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9장] 영광·함평·나주·무안 동학농민군(134회)

동학농민군의 복장 또한 몇몇 부대는 통일되었으나 대부분 아무렇게나 차려입은 멋대로의 복장이었다. 얼핏 보면 오합지졸의 행색이었다. 행색이 볼품없으면 사람들이 먼저 얕보게 된다.
"침모(針母)와 찬모, 간호부를 모집해야 하오. 적임자는 여성 동학도들이니 그들을 구합시다."
전선에 나오니 부족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군사 운영이 단순히 병사와 무기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집안 살림과 똑같은 세간살이가 필요했고, 그것이 부족하면 군사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무안은 예로부터 면화가 많이 생산되는 고장이오. 길쌈부대를 만들어야겠소."
"안됩니다." 김석돌이 단번에 반대하더니 말을 이었다. "여인들을 고생시킬 수 없습니다. 제복만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입어야 합니다."
그는 어머니가 밤새 베틀에서 배를 짜는 모습을 잊지 않고 있었다. 낮에는 들에 나가 일을 하고, 밤에는 베틀에 앉아서 찰그닥 찰그닥 베를 짰다. 그러면서 어찌어찌 배가 부르다가 아이들을 낳았다. 그런 아이들이 예닐곱명이 되었다. 아버지는 출입하는 사람이라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휑하니 밖으로 사라졌다. 가사는 모도 여성 몫이었다.
무안은 한때 면성면(綿城面)으로 불렸다. 목화의 산지라는 이름이다. 면화가 많이 생산될 뿐아니라, 생산된 면화제품은 품질이 우수해 서울과 평양으로 많이 팔려나갔다. 목포진 앞바다에 떠있는 고하도는 조면(繰綿) 사업이 번창할 정도였다.
베를 짜는 일이 모조리 부녀자 몫이었다. 베짜는 일은 전신을 움직여야 하는 노동이므로 힘이 몹시 들었다. 이런 노역 때문에 부녀자들이 부르는 베틀노래 역시 고달픔을 담은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팔짜 사나운 여자의 일생을 그리는 이 서사구조는, 현실세계의 고달픔을 잊고자 스스로를 천상의 선녀로 의인화하고, 고통을 인내해가며 베를 짜서 한양 가는 지아비에게 도포를 지어 입혀 보낸다. 그런데 지아비는 무슨 일로인가 칠성판에 실려 돌아오더라는 비극적 결말. 베를 짠 여인들의 현실 인식과 무관하지 않은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느질 잘하거나 베를 잘 짜는 여인들은 팔짜가 기구하다고 회자된다. 생이 기구해서 베를 짜고 바느질을 하는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전래돼오는 것을 김석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녀자들에게 고된 베를 짜도록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힘겹게 짠 광목을 팔아 투전판에 기웃거리는 모습,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직조기(織造機)를 만들겠소. 모든 물자는 자급자족이오. 직조반을 운영하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말해주는구려. 그러면 나는 군량미를 대겠소."
김응문이 김석돌의 말을 받아들이며 응수했다. 김응문은 무안 몽탄에서 향교 장의를 지낸 존경받는 유림으로서 오백석의 재산가였다. 배상옥 대접주를 통해 동학을 접하고, 기울어가는 나라의 잔명(殘命)을 털어내고 새 세상을 열어야 한다는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동학을 만난 것은 그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전봉준은 이런 토론 과정을 자켜보고 만족하였다. 서로 배려하고 수용하는 모습이 백성이 바라는 결사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모습이라면, 산도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면서 말했다.
"자, 그러면 동학농민군의 진격로를 결정해야 하겠소. 함평 관아가 드세니 함평을 평정하고, 나주로 병력을 빼돌리고, 뒤이어 장성으로 길을 잡아나가려고 하오이다. 이의 있습니까?"
"이의 있습니다. 그러면 영광 땅은 어떻게 됩니까."
나주 공산면의 향반(鄕班) 접장 강영희가 물었다.
"일단 영광을 철수해야지요. 다른 군현의 사정이 절박하오이다. 지원군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것은 안됩니다. 정벌했으면 후속 관리가 중요한 법이외다. 정벌한 뒤 물러나면 도망간 관속들이 돌아와서 철저히 보복을 하게 되오. 그 보복이 얼마나 가혹한 줄 알고나 있습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