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필리핀 쌀 ‘비상사태’ 선포, 강 건너 불 아니다

관리자 2025. 2.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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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내리고 수입량 늘려도 역부족
무역 통한 식량안보 위험성 현실화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인 필리핀이 쌀값 급등을 이유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최근 필리핀 정부는 지난해 연말 쌀값이 2023년 7월 대비 20% 안팎으로 급등해 식량물가 상승률이 목표 상한선을 넘어섰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정부 비축미 방출에 들어갔다고 한다. 시장에 풀릴 비축미는 30만t 규모로 알려지고 있다. 필리핀은 쌀값 안정을 위해 지난해 쌀 수입 관세를 35%에서 15%로 내리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쌀값 상승세는 천장을 모르고 있다.

한해 쌀 3기작이 가능하고 한때 쌀 수출국이었던 필리핀의 쌀 비상사태는 여러가지 면에서 낯설고 원인 분석도 다양하지만 한가지는 일치한다. 총체적인 ‘식량안보’의 실패다. 1990년대 들어 국제 쌀값이 안정되면서 ‘비교우위론’이 득세, 수입 쌀로도 식량 공급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농업 투자를 위축시키고 벼농가의 탈농을 부추겼다. 여기에 빠른 인구 증가에 따른 쌀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입 쌀 의존도는 더욱 높아져 2023년 9월 필리핀은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쌀 수입국이 됐다.

미국 농무부(USDA)는 필리핀의 지난해 쌀 수입규모가 470만t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지난해 필리핀 쌀 소비량 1750만t의 26.8% 규모다. 필리핀 국민은 지출의 20% 안팎을 주식인 쌀을 구입하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 쌀의 4분의 1을 수입 쌀에 의존한다면 필리핀 쌀값은 쌀 수출국이 쥐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필리핀의 쌀 수급불안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도가 쌀 수출을 전면적으로 금지한 데서 비롯된 것만 봐도 그렇다.

필리핀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우리나라 및 일본과 같이 쌀 관세화 유예를 선택한 나라다. 2015년 관세화로 돌아선 우리와 달리 필리핀은 5년간 또다시 관세화를 유예했다. 2019년 2월 관세율 35%로 관세화 전환과 함께 쌀시장의 자유화를 선언했다. 그래서 필리핀은 과연 쌀 수입을 통해 공급을 늘리고 시장가격을 낮추는, 즉 ‘무역을 통한 식량안보’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필리핀의 쌀시장은 정반대 모습으로 가고 있다. 수입 쌀에 기댄 식량안보가 초래한 필리핀의 쌀 비상사태는 쌀 수입국들에게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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