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도 예술도 ‘아트씽킹’ 필요…그래서 ‘예술판 인스타’ 띄웠죠
[비욘드 스테이지] ‘아트팝 가곡’ 작곡하는 경영학자 김효근

지난달 26일 명지병원 신년음악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도 소프라노 김효영, 테너 손지훈, 첼리스트 이호찬, 피아니스트 최선미, 엘스 중창단 등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이 재능기부로 출연해 김효근의 가곡 10여 곡을 연주했다. 클래식 애호가인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의 바이올린 연주에는 김효근이 직접 피아노 반주자로 나서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예술과 경영을 체화한 두 사람의 흥미로운 협주였다.
“이왕준 이사장과 ‘쿵짝’이 잘 맞아요. 오랜 음악의 벗이기도 하고 경영을 예술 수준으로 하는 혁신 방법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명지병원은 혁신의 아이콘이기도 해요. 서로 응원하고 있는데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인 그가 언젠가 예술의전당에서 김대진 한예종 총장의 반주로 내 곡을 연주하더군요. 한 번 반주를 해드리겠다 약속했었죠.”
![지난달 26일 명지병원 신년음악회에서 이왕준 이사장(오른쪽)과 협주하는 김효근 교수. [사진 명지병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3/01/joongangsunday/20250301000213431ixne.jpg)
웬만한 음악 전공자보다 음악계에서 더 성공한 그는 중학교 시절 합창반 반주를 하며 음악에 각별한 애정을 갖기 시작했고, 헤비메탈을 제외한 모든 음악을 섭렵했다. “어린 시절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을 LP판으로 들었을 때 그야말로 신세계가 열리는 충격을 받았고, 음악에 미친 듯한 갈급함이 생겼어요. 고등학생 때 세운상가 일대를 뒤져 음반을 모으고, 국립 오페라단·교향악단·합창단 시즌권을 끊어서 보러 다니느라 공부는 뒷전이었죠.”
서울대 경제학과 시절엔 록밴드 리더로 대학가요제에 나갔다 탈락한 억울한(?) 이력도 있다. “1980년 그룹사운드 부문 서울 예선을 3위로 통과했거든요. 그때 1위가 연대 마그마의 ‘해야’, 2위가 숙대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 그리고 우리가 3위를 해서 본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며칠 후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어요. 본선 진출이 서울에 편중돼서 우리 대신 경북 지역을 넣어야겠다고. 경북에 양보한 셈이죠.”
1·2위곡이 명곡 반열에 오른 반면 그가 만든 곡 ‘그대’는 아직도 잠자고 있다. 대신 이듬해 대학가곡제 대상을 받은 ‘눈’이 그 반열에 올랐다. 1983년 소프라노 송광선을 시작으로 130여 명의 성악가들 앨범에 수록됐을 정도다. 미발표곡을 포함해 100여 곡을 썼지만 데뷔곡 ‘눈’에 대한 애착이 가장 크다고. ‘눈’은 1981년 당시 대학 신입생이던 소프라노 조수미와도 얽혀있다. “가창자로 후배의 여자친구였던 조수미씨가 나갈 예정이었어요. 연습을 다 해놨는데, 조수미 지도교수가 ‘신입생이 TV출연이 웬 말이냐’며 퇴학을 시키겠다고 엄포를 놨어요. 대신 그 친구인 조미경씨가 나가서 대상을 받고 한참 방송을 탔으니 조수미씨 마음이 어땠겠어요. 그후 수많은 가곡을 녹음하면서도 ‘눈’은 외면했는데, 2년 전 드디어 ‘인 러브(in LOVE)’ 앨범에 수록하더군요.(웃음)”
경영학자의 길을 걷던 중 2007년경 만든 게 ‘아트팝’ 장르인데 소멸 위기인 한국가곡을 살려보겠다는 의도였다고 한다. 유채훈·길병민·손태진 등 팬텀싱어들이 무명시절부터 사랑한 것으로 유명한데, 지금 한국가곡의 부활은 팬텀싱어와 아트팝이 시너지를 낸 덕이다. “그것도 한 생명 기운 같아요. 어느 날 그 친구들이 내 곡을 부르고 싶다고 허락해 달라며 찾아왔길래 허락은 무슨 허락이냐고 마음껏 부르라고 했죠. 실력 있는 친구들이 어서 알려졌으면 했는데, 유명해지고도 제 곡을 자주 불러주더군요.”
그의 음악은 경영으로도 확장됐다. ‘아트씽킹’, 즉 경영학의 각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데까지 나아갔다. “한국의 지난 40년 성장 여정에서 ‘기술씽킹’의 약효는 다했어요. 지식경영의 한 파트인 ‘신지식 창조’에 대해 고민하다 ‘아트씽킹’을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쳤죠. 예술가들이 역량 범위 안에서 최선의 작품을 만들어내려 발버둥치는 것과 같은 사유방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내 곡 중에도 히트곡과 아닌 곡이 있는데, 히트곡이 가진 특성과 그 작곡 프로세스를 반추해보니 ‘사람을 감동시키는 수준의 세상에 없던 것 만들기’라는 답이 나오더군요. 뭔가를 내놔서 사람들이 경험하게 하는 구조는 예술과 경영이 똑같고, 결국 신지식을 창조해서 감동시키는 걸 제일 잘하는 사람이 예술가라는 걸 깨달았죠. 그때부터 모든 경영행위가 예술활동이 되는 방법을 연구해왔어요.”
그는 ‘아트씽킹’이 지금 우리 기업에 절실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L사 핸드폰이 경쟁사 중 특허를 제일 많이 내고도 사라진 건 사람 마음을 얻지 못해서예요. 곡을 썼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는 거죠. 지금 중국에 밀리고 있는 모든 소비재 산업도 똑같아요. 그동안 우리 경쟁력이 가성비였다면, 요즘 소비자들은 고감성이 입혀진 걸 경험하고 싶어해요. 기능은 당연하고, 가졌을 때 뿌듯한 느낌까지 고려하는 ‘경영예술’을 해야 하는 이유죠. 그걸 해내려면 기업 구성원들의 예술적 안목과 경험 폭이 늘어나야 되는데 거기엔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 위험하다는 겁니다.”
![‘아트링커’ 모바일 서비스 첫 페이지. [사진 아트링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3/01/joongangsunday/20250301000214875jfpd.jpg)
올해 정년을 맞는 그는 ‘온라인 예술시장’이란 새 꿈을 꾸고 있다. 지난 24일 예술판 인스타그램 ‘아트링커’를 론칭한 이유다. 2018년부터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개발한 예술수집 AI 플랫폼이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계정을 열어 포트폴리오를 비롯한 모든 정보와 서비스 등을 한곳에 통합해서 전시·홍보할 수 있고, 애호가 입장에선 AI의 도움으로 자신의 예술 취미를 컬렉션해 놓은 취향의 집을 지어 효율적인 ‘덕질’을 할 수 있도록 한 곳이다.
“아트링커를 꼭 해야겠다 마음먹은 건 팬텀싱어들 때문이에요. 무명시절 그 친구들 재능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 기회를 줄 수 있는 인프라의 필요성을 느꼈죠. 예컨대 조성진·임윤찬은 잘 나가지만 그 바로 아래 좋은 피아니스트들은 갈 데가 없거든요. 아티스트가 먹고 살려면 자기를 입증하고 재능을 상품화해야 하는데, ‘아트링커’는 그걸 돕는 생태계예요. 내가 원하는 대로 유튜브 영상을 큐레이션해서 짧은 시간에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죠. 미술 쪽도 똑같아요. 자기 미술관을 한 채씩 지어놓고 상설전을 여는 겁니다.”
광고 없이 예술가와 애호가에게 월 구독료 1만원씩 받는 게 비즈니스 모델이라는데, 과연 통할까. “생태계 균형을 맞추려면 소비자가 아티스트의 1만 배는 있어야 되요. 그러려면 예술 취미인구를 늘려야 하니 ‘예술판 인스타’로 디지털 예술 조각을 수집하게 하려는 거죠. 사실 어려운 꿈이죠. 사막 한가운데 씨뿌리는 느낌이랄까. 분명한 건 예술은 숨겨진 명약이란 거예요. 만병통치약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죠. 제발 이 실체를 알고 빨리 드셨으면 합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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