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量子), 물질을 헤아리다 [말록 홈즈]

2025. 2. 2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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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스 에티몰로지’란 ‘자랑용(flex) 어원풀이(etymology)’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의 본래 뜻을 찾아, 독자를 ‘지식인싸’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작은 단서들로 큰 사건을 풀어 나가는 셜록 홈즈처럼, 말록 홈즈는 어원 하나하나의 뜻에서 생활 속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 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곤 합니다. 고학력과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문해력 감소’라는 ‘글 읽는 까막눈 현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과 현상의 특성을 가장 핵심적으로 축약한 기초개념입니다. 우리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지식의 본질과 핵심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를 떠난 이들의 지식 인싸력도 레벨업됩니다.

10여년 전 이른 봄날, 진급대상자 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멘토링 수업 중 과학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현대 리더십 교육에서는 추상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현실과학적 비교를 많이 활용합니다. 그래서 ‘양자물리학’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엥, 양자물리학이 뭐여? 입양한 자식이 만든 물리학은 아니겠지? 고등학생시절부터 과학의 세계에서 과학적으로 빠져나간 문과 출신에게는 혼돈의 카오스입니다.

“모든 물질은 에너지의 파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들이 입증이 되며~”

차라리 영어로 설명하면 맘 편히 잠이라도 잘 텐데, 우리말로 이야기하니 스스로의 무지함에 대한 분석을 시작합니다. 1992년 고등학생 시절 인간수면제였던 물리 선생님 ‘쓰레빠’에 대한 분노가 스멀거립니다. 쓰레빠는, 수업시간 조는 아이들 뺨을 신고 있던 슬리퍼로 가격해서 생긴 별명이었습니다. 지루하고 나긋한 학습법으로 아이들을 재우고, 졸았다고 가혹하게 바른 길로 인도하시곤 했습니다.

옛 생각이 떠오르자 정신세계는 이미 수업 내용과 사별하고, 1992년의 소용돌이에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합니다. Axel점프는 노르웨이의 피겨스케이트 선수 악셀 파울센(Axel Paulsen)의 이름에서 따왔다지. 제25회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 마라톤에서, 황영조는 금메달을 따며 제2의 손기정으로 추앙받았었지. 생각에 생각이 열차처럼 꼬리를 물고(train of thought) 칙칙폭폭 질주합니다. A-ha의 train of thought는 수백 번을 들어도 가사를 못 알아듣겠습니다.

그해 초 대학입시가 학력고사에서 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뀐다는 정책이 발표됐습니다. 입시과목에서 제2외국어가 빠지며, 일본어시간엔 자습을 하거나 ‘이웃집 토토로’ 같은 만화영화를 봤습니다. 참 따스한 작품이었습니다. ‘토토로’는 스칸디나비아 산화에 나오는 괴물 ‘트롤(troll)’에서 왔습니다. ‘서툴게 걷는 존재’를 뜻하며, 주로 심술쟁이 거인과 장난꾸러기 난쟁이가 여기에 속합니다. 주인공 자매 중 동생인 쿠사카베 메이가 새로 이사한 집에서 발견한 도깨비처럼 신기한 존재를 발견하고 ‘토로루(トロール: 트롤의 일본식 발음)’라고 여기는데, 어려서 정확한 발음이 되자 않아 ‘토토로(トトロ)’라고 불렀다죠. 정겨웠던 주제가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립니다.

“토나리노 토토로 토토로~(이웃집의 토토로 토토로)”

“그래서 과학자들은 뇌파 에너지의 활용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좋아하시는 캐릭터 있죠? 헬멧 쓰고 나오는 유명한~ 아, 거기 노래 부르는 분, 이 사람이 누구죠?”

젠장, 납니다. ‘젠장’은 ‘제기, 난장맞을’을 줄임말입니다. ‘난장(亂杖: 어지러울 난, 몽둥이 장)’이란 고려와 조선 시대에 죄인의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고 아무데나 몽둥이로 두들겨 패던 당황스러운 형벌입니다. ‘제기’는 ‘제기랄’의 줄임말인데, 뜻이 너무 과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지금 이 당혹스러운 순간, 과학에 대해 너무나도 미천한 스스로가 수치스러웠지만, 용기를 내 대답합니다.

“크... 크레용 팝이요.”

‘뇌파 초능력을 사용하는 헬멧 쓴 초능력자들’인 줄 알았던 크레용팝(출처: 네이버)
선생님의 동공에선, 지진희와 여진구와 최여진이 후쿠시마 정모에 한창입니다.

“푸핫. 엑스멘에 크레용팝도 나왔었군요. 참 재밌는 답변이었어요. 답은 마그니토(Magneto)입니다. 자력을 부리는 돌연변이 인간이죠. 수업시간에 노래는 자제해 주세요.”

자력 쓰는 초능력 돌연변이 매그니토(출처: 나무위키)
“저, 유머 아닌데요. 그리고 마그니토는 자력 초능력자고, 헬멧은 ‘프로페서 X’가 쓰는 뇌파 에너지 공격 방어용인데요.”

선생님 얼굴이 붉게 달아오릅니다. 강의실 안 수강생들도 킥킥거립니다. 젠장, 노래는 부르지 말걸. 프로페서 X 얘기라도 하지 말걸. 이게 다 토토로 때문이다! 문과생에게 양자물리학은 위험한 지식인가 봅니다.

양자(量子)의 한자는 ‘헤아릴 양’입니다. 양자를 의미하는 영단어 ‘quantum’은 ‘얼마나 많은(how much)’을 뜻하는 라틴어 ‘quantus’에서 왔습니다. 물질을 측정할 수 있는 최소 단위를 뜻합니다. 영화 007 시리즈의 ‘Quantum of Solace’는 ‘조그만 위로’ 정도일 듯하네요. 원자, 분자, 전자랑 어떻게 구분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전을 읽고 또 읽어 봐도, 무지의 유랑기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과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과 외계인들이 악랄한 무기로 지구인을 공격하고 있다.(출처: 네이버)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3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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