌다. 수백 개 멀티플렉스 스크린에서 짧고 강하게 ‘광역 개봉’한 뒤 흥행 성적에 따라 상영 기간이 조정되면서 영화 한 편에 투입되는 마케팅 자원과 실패 리스크도 커졌다. 결국 제작영화 사이의 양극화가 심화됐다.
이와 함께 초고속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비디오 시장이 줄어든 영향이 있었다. 비디오 판권 중심이던 영화의 부가판권 수익이 줄어들면서 극장 흥행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이제 한국 영화의 수익 구조에서 ‘극장 점유율’이 결정적 의미를 갖게 됐고, 이 점에서도 멀티플렉스를 보유한 대기업은 절대적 우위를 점했다. 이런 강고한 체계는 코로나19 이후 영화 관객 감소로 바뀌기 시작했다.
수직계열화 통해 산업화 촉진
따라서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의 합병은 단순히 영화관 수와 시장점유율을 조정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멀티플렉스를 기반으로 구축된 지난 30년의 구조가 새로운 재편을 예고받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30년간 수직계열화 구조, 즉 극장과 배급, 투자가 하나의 그룹 내에서 통합 운영되는 모델은 분명 한국 영화산업을 성장시킨 기둥이었다. 자사 배급 영화를 자사 극장에서 상영하고, 투자 회수 구조를 안정화하면서 대형 상업영화 중심의 산업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부상으로 콘텐츠 소비 경로가 다양화되면서 이 모델의 유효성은 약화되고 있다. 극장을 보유한 배급사의 스크린 점유율이 더 이상 흥행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30년 전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한국 영화산업에 한 획을 긋는 혁신이었다. 여러 개의 스크린으로 다양한 영화를 동시에 틀 수 있게 하면서 관객의 선택권은 넓어졌고, 쇼핑몰·식음료 공간과 결합한 영화관은 주말 나들이의 상징이 됐다. 기존 단관 극장의 한계를 돌파한 멀티플렉스는 관람 환경의 질을 높이고, 시장 규모를 키워냈다. 당시 멀티플렉스는 산업의 새로운 흐름이었고, 소비자에게는 설레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멀티플렉스는 더 이상 혁신이 아니다. 사람들은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다닐 수 있는 생활권) 안에서 가까운 마트에 들르듯 영화관을 찾을 수 있다. 일상 속으로 들어온 영화 관람은 평범한 소비 행위가 됐고, 집에서 OTT 영화를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영화관 방문이 더는 ‘가슴 설레는 경험’이나 문화적 행위가 아니게 된 것이다.
주거 환경이 우리와 다른 미국에서는 구조조정으로 이런 변화의 흐름을 지연시켰다. 미국은 넓은 국토와 자동차 기반의 이동 문화로 인해 대형 극장 중심의 프리미엄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OTT 시장이 커진 뒤에는 일부 대형 체인을 제외하고는 극장 수를 줄이거나 리모델링하면서 ‘공간’의 의미를 지켜냈다. 극장 방문을 특별한 경험으로 여기도록 대형 멀티플렉스 중심의 고급화 등을 더 가속화한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극장이 과잉 공급된 상태에서 관람 경험의 밀도는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영화관이 양적 팽창에서 질적 전환으로의 이동을 고민할 시점이 됐다는 의미다.
‘기술’보다 ‘경험 밀도’ 키워야
결국 지금 필요한 질문은 이렇다. “왜 우리는 굳이 극장에 가야 할까?” OTT 서비스는 언제든, 어디서든, 원하는 영화를 고화질로 제공한다. 소파에 기대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며 조용히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극장은 단지 ‘스크린이 더 크다’는 이유만으로 관객을 설득할 수 없다. 우리가 극장에 가는 이유는 단지 기술이 더 좋아서가 아니라, 그 공간이 주는 ‘경험의 밀도’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는 단순한 마케팅 전략의 변화가 아니라, 극장이 생존하기 위한 정체성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극장은 더 큰 화면, 더 선명한 음향, 더 좋은 좌석 등 영화 보는 환경의 기술적 우위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 모든 장점은 대형 고사양 텔레비전(TV), 고음질 이어폰, 개인용 홈시어터 등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 기술 평준화는 차별화의 한계를 뜻하며, 극장이 기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영화관의 기술적 우위를 강조하는 게 올바른 방향일까?
지금의 극장은 ‘기술’이 아니라 ‘맥락과 의미’를 주는 공간으로 더 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과거의 극장은 단순한 상영 장소가 아니라, 낯선 이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감정의 장이었다. 어둠 속에서 함께 울고 웃는 경험은 감정의 진폭을 배가했고, 관객은 이야기의 수용자가 아니라 공동 참여자가 됐다. 누군가와 함께 울고 웃는 집단 감정의 교류, 어두운 공간 속에서만 가능한 몰입감, 상영 이후의 대화와 해석 같은 것은 OTT가 결코 줄 수 없는 비일상의 감각이다. OTT와 스마트폰 관람이 일상화된 지금, 이처럼 집단적 감정 몰입의 장소로서 극장의 가치를 되살리는 것이 오히려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극장용 영화의 내용도 이런 점들이 강화돼야 더 생명력이 살아날 터다.
새로운 시도가 없지는 않다. 메가박스의 ‘더 부티크 프라이빗’은 두 명만을 위한 프라이빗 상영관을 기획해 관람의 프라이버시와 집중도를 높여준다. CGV의 ‘4DX’는 좌석이 움직이고 향기가 퍼지며 영화를 신체로 느끼도록 해준다. 일부 독립극장은 영화 상영 뒤 감독·배우와의 대화를 이어지게 해 관객과의 상호작용 공간을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관객이 극장을 단순한 상영 공간이 아니라 ‘영화를 함께 체험하는 장소’로 다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영화산업을 선도해온 두 대형 극장 체인이 손잡았다면, 그 합병은 단순한 구조조정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관객은 지금, 극장이 다시금 특별한 경험의 플랫폼으로 거듭나기를, 진짜 혁신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zkim@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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