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 매혈, 헌혈 사이 철과 피의 연대기 [주기율표 위 건강과 사회]

영화도 아니고 전쟁 다큐멘터리도 아닌 국내 뉴스에서 화면을 가득 채운 진짜 총을 보았으니 이번 글에서는 철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원소기호 26번 철(Fe)은 인간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금속 원소로, 전 세계 금속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풍부한 매장량과 다양한 가공 기술 덕에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강도가 필요한 제품을 만들기에 맞춤하다. 물론 총과 칼, 장갑차와 탱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생명을 살리는 농기구, 우리가 살아가는 건축물,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기계, 철로와 기차, 자동차 등등 철은 인간이 존재하는 거의 모든 곳에 쓰인다. 인류 문명은 철과 함께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업도, 산업도, 전쟁도. 마블 코믹스 〈엑스맨(X-men)〉에서 자기장을 통제하는 초능력을 가진 캐릭터 매그니토가 그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인류의 철기 문명 덕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형태의 금속 철을 지표면 아무 곳에서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방 산화, 즉 쉽게 녹이 슬어버리기 때문이다. 지표면에 존재하는 자연 금속 철은 대개 우주로부터 날아온 운석에 포함된 것으로, 철광석 제련 기술이 발전하기 이전 인류는 이를 가공해 도구와 사냥 무기를 만들었다. 당시에 철은 금과 은에 버금가는 매우 귀한 금속이었다. 지금은 철과 여러 원소가 화합물 형태로 존재하는 철광석을 제련해 다양한 유형의 철을 생산한다. 지구상에서 철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은 깊은 땅속이다. 철은 지구의 내핵과 외핵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며, 액상 형태의 외핵에서 발생하는 전류는 지구 자기장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빠르게 회전하는 쇠구슬 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철은 우리 몸 안에도 들어와 있다.
인간의 몸에는 평균 4g의 철이 존재한다. 대부분은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에 자리 잡고 있다. 혈액의 산소 운반을 책임지는 일꾼이다. 우리가 음식으로 섭취한 철분은 소장에서 흡수된 후 혈액에 들어 있는 트랜스페린(transferrin)이라는 이동 단백질에 결합된 형태(Fe3+)로 골수까지 이동한다. 여기에서 철을 이용해 헤모글로빈을 합성하고 혈구 세포를 만들어낸다. 적혈구는 약 120일이 지나면 비장이나 간에서 파괴되며, 이때 대식세포가 철을 재활용하도록 돕는다. 헤모글로빈은 4개의 유닛으로 구성된 단백질이다. 각 유닛의 중심에 철 이온(Fe2+)이 자리 잡고 있는데, 철 이온이 하나의 산소 분자와 결합하기에 헤모글로빈 하나는 산소 분자 4개를 옮길 수 있다. 철이 결핍되면 혈중 헤모글로빈 농도가 낮아지고 우리 몸의 각 조직에 산소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워진다. 이것이 바로 ‘철 결핍성 빈혈’이다. 가장 큰 원인은 출혈이고, 철분 섭취가 적거나 철분 흡수 장애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임신 중에는 태아의 헤모글로빈을 생성해야 하고, 산모 본인의 늘어난 혈액량도 충당해야 하기에 빈혈이 발생하기 쉽다. 빈혈이라고 하면 창백하고 가녀린 ‘병약 미인’을 떠올리기 쉽지만, 오래 지속되면 심부전을 초래할 수 있고 어린이 성장 지연을 일으킬 수 있기에 꽤 심각한 문제다.
‘붉은색’의 과학적·인류학적 의미

인간의 적혈구가 산소 운반에 철을 활용하게 된 것은 진화 관점에서 대단히 현명한 선택이다. 철은 영구히 산화되거나 조성이 변하지 않으면서 산소와 가역적으로 결합할 수 있기에 산소 운반에 맞춤한 도구이다. 게다가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 중 하나라서 공급에도 문제가 없다. 지구 역사 초기에는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매우 낮았고, 이 시기의 생명체들은 산소를 이용하지 않았기에 별도의 산소 운반 장치가 필요 없었다. 그러나 약 25억 년 전 식물이 번성하며 광합성으로 지구 대기의 산소 농도가 급상승하면서 변화가 나타났다. 고농도 산소의 독성(산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산소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더 커다란 몸집과 복잡한 구조로 진화해가는 유기체들에게 헤모글로빈을 통한 산소 전달과 효율적 에너지 생산은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척추동물은 헤모글로빈을 이용해 산소를 전달한다. 달리 말하자면, 이들의 몸에는 모두 붉은 피가 흐른다는 뜻이다.
‘피’ 하면 떠오르는 빨간색은 헤모글로빈이 가시광선 중 붉은색 이외 파장의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산소와 결합한 상태에서는 동맥혈의 선명한 밝은 적색이, 산소가 떨어져 나간 상태에서는 보다 어두운 적색인 정맥혈 색깔이 나타난다. 만일 헤모글로빈을 산소 운반 장치로 쓰지 않는 생명체라면, 붉은 피가 아닐 수도 있다. 예컨대 거미, 전갈, 투구게 같은 동물은 철이 함유된 헤모글로빈이 아니라 구리가 포함된 헤모시아닌(hemocyanin) 분자를 이용해 산소를 운반한다. 흡수하는 가시광선 파장이 달라서 이들의 피는 파란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붉은 피는 우연의 산물이자 우주의 신비이기도 하다. 인류의 붉은 피, 나미비아의 붉은 사막, 로마 신화에서 전쟁의 신을 상징하고 오랫동안 인류에게 미지의 공포를 선사해온 화성(Mars)의 붉은 표면이 모두 산화철을 공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들은 모두 태초의 빅뱅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우주가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별의 물질들로 만들어졌다”라는 칼 세이건의 표현은 그저 문학적 은유가 아니었다.
우주와 생명 진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붉은 피는 그저 우연의 산물이지만 인간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붉은 피는 생명의 정수로 여겨지며, 그렇기에 삶과 죽음, 고귀한 희생이나 비극을 드러내는 절대 상징이기도 하다. 동양의 무협 세계에서 ‘기어이 일어난 혈겁(血劫)’은 은인자중하던 은둔 고수를 중원 무림으로 불러내고, 서양의 뱀파이어는 어둠 속 ‘흡혈’을 통해 영생을 이어간다. 독일제국을 통일한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수상 시절이던 1862년 “연설과 다수결을 통해서가 아니라 철과 피를 통해” 독일에서 프로이센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이로써 그는 ‘철혈(鐵血) 재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살생의 수단으로 철은 피를 동반한다. 무력으로 아리안 민족의 ‘순수한 피’를 추구한 결과는 홀로코스트로 귀결되었고, 그 희생을 핑계로 세워진 이스라엘은 미사일과 총으로 가자지구에서 ‘피의 학살’을 저지르고 있다.
피를 부르는 폭력과 학살이 아니더라도 때로는 피 자체가 수탈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역작 〈라틴아메리카의 잘려진 정맥(Las venas abiertas de America Latina)〉에 등장하는 ‘잘려진 정맥’이라는 표현은 비유에 그치지 않는다. 라틴아메리카 독재자들은 실제로 가난한 민중의 피를 착취했다. 니카라과 소모사 독재 정권의 비호를 받는 플라즈마페레시스라는 회사는 가난한 시민들로부터 헐값에 피를 사서 미국에 수출했다. 이 회사는 1978년 산디니스타 혁명이 일어났을 때 성난 민중들에 의해 불탔다. 쿠바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이들이 세운 업체인 헤모 캐리비안(Hemo Caribbean)은 매월 혈액 5000~6000L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아이티 시민들로부터 사들였다. 1972년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당시 아이티 시민의 80~90%가 문맹이었으며 실업과 극단적 빈곤,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1L에 3달러를 주고 주민들의 피를 뽑아서 미국 시장에서 25달러에 팔았다. 아이티의 독재정권 듀발리에 정부와 계약을 맺은 정식 사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23년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공작(El Conde)〉에서 칠레의 악명 높은 독재자 피노체트는 아예 흡혈귀로 등장한다. 18세기 프랑스 왕당파 군인이었던 그는 우연히 뱀파이어에게 물리면서 영생을 얻는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을 목격한 뒤 죽음을 위장하고 해외로 도피해 200년 가까이 세계 여러 곳에서 혁명 운동을 탄압하는 일에 참여한다. 그리고 1935년, 마침내 칠레에 정착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피의 만행을 저지른다. 그는 직유이자 은유로써 민중의 피를 수탈한다. 그것도 아주 뻔뻔하게. 영화를 보면서 피노체트와 그 가족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참으로 해괴하면서도 어딘지 낯익다 싶었는데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이번에 12·3 쿠데타를 거치며 깨닫게 되었다.
붉은 피에 수탈의 역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피의 연대가 존재한다. 1970년 출판되어 사회정책 분야의 고전이 된 리처드 M. 티트머스의 저서 〈선물 관계〉는 영국과 미국의 혈액 관리 시스템을 주로 비교하며 사회정책의 본질을 탐구한다. 사회정책을 다루는 데 웬 혈액인가 싶지만 티트머스는 혈액을 ‘마지막 시험대’로 생각했다. 혈액이 상품이 된다면 심장·안구·콩팥 같은 장기 역시 상품이 될 것이며 혈액이 달러로 교환될 수 있다면 인간의 어떤 활동이나 관계를 달러로 교환하는 일도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으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영국에서는 헌혈과 수혈 모두 국립보건서비스(NHS) 체계가 관리하는 공적 서비스의 한 부분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헌혈은 자발적으로 금전적 보상 없이 이루어지며, 수혈 서비스도 다른 의료서비스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사람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당시 분석한 헌혈자들의 특성을 살펴보면 여건상 헌혈하기 어려운 가임기 여성이나 노인, 어린이를 제외한다면 성별, 연령, 직업 계층 등에서 대체로 일반 인구집단과 비슷했다. 반면 미국에서 혈액 공급은 ‘시장’이 주도했다. 보수를 받고 헌혈하는 사람, 즉 돈을 벌기 위해 헌혈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했으며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은 상당한 비용을 내고 혈액을 구매해야 했다. 혈액 유통을 위한 일련의 과정, 이를테면 헌혈자를 모집하여 보수를 지불하고 혈액을 채취하고, 이를 병원이나 제약회사·연구소 등에 판매하는 역할은 영리기업들이 맡았다. 공적 관리체계가 없다 보니 한쪽에서는 혈액 재고가 쌓여 폐기되는데, 다른 쪽에서는 필요한 혈액을 제때 구하지 못하는 상황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낭비이자 비효율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혈액의 안전이었다. 이때는 아직 바이러스성 간염의 진단법이 확립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혈액의 오염 가능성은 헌혈자의 최근 건강 상태, 그리고 발열 등 간염을 의심할 만한 증상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헌혈자의 솔직한 답변에 의존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피를 팔아서라도 돈을 마련해야 하는 이들일수록 간염 고위험군인 경우가 많았고, 돈이 절박하다 보니 자신의 건강 상태를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 경우가 다수였다.
미국에서는 영국과 달리 실업이나 불안정 노동 종사자, 소수인종, 마약중독자 등 사회적으로 취약한 이들의 헌혈 빈도가 전체 인구집단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다 보니 피를 수혈받은 이들의 간염 빈도는 영국보다 미국에서 훨씬 높았고, 미국에서도 ‘매혈(賣血)’ 비중이 높은 지역일수록 간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미국 전문가들은 안전 문제를 우려하며 상업적으로 공급되는 혈액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1980년 광주의 자발적 헌혈 연대

또 다른 문제는 불공정이었다. 헌혈자에게 경제적 보상을 하고 기업의 이윤도 남겨야 하니 혈액의 가격은 비싸질 수밖에 없다. 앞서 소개한 니카라과나 아이티 시민들의 혈액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간 것도 이런 상황과 관계 있었다. 미국 국내에서 혈액을 채취하는 것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아직 ‘마약 청정국’이었으니 경제적으로는 아주 바람직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결국 가난하고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의 피를 뽑아서 지불 능력이 있는 부유층에게 이를 공급하는 모양새였다.
사실 자발적 헌혈은 매우 특별한 실천이자 선물이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특별한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약간의 고통과 불편도 따른다. 게다가 내 피를 수혈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고, 그러니 감사 인사나 보답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헌혈을 한다. 영국의 인터뷰 참여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픈 사람이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침대 밖으로 나와 당신에게 1파인트의 혈액을 요청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혈액이 필요한 누군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나섰다.”
티트머스는 이렇게 ‘답례나 행동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수반하지 않는 사회적 선물과 행동’을 ‘창조적 이타주의’라고 불렀다. 그는 사회가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하는지에 따라 시민들의 이타주의를 강화시킬 수도 혹은 약화시킬 수도 있다고 보았다.
경제적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경제적 수단으로 매혈이 자리 잡은 사회에서 낯모르는 이웃을 돕고자 자발적 헌혈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남들은 돈을 받는데 나만 안 받는 게 억울해서가 아니다. 이미 매혈이 표준이고 혈액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사회에서는, 이타적 이유로 헌혈하고 싶은 사람이 굳이 자신의 피를 상품으로 내다 팔 이유가 없다. 선의로 헌혈해봤자 수혈하는 사람의 부담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기업의 배만 불려주게 된다. 티트머스는 ‘우리의 정책과 과정이 사람들이 익명의 낯선 사람들에게 증여하도록 선택할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물질적 결핍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 도덕적 선택을 할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정책이라면 인간 해방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만들 수 있으리라.
이 책은 사회정책뿐만 아니라 자발적 헌혈이 표준이 되도록 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서도 1970년대 초반까지 매혈로 혈액을 조달하다가 1974년에 자발적 헌혈 체계로 바뀌었다. 이 책에는 1960년 기준 한국의 매혈 비율이 90%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자발적 헌혈 체계가 확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광주에서 역사적인 피의 연대를 경험했다.
1980년 5월, 전남대병원이 혈액원을 개소한 지 6개월 뒤, 잔혹한 국가 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외상 환자가 급증해서 병원 복도에까지 환자를 눕혀야 했고, 어떤 의사는 하루에 스무 명을 수술하기도 했다. 비축해놓은 혈액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병원에 몰려들었다. 계엄군이 시가지를 장악하고 대중교통도 끊어진 시점이었다. 집 밖으로 나갔다가 언제 계엄군의 총검에 희생되거나 끌려갈지 알 수 없는 위험하고 두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 시간을 넘게 걸어서, 골목길로 군인들을 피해가며, 병원을 찾았다. 2017년에 발행된 전남대학교병원의 〈5·18 민주화운동 의료활동집〉에 실린 글에서 한 의료진은 “혈액원 입구에서 병원 정문까지 구불구불하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라고 회고했다. 총칼에 의해 자유를 빼앗긴 현장에서 ‘익명의 낯선 사람들에게 증여하도록 선택’했던 광주 시민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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