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나를 키운 건 8할이 영화였다

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2025. 5. 2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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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요즈음 한국영화의 위기를 자주 들먹이며, 몇 가지 그 원인을 분석하기도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영화 관객의 급속한 감소, 넷플릭스를 비롯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에의 쏠림 현상, 관람료 인상, 이윤이 높은 상업영화에의 투자로 인한 다양성 영화의 수적 열세 등을 꼽고 있다. 그 몇 가지 원인 중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상업영화의 질주로 인한 다양성 영화의 빈곤일 것이다. 다양성 영화는 저예산의 비상업영화인 예술영화,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영화를 총칭한다. 일부 영화관에서 예술영화 전용관을 따로 설정해 두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리 영화가 이윤 추구라는 산업적인 성격이 있다 하더라도, 대중적 상업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으로 다양성 영화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전국 체인을 가진 영화관들이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관객이 많이 몰리는 상업영화에만 스크린을 집중적으로 배정하고, 다양성 영화들을 심야 시간대로 편성할 만큼 영화마니아들의 입지를 좁히는 등 철저하게 부익부 빈익빈의 자본 논리를 따르고 있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몇몇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훨씬 웃도는 흥행 실적을 기록하면, 너도나도 앞다투어 그런 소재의 엇비슷한 영화만을 내놓는다. 관객들 역시 그런 영화 보기에만 길들어져 예술영화를 ‘서자’ 취급한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처럼 화면 전환이 완만한 기법이나, 상징과 은유가 번뜩이는 스탠리 큐브릭류의 영화는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하고 아예 발길을 끊는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입맛에만 탐닉해오다 보니, 고도의 지적 탐구 대상인 유럽의 예술영화는 원심력의 밖으로만 맴돌고 있다.

어느 시인이 ‘자신을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다’고 노래했듯이, 내 영혼을 풍요하게 한 것 역시 8할이 영화였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도 가지 않은 채 광복동 입구의 극장 ‘세기관’에서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차(茶)와 동정’을 연거푸 세 번이나 보고 기진맥진했던 할리우드 키드의 기억,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한 방이 500여 편의 예술영화 테이프들로 사면 벽을 채운 것이나, 한 해에 극장상영 영화만 100편 넘게 본다는 것만으로도 내 영혼을 키운 8할은 예술영화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의 광적인 영화 편력은 소설과 희곡 창작의 젖줄이 되었고, 인문학적 노마드의 박차가 되었고, 무의식의 바다를 적시며 내 문학적 영감의 거대한 유빙(流氷)이 되었다는 것은 내놓고 자랑할 만한 찬란함이다.

해운대 요트 계류장에 있던 초창기의 시네마테크, 부산문화회관 아래쪽의 예술영화관,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서면 CGV 예술영화관, 롯데시네마 광복점의 아르떼 등의 예술영화관은 내 인문학적 편력의 출발지이자 기착지이기도 했다. 지금도 보물처럼 아끼고 있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아’를 비롯한 일련의 영화, 허우 샤오시엔의 ‘비정성시’, 짐 자무시와 로버트 알트먼의 영화 등은 가보 목록 1호로 여기고 있을 정도이다.


우리 영화계에도 다양성이 필요하다. 상업영화와 다양성 영화가 공존하며 어깨를 나란히 해야 영화 강국이 될 수 있다. 제작비가 엄청나 다양성 영화들은 손익분기점의 고비를 넘기가 어려우니, 정부 영화 정책의 재편성과 과감한 지원으로 돌파구를 찾게 해야 한다. 영화 관객 역시 극장 밖을 나올 때 아무런 감흥도 일지 않는 상업영화만 즐길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과 삶의 여백을 풍성하게 하는 다양성 영화에도 눈길을 돌려야 한다. 편식만 몸에 해로운 것이 아니라, 상업영화에의 탐닉으로 인한 영혼의 빈곤도 마음 건강의 임계점이다. 패기의 젊은 감독들이 상업영화의 아수라판에서 독창성과 실험성의 싹을 도려내며 창의성을 마모시키는 모습은 연민을 넘어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영화의 위기에서 상업영화와 다양성 영화의 공존은 가장 비중이 큰 화두이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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