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연료가 된 내 아이의 삼십 대는 어땠을까 [은유의 ‘먹고사는 일’]

은유 2024. 12. 29.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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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숙씨의 아들은 4년 전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 5년간 쿠팡에서는 20여 명이 ‘로켓 배송’ 연료가 되었다. 박씨가 싸움을, 말하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해 질 녘이 되자 강바람이 밀려오며 대기가 성급히 식어간다. 10차선 송파대로를 채운 차들은 줄 맞춰 흘러가고 자본의 수직 욕망을 과시하듯 치솟은 빌딩들은 낮동안 머금고 있던 노동자들을 한 줌씩 뱉어낸다. 잠실역 7번 출구 타워730 앞. 퇴근을 재촉하는 발걸음들 사이로 한 여인의 음성이 잔잔하게 깔린다. “4년 전 평범했던 우리 집은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게 당연했던 식탁은 서로를 피하는 장소가 되어버렸고 늘 서로의 이야기를 하느라 시끄러웠던 거실은 침묵의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 쿠팡에서 일을 하다가 죽은 덕준이가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쿠팡을 이길 수 없어요, 라고 말하던 덕준이의 절망감을 제가 똑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56세 박미숙씨.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청년 장덕준의 엄마다. 10월11일 아들의 4주기 추모문화제를 맞아 아들을 앗아간 기업의 본사 앞에서, 아들과 아들처럼 속절없이 죽어간 노동자들을 위해 ‘애도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말한다. 발언문을 쥐고 뿔테 안경 너머로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그의 음성은 높아지지 않고 깊어진다. 외침보다 기도에 가까운 어조다. 아들 없는 가을날 얼굴을 어루만지는 바람에서 아들을 느끼며 노동단체 깃발이 펄럭이는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는 일은 이제 그에게 낯설지 않게 되었다. 운명이 카드를 뒤섞어놓으면 우리는 그대로 끌려갈 뿐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삶이 그를 거기에 데려다놓았다.

그는 11월15일에도 대구에서 서울행 열차를 탔다. 쿠팡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 8차 재판이 있는 날이고 이달에만 벌써 네 번째 상경이다. 동부지법 근처 인터뷰 장소에 온 그는 공간이 아늑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야기만 할 수 있으면 장소가 어디든 가요. 내가 입 다물면 이야기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가 11월15일 서울동부지법 앞에 서 있다. 이날은 쿠팡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8차 재판이 열렸다.ⓒ시사IN 박미소

아들 덕준은 돈을 벌기 위해 쿠팡물류센터에 다녔다. 근무시간은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 2020년 10월12일 새벽 6시에 귀가한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까치발로 곧장 욕실로 향해 땀과 먼지로 덮인 옷들을 문앞에 벗어놓고 씻으러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들어가 보니 아들은 가슴을 움켜쥐고 욕조에 엎드려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한 시간 후 숨을 거두었다. 사망 원인은 급성심근경색. 근로복지공단은 고인이 극심한 육체노동에 시달렸다는 점을 인정해 산업재해로 판정했다. 이후 유가족은 쿠팡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쿠팡은 과로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외려 ‘과도한 다이어트로 사망했다’ ‘4시간 골프를 쳐도 1만5000보는 걷는다’는 등의 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물류센터에서 미친 듯이 뛰어가며 이쪽저쪽 계단을 오르내리는 중노동을 골프로 비유하는 말에 박미숙씨는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과 분노를 느꼈다. 지난 5년간 쿠팡에서는 20여 명의 목숨이 ‘로켓 배송’의 연료가 되었다. 그가 싸움을, 말하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남은 식구는 함께 밥상에 앉지 못한다

그날 이후 그는 “아들이 사라져버린 공포”와 무기력을 견뎌야 했다. 더 이상 밥상엔 온기가 돌지 않았다. 원래는 장남 덕준이 아래로 둘째 아들과 막둥이 딸까지 다섯 식구가 먹부림에 진심이었다. 남편 고향 울진의 특산품 송이는 꼭 챙겨 먹었는데 특상품은 비싸서 등외품이나 북한산을 상에 올렸다. 대게도 다리 한두 개씩 빠져 있는 걸로 산지에서 저렴하게 사와서 넉넉하게 맛보았다. 돼지갈비집에 가면 남자 셋이서 15인분을 해치웠다. 아들들은 “짐승이었다(웃음)”. 식구들은 간에 기별만 가게 먹는 게 아니라 배 터지게 먹자는 주의였고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 메뉴를 논의하곤 했다. 새로운 음식에 호기심이 많았던 덕준이는 사고가 나기 이틀 전엔 동네에 새로 생긴 일식집에서 텐동을 세 그릇 포장해 와서 동생들과 나눠 먹었다. 다음 날에도 또 같은 메뉴 세 그릇을 사왔다. 이 집 음식 맛있으니 엄마 아빠도 드셔보시라며 차려주었다. 덕준이는 이틀 연속 텐동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출근했다. 그게 덕준이와의 마지막 식사다.

“한 사람이 사라지고 나니까 남은 네 식구도 밥상에 같이 앉지를 못해요. 그게 너무나 슬프죠. 가족이 다 있을 때 집에서 애가 그렇게 됐잖아요. 저희가 느끼는 죄책감은 어떻게 표현을 못합니다. 왜 우리가 좀 더 빨리 발견하지 못했을까가 넷의 공통된 죄책감이에요.”

형이랑 친구처럼 싸우면서 자란 둘째는 장례를 치르고 나서 부모를 피한다.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못 먹겠다며 라면이나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식구들 얼굴을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열네 살 터울로 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은 막내는 당시 중1이었다. 오빠의 죽음도 아직 안 받아들여지는데 친구들한테 부고가 알려져서 자신이 불쌍하게 보이는 건 더 지옥인 나이였다. 산재 처리로 민사소송으로 바쁜 엄마에게 반발하며 일주일이고 말을 걸지 않았다. 남편의 애도 방식도 그와는 달랐다. 애 하나 잃었으면 됐지 이제 남은 애들 둘을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명절이나 덕준이 생일이면 제사상을 차리길 원했으나 그는 그러고 싶지 않다.

“아직 애가 죽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지금도 문을 열고 들어올 거 같거든요. 근데 그걸 하면 인정하는 게 되니까요. 납골당을 저는 못 가겠고 아빠는 가고 싶어 해요. (외부 활동도) 그만하자고 산재 승인 받을 때까지만 하기로 각서를 썼어요. 애들 아빠는 저한테 투사라고 하는데, 저 투사 아니고요, 나는 이렇게 애를 보낼 수 없다는 마음이죠.”

집안의 첫 손자로 태어난 덕준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자라는 동안 발이 땅이 닿지 않을 정도로 애지중지 컸다. 6학년에 분가할 때까지 엄마보다 할머니가 주로 챙겼다. 그래서 엄마인 그에겐 “애를 많이 품지는 못했다는 미안함”이 있다. 그리고 미안함은 고마움으로 인해 더 커진다.

“덕준이랑 대화를 많이 했어요. 얘는 사회학이나 심리 관련 책을 많이 읽었어요. 인간 본성에 관심 많고 굉장히 공감도 잘해줘요. 내가 답답할 때 소주 한잔하자 하면 얘는 함께 나가요. 자기가 안 마셔도 말벗이 되어주려고요. 피곤할 때 사우나 갈까 해도 가요. 우리 어머니 흉도 같이 보고, 덕준이는 제3자니까 제가 충고도 많이 받았죠. 아빠하고 술친구도 해주고 자식이지만 친구였어요. 나이를 떠나서 나와 이렇게 소통이 잘 되는 대상이 있었다는 게 행운이었죠. 이런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중복이 돼 있어요.”

박미숙씨는 아들의 방을 4년째 치우지 못하고 있다. 2020년 10월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박씨의 집. ⓒ시사IN 신선영

그가 활동하는 동력에는 이타심도 있다. 덕준이 동생들이 살아갈 세상이 덕준이가 살아간 세상이랑 똑같으면 얼마나 비참할 것인가 생각한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덕준이의 동료들은 재판을 앞두고 조심스레 말했다. “어머니 이거 우리 밥줄이에요. 증언하고 싶지만 증언하고 나면 이 회사 못 다녀요.” 이토록 슬픈 현실을 알아버렸기에 그는 뭐라도 한다. “나까지 아무것도 안 하면 결국은 나도 방관자일 뿐”이기에.

사고 이듬해 산재 승인을 받아내고, 2022년엔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라는 책의 공저자로 글을 쓰고, 2023년 민사소송을 시작했다. 차비와 시간과 마음을 내어가며 국회 토론회에 유가족으로 참여하고 언론 인터뷰에 성심껏 응한다. 지난 10월1일 쿠팡 과로사를 다룬 MBC 〈PD수첩〉 ‘죽어도 7시 도착 보장 편’에 박미숙씨는 비중 있게 출연했다.

〈PD수첩〉 화면 속의 그는 흡사 과학수사 요원이다. 아들이 일하는 현장의 CCTV 200시간짜리를 계속 돌려보며 아들의 동선을 분석하는 모습이 나온다. 작업장 도면이 없으니까 등기부등본을 떼고 위성사진으로 거리를 측정해 사업장 면적이 축구장 크기일 것으로 유추하고 동료들에게 전화해 위치를 물어보고 대조해가며 덕준이의 근무시간 걸음수를 산출한다. 이 복잡한 상황을 엄밀하게 추적해가는 게 어렵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화면 속의 그는 얼핏 말한다. “덕준이가 움직이는 걸 보니까 좋다”라고. 그는 또 아들이 입던 허리 33, 30, 28 인치 바지 세 벌을 보여주며 야간 근무의 혹독함을 설명했다. 키 172㎝에 몸무게 78㎏으로 건장했던 덕준이는 쿠팡을 다닌 14개월 동안 몸무게가 15㎏이나 줄었다.

“쿠팡이 업무상 재해 판정을 신뢰할 수 없다고 나와요. 공적 기관의 조사를 신뢰 못한다고 하면 우리는 뭘 가지고 증명해야 합니까. 제가 할 수밖에 없죠. CCTV가 화면도 작고 끊겨요. 200시간이나 되는데 그걸 누가 보겠어요. 회사 측이 저 헛소리를 못하게 하려면 제가 해야죠.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그 생각만 해요.”

박미숙씨는 자연에서 온 음식들, 그중에서도 제철 나물을 좋아한다. 음성도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녔다. 그가 싸우는 건 과격해서가 아니라 절실해서다. 자식을 낳은 엄마이자 자식이 죽는 걸 본 사람이라서다. 사랑을 줄 때조차 사랑을 받은 존재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모르는 존재들을 향한 이타심, 그리고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사명감 같은 인간 보편의 감정에 따르는 것이다.

쿠팡의 목표대로 세상이 굴러간다는 것

그의 왼손 검지손가락엔 붕대가 두툼하게 감겨 있다. 며칠 전 나무를 옮기다가 다쳤다. 그는 목공방을 운영하며 반지부터 식탁 같은 가구까지 만들어 팔고 목공을 가르치기도 한다. 덕준이 사고가 나고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목공방을 잠시 접은 상태다. 친구도 만나지 않고 여가 생활도 없다. 다음 주도 다다음 주도 서울 오는 일정이 잡혀 있다. 몸 상태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예 모르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런데 얼마 전부터 속이 쓰리고 위장이 아픈 증상이 심해졌다. “이러다가 막내가 대학 갈 때까지 못 버틸 수 있겠다는 위기감”에 녹색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양육자로서 책임이 버겁기도 하지만 그를 웃게 하는 건 또 오로지 아이들이다.

“둘째나 셋째랑 밥 먹는 거, 그게 제일 좋아요. 한 번씩 애들이 먹어줄 때가 있거든요(웃음). 한번은 막둥이랑 싸우고 나서 출근했다가 들어오니까 막둥이가 밥상을 차려놓았어요. 미역국 끓이고 통조림 꺼내서 고등어조림을 해놓았더라고요. 그날이 제 생일이었거든요. 제가 워낙 커피를 좋아해요. 덕준이 간 이후로는 커피를 끊었는데 둘째가 가끔씩 원두를 사와요. 저녁밥 먹고 나면 커피를 내려놔요. 애가 기분 좋으면 내릴 때 같이 한 잔씩 맛을 보는데 그게 제일 행복해요.”

덕준이는 배를 타고 싶어 했다. 부산해사고등학교를 원했으나 조부모의 반대로 인문계고를 갔다. 그래도 바다에 나가고 싶은 꿈은 항상 간직했다. 일본 여행을 갈 때도 배를 탔다. 돈을 모아서 마흔이 넘으면 보육원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우리 애도 지금 살아 있었으면 서른이 넘었겠죠. 삼십 대는 또 어땠을까요. (…) 내가 힘들어할 때 덕준이라면 나한테 무슨 얘기를 해줄까.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들어주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라고 말해주고, 얘 말투가 생각이 나요. 그게 위안이 돼요.” 그의 휴대전화에 삼남매는 ‘든든한 놈’ ‘멋진 놈’ ‘사랑돌이’로 각각 저장돼 있다. 이름처럼 저마다의 존재로 비통에 젖어 무너지려는 엄마의 삶을 떠받치고 있다.

11월12일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등이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쿠팡 청문회 개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시사IN 조남진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하며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더라?’라는 말이 고객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쿠팡의 미션이다. 그들의 목표대로 세상은 굴러간다. 시간 빈곤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소비자는 편리함에 길들여졌다. 노동자의 죽음은 의식하지 못한 채. 그렇다고 박미숙씨는 쿠팡을 쓰는 사람들을 원망하진 않는다. 지난해 SPC 노동자 사망으로 불매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는 갖고 있던 쿠폰을 빵으로 바꿔 왔다. 그걸 보고 막둥이가 막 화를 냈다. 엄마는 쿠팡만 가지고 그러지 SPC도 나쁜데 왜 사 먹냐고 따졌다.

“저도 사고 소식을 알았는데도 무의식적으로 살던 습관대로 SPC를 썼잖아요. 저도 전엔 쿠팡을 좋은 회사로 알았어요. 그들은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해 성장하고 있어요. 근데 사람 생명보다 앞서는 법은 없잖아요. 과연 안전한 회사에서 사람이 이렇게 죽어나갈 수 있냐. 열린 눈으로 제대로 봐야 해요. 저도 일을 겪으니까 보이게 된 거죠.”

쿠팡에 다닐 때 아들은 양팔저울의 비유를 들어가며 말했다. 내가 편하다고 느끼는 순간 누군가 짐을 지고 있는 거라고. 그는 아들이 숙제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덕준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엄마 하는 거 함 보자.” 엄마도 고생하라는 게 아니라 현재에 집중해서 살아야 한다는 뜻임을 덕준이가 27년 삶으로 보여줬다고 그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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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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