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개선 위해, 국정원이 적극 조언했다는 이 드라마
[양형석 기자]
지난 2023년에 공개됐던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무빙>에서 부모 세대의 주인공 김두식(조인성 분)과 이미현(한효주 분), 장주원(류승룡 분)은 모두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에 적을 두고 있었다. 이들은 각각 비행 능력과 뛰어난 오감, 재생 능력이라는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로 안기부의 블랙 요원으로 나라에서 지정해주는 임무를 수행했다(단, 이미현은 첫 작전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며 정보작전 분석관으로 좌천됐다).
<무빙>에 등장하는 부모 세대의 주인공 김두식, 이미현, 장주원은 모두 선하고 정의로운 인물이지만 정작 그들이 속한 국가 기관인 안기부는 <무빙> 속에서 결코 정의로운 조직이 아니었다. 특히 블랙요원을 이끄는 안기부 제5차장 민용준(문성근 분)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도구로 이용하는 <무빙>의 메인 빌런으로 살상을 꺼리는 김두식에게 두 번이나 김일성 암살을 지시했다.
사실 중앙정보부에서 시작해 안기부를 거친 국가정보원은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표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베일에 싸인 조직이다. 따라서 대중들에게는 비밀스럽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는데 지난 2007년에 방송된 이 드라마 덕에 국정원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이준기와 남상미, 정경호 주연의 액션 누아르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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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원 요원 이수현은 태국의 범죄조직에 잠입했다가 기억을 잃고 마오의 오른팔 캐이가 된다. |
| ⓒ MBC 화면캡처 |
2005년 연말에 개봉한 <왕의 남자>는 당시 한국영화 역대 최고 기록인 123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공길 역의 이준기는 단연 <왕의 남자>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였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곧이어 이준기의 예쁜 남자 이미지를 극대화한 석류음료 CF가 영화 못지 않게 큰 화제가 되면서 그에게 '예쁜 남자'는 평생 가져가야 할 수식어가 되는 듯 했다.
하지만 2006년 드라마 <마이걸>에 출연한 이준기는 2007년 <개와 늑대의 시간>를 통해 '예쁜 남자' 이미지를 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국정원 요원 이수현과 기억을 잃고 태국의 마약조직원이 된 케이 사이를 오가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남성적인 매력을 마음껏 발산했다. 특히 카체이싱 장면을 포함해 많은 액션 장면들을 대역 없이 소화하는 열의를 보였다.
2008년 <일지매>와 2009년 <히어로>에 출연한 후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이준기는 <아랑사또전>과 <투윅스>에 출연했고 2014년 <조선 총잡이>에서 남상미와 7년 만에 재회했다. 2015년 <밤을 걷는 선비>에 출연한 그는 같은 해 할리우드 영화 <레지던트 이블:파멸의 날>에 특별 출연했고 2016년에는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에서 고려 태조의 4황자 왕소 역을 맡아 사극에서의 강세를 이어갔다.
3연속 사극 출연 이후 2017년 <크리미널 마인드>로 현대극에 복귀한 이준기는 2018년 <무법 변호사>를 통해 김진민 PD와 11년 만에 재회했고 2020년에는 <악의 꽃>에서 열연을 펼쳤다. 2022년 <어게인 마이 라이프>를 통해 SBS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그는 2023년 <아라문의 검>에서 아고족의 수장 은섬과 그의 쌍둥이 형 사야를 모두 연기하는 1인2역을 맡으며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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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에 방송된 <개와 늑대의 시간>은 국정원이 주요배경으로 등장하는 최초의 드라마였다. |
| ⓒ <개와 늑대의 시간> 홈페이지 |
이처럼 지금은 국정원을 다룬 작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국정원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는 거의 없었고 이 때문에 <개와 늑대의 시간>은 더욱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악명 때문에 국정원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는데, 국정원에서는 이미지 개선을 위해 드라마에 적극적으로 자문을 해주며 제작에 많은 도움을 줬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하루에 두 번, 빛과 어둠이 서로 바뀌는 이른 새벽과 늦은 오후를 뜻하는 말이다. 드라마에서는 이수현이 "해 질 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이때는 선과 악도 모두 붉을 뿐이다"는 내레이션을 통해 국정원 요원도, 범죄조직원도 아닌 자신의 서글픈 처지를 이야기했다.
사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이준기의 연기 변신과 화려한 액션, 탄탄한 각본, 이수·장혜진 등이 참여한 OST까지 많은 화제를 몰고 왔지만 최고시청률 17.5%를 기록하며 소위 '대박 드라마'와는 거리가 있었다. 동시간대에 방송됐던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과 <경성 스캔들>이 절묘하게 시청률을 '삼등분'했기 때문. 그래도 종영 후 9년이 지난 2016년에 블루레이가 출시됐을 정도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자랑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본격적인 방영을 시작하기 두 달 전부터 태국에서 약 한 달 간 촬영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물론 태국의 범죄 조직이 등장하는 등 부정적인 장면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주인공들의 아역 시절에는 방콕의 유명 관광지들이 대거 소개됐다. 특히 <마이걸>을 통해 아시아에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던 이준기는 태국 방문 당시 현지팬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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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성은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악역 마오를 연기하며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
| ⓒ MBC 화면캡처 |
패스트푸드점의 '얼짱 알바생'으로 유명했던 남상미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이수현과 강민기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히로인 서지우를 연기했다. 그만큼 서지우는 두 남자 주인공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마음도 흔드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친아버지에겐 아리, 새 아버지에겐 지우라 불리는 서지우는 일편단심 자신만 바라보는 강민기에게 마음을 열지만 이수현과 꼭 닮은 케이를 보고 흔들린다.
1990년대 초반까지 '잘 생긴 터프가이'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재성은 <야인시대>로 슬럼프에서 탈출한 후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서지우의 친부이자 범죄조직 청방의 간부 마오를 연기했다. 마오는 젊은 주인공들을 압도하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악역임에도 호평을 받았다. 특히 "네 이름이 뭐든 상관 없다. 넌 내 아들 케이였으니까"라는 유언을 남겼던 마오의 마지막 장면은 긴 여운을 남겼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영화에서 개성 있는 조연으로 사랑 받은 배우 성지루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안기부에서 불명예 퇴직한 정보브로커 변동석을 연기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태국음식점을 하지만 전공(?)을 살려 부업으로 도청을 하고 있다. 이수현의 아버지와는 국정원 시절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이수현에게도 깊은 애정을 보이지만 이수현을 돕다가 배상식(이태성 분)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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