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갈맷길과 ‘친환경 트레일’

이진규 기자 2025. 4. 2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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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특화 둘레길들 인기…‘걷는길연합’ 인증제 추진
탐방객 교육·총량제 검토, 지역주민 운영 참여 필수

부산 서구의 송도해수욕장 남쪽 끝과 암남공원 주차장을 연결하는 해안산책로가 낙석 사고 등으로 폐쇄된 지 5년 만에 재정비 사업을 마치고 다시 탐방객에게 문을 열었다. 부산을 대표하는 트레일인 갈맷길 4코스 1구간의 핵심이기도 한 송도 해안산책로는 발아래 파도가 부서지는 백악기 퇴적층과 멀리 건너편 영도의 흰여울마을 등 독특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부산국가지질공원의 지질 명소로 9000만 년 전에서 7000만 년 전에 걸쳐 형성된 중생대 백악기 퇴적층은 1㎞ 조금 넘는 해안산책로를 걷는 동안 2000만 년의 시간을 거슬러 가는 시간여행의 길로 안내한다. 서구청은 안전을 위해 계단과 난간 등 탐방로를 정비하고 대부분 구간에서 낙석 방지책을 보수하거나 보강했다. 또 파손된 구름다리 대신 출렁다리 두 곳도 다시 설치했다.

전남 해남군의 1300년 고찰 미황사를 기점이자 종점으로 하는 달마고도는 달마산을 한 바퀴 도는 17.74㎞의 둘레길이다. 중국 선종을 창시한 달마대사의 법신이 상주한다는 믿음에서 이름이 유래한 달마고도는 미황사와 부도전, 도솔암 등을 잇는 옛길을 복원했다. 완도와 진도를 비롯한 다도해의 섬들과 너덜 지대, 노간주나무 고목, 편백 숲 등 멀고 가까운 풍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2년 넘는 기간 품을 팔아 2017년 개통된 달마고도는 조성 과정에서 기계 장비를 쓰지 않고 곡괭이와 지게 등을 사용하며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길을 내 화제가 됐다. 달마산 동쪽의 너덜지대에는 일일이 돌을 짜맞춰 보행로를 만들었다. 여느 트레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덱이나 계단 없이 흙길과 돌길로만 걷는다. 갈림길이 별로 없기는 하지만 이정표도 최소화했다.

부산의 송도 해안산책로와 해남 달마고도는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트레일의 성격 자체는 크게 다르다. 차량을 위한 도로와 달리 도보 여행자를 위한 트레일은 ‘친환경적’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송도 해안산책로와 달마고도는 ‘친환경’의 잣대로 본다면 서로 거리가 멀다. 2007년 9월 제주올레 1코스가 길을 튼 이후 지역마다 트레일 개설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트레일 개설 자체에 치중하다 보니 환경 훼손과 같은 부분은 부차적인 문제로 여겨졌다. 트레일 개설 바람이 분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국내 대부분 지자체에 트레일이 개설돼 운영되는 상황에서 트레일의 친환경성에 눈을 돌릴 때가 왔다.

최근 국내 도보여행길을 운영하는 단체들의 모임인 (사)한국걷는길연합이 친환경 트레일 인증제 준비에 나섰다. 무분별한 트레일 개발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지속 가능한 트레일을 조성하고 훼손된 트레일을 복원하는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인증 기준 마련과 인증 후 지속적인 관리 방안 등을 마련하려고 한다. 현재 국내에는 산림청이 추진 중인 숲길 인증제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트레일 인증제도가 없는 상황이다. 친환경 트레일에 대한 인증이 이뤄지면 트레일의 개설뿐만 아니라 운영과 관리 교육, 지역 연계 등 모든 측면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친환경 트레일 운영에서는 몇 가지 공통된 원칙이 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에서도 시행하는 탐방 예약제와 탐방객 수 제한, 쓰레기 되가져가기(LNT, Leave No Trace) 원칙, 친환경 인프라 구축, 지역사회 협력, 탐방객 교육, 친환경 교통 시스템 도입 등이다. 탐방객 수 제한과 예약제는 트레일이 지나는 환경에 대한 충격을 줄이는 유효한 수단이다. 특정 구간에는 예약한 소규모 인원의 탐방만 허용하거나 성수기에 탐방객 총량을 제한해 환경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LNT 원칙은 항상 강조되는 것이지만 그만큼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대부분 국내에서 큰 문제 없이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다.


부산 갈맷길도 지역 특성을 반영해 친환경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갈맷길은 국내 다른 트레일과는 달리 도심과 바다 산 강 환경이 혼합돼 있어 전체 트레일에 모두 같은 잣대를 들이대기는 어렵다. 하지만 갈맷길이 미국이나 유럽, 호주 등의 친환경 트레일에는 많은 부분에서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갈맷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성에서는 국내 어느 길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목재 다리, 친환경 덱, 자연 재료 탐방로 등과 같은 친환경 인프라 구축, 자연 보호 원칙을 지키기 위한 탐방객 교육은 부족한 점이 많다. 특히 지속 가능성을 위해 트레일 운영·관리에 지역 주민의 참여, 민간단체와 협력한 트레일 복원과 유지보수 같은 지역사회 협력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갈맷길뿐만 아니라 국내 트레일들이 도보 여행자를 만족시키면서 환경친화적 운영의 목표를 이루려면 갈 길이 멀다.

이진규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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